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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Feb 27. 2024

이곳은 공동용변구역이 아닙니다

진눈깨비가 미세먼지와 더해져 시야를 가린다. 이런 날은 집에서 밀린 드라마나 눈이 아프게 보고 싶은 날이다.

"언제 올래? 너 주려고 담은 김치들로 냉장고가 꽉 찼는데."

엄마는 내가 보고 싶으면
'파김치 담가 놨다.' '깍두기가 맛나게 익어가는데 언제 가져갈래.' '게국지는 금방 먹어야 맛있는데...'
무슨 숙제 검사를 맡는 아이처럼 때론 빚을 갚는 사람처럼  김치를 담고 나를 기다렸다.  


게으른 시동을 걸고 친정집에 도착해 언제나처럼 잔디로 잘 정비된 마당 한편에 주차를 하려는데 차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실리퍼만 간신히 신고 뒤뚱거리며 나를 마중 나왔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나? 그동안 걱정거리가 뭐가 있었던 거지? 흐뭇하면서도 궁금증이 몰려왔다.

"거기에 주차하지 말어. 거기에 주차하지 말어!"

엄마는 구부정한 몸을 있는 힘껏 펴고 양손을 있는 대로 흔들면서 나의 주차를 차단했다.

"왜?"

차 유리를 열어 물었는데 엄마도 '암튼 그렇게 해'로  짧고 단호하게 답했다. 할 수없이 진눈깨비로 질퍽해진 잔디가 없는 쪽에 주차를 하고 신발에 진흙이 최대한 묻지 않게 조심히 내렸다.

"왜 여기다 주차하면 안 되는데?"
약간 짜증 섞인 듯이 물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이제는 의미도 없는 아랫목에 앉으라면서 이불까지 덮어주셨다. 그리고는 내가 오지 않아 쌓인 김치만큼 푹 숙성된 걱정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집 뒤로 자그마한 산이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어느 날은 나무가 잘리고, 어느 날은 포클레인이 들어와 평평하게 만들더니 멋들어진 십 여체의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이사 온 집 중 4 가구 정도가 반려견을 키우는데 저녁이면 사람들이 반려견들과 산책 겸 운동으로 동네 한 바퀴씩을 돌면서 인사도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시골 촌 구석에 늙어들만 살다가 젊은이들이 이사 오니 사람 사는 동네 같이 활기가 차서 좋다고 전화로 전해 들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문제는 볼품없는 시골집에 아버지가 온 정성은 들여 가꾸어 놓은 잔디마당에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똥을 누고 갔는데 똥 누기 명소로 소문이 났는지  네 마리의 변려견이 번갈아 가면서 잔디에 똥을 누고 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목줄을 하고 잘 다니던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근처만 오면 목줄을 풀었고 그러면 반려견들은 훈련이라도 받은 듯 깨끗한 잔디에 와서 순식간에 볼일을 보고 갔단다. 그러는 바람에 아버지는 하루 일과가 잔디에 싼 똥을 치우는 일이 되었단다. 그야말로 풀 한 포기 없이 가꾸어진 80넘은 아버지의 자랑 잔디마당이 침입자 개들의 '공동용변구역'이 된 것이다.


엄마는 이장한테 얘기를 해서 못 누게 하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깐깐한 시골 할아버지로 낙인 되는 게 싫었는지 당분간 두고 보자고 했단다.  내가 안내문을 하나 잠깐 걸어 놓으면 어떨까 제의를 했고 엄마는 좋은 생각이라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나는 사과박스를 뜯어 마당 입구에 있는 단풍나무에 "마당 잔디에 반려견 용변금지"라고 크게 써서 걸어 놓았다. 계속 반복되면 이장님한테 말씀드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좋은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가구도 사고 가전도 사면서 얼마나 설레었을까? 반려견들을 데리고 언제든 편하게 나가 산책할 수 있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골생활 반려견 예절도 같이 이사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아버지의 자랑 잔디마당이 봄맞이 청소하듯이'공동용변구역'에서 벗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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