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윤의 홀로서기,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같은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의 가방에도 이 시집들이 들락날락했었다. 기형도란 시인을 안 것은 ‘입 속의 검은 잎’ 이란 시집을 고등학교 때 짝꿍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던 날부터였다. ‘1960년 경기도 연평 출생, 연세대학교 정외과 졸업, 84년 중앙일보사 입사,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인 기형도에 대한 설명이 책장을 넘기자마자 보였다. [안개]란 시로 당선되고 89년 3월 타계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시집이란 소개 글을 보고 시집을 넘겼다. 나는 모든 책을 읽을 때 버릇이 목차를 보고 맨 뒷장의 해설 또는 작가의 말을 읽고 제대로 본문을 읽는다. 그렇게 하면 책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다.
차례의 1번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안개라는 장편의 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
.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나는 여기에 밑줄을 그었다. 책을 읽은 흔적이 남지 않게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이 시집에는 처음 읽으면서 줄을 그었다. 이런 시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감탄을 하면서 그것도 파란색 볼펜으로 말이다.
마스크를 낀 승객 몇몇이 젖은 담배 필터 같은
기침 몇 개를 뱉아내고
세 번째 자리한 ‘조치원’이라는 시에서 기형도란 시인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그 시절 글이란 것을 쓴다고 노트 이곳저곳에 말도 안 되는 시를 시늉하며 글을 흘리고 다니던 때였다. 조치원이라는 시까지 읽고 시집을 선물 한 짝꿍을 살짝 의심했다. ‘친구야 글이란 것은, 시란 것은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쓰는 것이란다. 정신차리고 국어책이나 보거라’라고 사준 것이 아닐까란. ‘사랑을 읽고 나는 쓰네’란 시는 읽을 때마다 마치 내가 방금 이별이라도 하고 온 듯 가슴이 아리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가난한 유년 시절과 혼란의 청년기까지 어쩌면 우울한 시들. 그림을 드리는 듯한 시구절들 속의 천재적인 표현력, 시집을 접하고 글 같지 않은 글을 쓰는 작업을 모두 멈추었다. 내 딴에는 중앙지에 여러 번 시도 실렸었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내가 쓴 희곡으로 연극이 올려지기도 해서 나름 잡초지만 생명력을 가진 풀떼기 정도로는 성장하지 않을까란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이 시집을 잘 모셔두었다가 다시 꺼내게 된 것은 23년도 ‘기형도 플레이’라는 연극이 올려진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던 날이었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서울특별시와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올려지는 무대였다. 연극은 9편의 시를 가지고 시와는 다른 내용으로 희곡을 쓴 것이란 것을 연극을 보러 가서 알았다. 기형도 시인의 마니아들 때문인지 연극을 하는 배우의 팬들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찍부터 매진이 되었다.
몇 편의 연극은 웃음을 주었고 몇 편은 깊은 생각과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만났다. 그리고 몇 편은 눈물을 흘렸다. ‘기형도 플레이’ 연극이 25년 4월 3일~5월 5일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재연을 한다고 지인이 연락이 왔다. 예매 창이 열리고 긴장한 손가락이 제 역할을 해주길 바라면서 다시 만나 볼 생각에 벌써 설렌다. 기형도란 시인을 소개해준 건 친구야 이러 좋은 시도 있으니 읽어 보렴 하고 용기를 주기 위한 것 었다고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