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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Nov 01. 2022

김장 속만 채울지 알지,  부모 속은 모르고

“올해 김장은 언제 할까?”


11월이 가까와 오면 사 남매의 단체 문자톡은 1년 최대의 행사날을 정하는 문제로 채워진다. 사실 김장 날짜를 정하는 건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아버지 생신이 11월 둘째 주 아니면 셋째 주에 있어서 아이들이 어려서는 생신과 김장하는 날을 나눠서 했지만, 아버지는 힘들게 한 달에 두 번이나 온다고 생신날 김장을 하자고 정하셨다.


부모님은 우리가 모이기 전에 온갖 속재료 들을 며칠에 걸쳐서 준비하셨다. 우리는 당일에 모여 전날 절여 놓은 배추를 씻고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김장 속만 넣었다. 김장을 도와 드리러 모이는 것이 아닌 김장통 채우러 가는 이미 정해진 날을 확인하는 게 맞겠다.


12시가 되기 전에 김장이 끝나면 아침부터 삶은 수육을 썰고 수산시장에서 사 온 회를 먹는 한해도 변함없는 무심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생신 상차림이었다.


“올해는 김장 담는 거 안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조심스레 물어봤다. 엄마가 허리 수술로 회복 중이시고 왜인지 김장통 채우러 가는 일도 귀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시중에 나와 있는 때깔  좋은 제품이 넘쳐 나는 이때 굳이 김장이란 것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생신날 모여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먹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때 단체 문자톡에 올해 김장을 왜 해야 하는지 오빠의 친절한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엄마는 수술 후 경과가 좀 나아지자마자 아버지와 때에 맞춰 배추와 무, 파 등등 김장재료를 텃밭에 심었다고 했다. 한 달 전에는 광천에 가서 새우젓도 사다 놓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생신상을 거하게 차려 먹는 것보다 온 식구들이 웃으면서 김장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고 하셨단다. 당신들이 준비 해 줄 날이 얼마나 되겠냐고 그 때까지는 귀찮아도 해서 먹자며.

들켜버린 마음이 냉장고 속 처럼 서늘해졌다.


부모님은 땅콩을 수확한 다음 날부터 밭을 갈고 가족이 모일 준비하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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