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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 곽동희 Aug 29. 2023

문명의 실체, 불을 찾아서

햇빛으로 빚은 불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 인간은 이 불을 다루는 능력으로 다른 동물을 압도하고 지구상에 번성하게 되었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도입부에서도 나오는 글귀이다.


  인간이 불을 처음 사용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흔적은 호모에렉투스가 살았던 142만 년 전 즈음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불은 인류의 기술문명을 이끄는 대표적인 도구가 되었다. 반면, 크나큰 재앙이나 자연과 문화유산의 상실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의 주무대였던 에게해 인근의 유명 휴양지인 로도스섬에도 올여름 최악의 산불이 있었다.


  불은 인류문명의 창조자가 되기도 하고 때론 파괴자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을 때 친절한 설명이 없어서였을까? 우리는 불을 잘 다룰지는 몰라도 불을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당신은 불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나요?


  사전에서 불(fire)은 '뜨거운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여 연소하며, 에너지를 빛과 열의 형태로 방출하는 산화 과정'으로만 기술되어 있다. '그러니까 불이 뭐냐고요!' 여러 백과사전이나 웹 검색엔진에서도 속 시원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좌: 모닥불, 중: 햇빛, 우: 태양의 화염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불이 무엇인지 새 학기마다 같은 질문을 던져오고 있으나 인상적인 답은 거의 없던 것 같다. 사실 초중등과정에서 과학시간에 배운 광합성과 호흡은 잘 기억하면서도 정작 간단한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 못한다.


  한마디로, 불은 햇빛이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부터 석양의 저녁까지 녹색의 생명체들은 부지런히 햇빛을 모아 놓는다. 이산화탄소와 물로 만든 껍데기 속에 햇빛을 가두어 놓고 있다. 잎에서부터 뿌리 속까지.


  햇빛은 껍데기 속에 들어간 순간 보이지 않다가, 그 껍데기가 쪼개어져야만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햇빛의 모습은 장작불이며, 산불이 되기도 한다. 모닥불의 불꽃이 태양 표면의 화염과 닮은 이유이다. 적게 느리게 나오는 햇빛도 있다. 몸속의 음식물에서 나오는 이 햇빛은 워낙 힘이 약하여 빛은 거의 없고 열을 수반하는 적외선 형태로 우리의 몸을 데운다. 마치 일광욕 햇살의 따스함처럼.


  태곳적 이 땅에 불은 없었다. 다만 펄펄 끓는 쇳물만 있었다. 녹색 생명체들이 햇빛을 모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와 이웃한 금성은 온실효과 때문에 표면온도가 수성보다도 높아 섭씨 400도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금성표면에 불꽃을 상상하지는 말자. 금성에는 햇빛을 저장해 주는 생명체가 없었으니 타는 물질이 없어 불꽃이 있을 리가 없다. 대신 엄청나게 뜨거운 열만 있을 뿐이다.


  지구 형성후 약 15~25억 년이 지나 이산화탄소를 소비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광합성 생물이 많아진 그때부터 불이 이 땅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지구에는 불로 만들어진 유기물질 전성시대가 열렸다. 이때가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도착한 시기이다. 인간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선물을 놓고 간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약 25억 년 전부터 차곡차곡 땅속에 쌓아놓은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을 한순간 꺼내어 아낌없이 풀어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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