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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의 가면

by 이도한

나는 회색의 인간이다.


흰색과 검은색 그 중간 어디쯤 있는 그러한 색이다.

밝은 곳으로 가면 나의 어둠이 들킬까 어두운 동굴로 떠난다.

어둠에 감싸일 때면 이 심연에 잡아먹힐까 빛에게 도망가 안긴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회색빛의 나.

누군가의 검은 그림자가 되어 어두운 곳에서 머무르다가도, 갑자기 흰색의 눈부신 빛 속으로 도망쳐 버리는 나.

빛도 어둠도 온전히 머물 수 없는 나는 결국 그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하는 이 회색빛 존재는 항상 경계 위에 선 채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조금의 불편함이 있다.

안면 인식 장애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려 하면 흐릿하게 기억난다.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고 나서는 잘 기억하지만, 한두 번 본 것만으로 그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얼굴의 형태, 이목구비의 위치, 목소리와 말투까지 모든 정보가 한꺼번에 범람하며 머릿속에서 엉켜버린다.

나에게 사람의 얼굴이란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명확한 형상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겹쳐진 흐릿한 스케치에 불과하다.

지나가는 길에 만난 사람이 나를 알아보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나는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 사람은 분명히 나를 알지만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떠오르지 않아서 일단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 기억이 나고, 나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 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나는 눈앞의 상대에게 허울뿐인 가면을 씌워두고 적당한 거리에서 방어한다. 그것이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가면을 쓰게 된다.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군가와는 가깝고, 누군가와는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일단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 상대방을 길에서 만났을 때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사람들은 나를 밝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사실 그러지 않다.

그들이 기억하는 나의 이미지는 인위적으로 만든 결과일 뿐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불편함을 느낄 것 같아 스스로에게 덧씌운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다.

나의 친절은 얼굴도 기억 못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좋은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스스로 알고 있다.

시간 지나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내가 상대방의 얼굴을 기억할 때쯤에는 나는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솔직한 나의 모습이 아니지만, 나는 굳이 그 인식을 바꾸지 않기 위해 가식적인 친절을 이어 나간다.

사람들에게 그 가면을 쓴 나의 모습이 진짜처럼 보이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마치 착한아이 증후군인 것처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어있던 나는 결국 어울리지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있던 탓에 지쳐 버렸다. 팽팽했던 실이 끊어지자 이 실은 더 이상 다시 묶을 수 없게 되었다.

한 번 끊어진 실은 어떻게 엮어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가 쌓아 올린 친절과 가면은 무너졌고, 그 무너진 잔해 속에서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하지만, 그 이미지조차 내게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가면을 벗어보니, 그 안에 있던 나의 표정은 오랜 지침으로 인해 차가운 무표정이 되어 있었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따뜻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뾰족하고 차가운 모습만이 드러났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것이 변했다.

남들의 일에도 항상 먼저 손을 내밀고 도움을 주던 나는, 이제 나의 일과 타인의 일을 철저히 분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예전의 나는 모르는 일도 해결책을 찾아 알려줬지만, 이제는 "나도 모른다, 스스로 알아보라"고 답했다.

도움을 요청받으면 나는 되묻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 일을 도와야 하지?",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지?” 그 물음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되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봤고,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권했다.

그동안 가식적으로 살아온 나는 저 사람들의 행동도 가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고 단정지었다.

진심 어린 위로와 걱정의 말조차도 나에게는 낯설고 불편했다.

타인에게서 느껴지는 진정성조차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오히려 그들의 호의를 의심하며 멀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 대한 평가는 변하게 되었다.


일을 잘해서 쫓아내지 않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고. 사람들이 그런 평가를 한다는 사실에 나는 더욱 화가 났다.

나는 남들보다 잘하기만 하면 계속 남들에게 막대해도 된다는 착각에 빠졌다.

나는 계속해서 잘날 것이고 잘될 것이라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나의 일은 공연장의 조연출이었다.

나는 연출을 대신해 배우들의 연기를 디렉팅했고, 음향감독을 대신해 효과음과 배경음 등을 만들고 편집했으며, 조명감독을 대신해 조명을 설치하고 공연의 오퍼레이션을 맡았다.

(오퍼레이션(Operation) : 공연 중 음향, 조명, 영상 등 무대 장비와 관련된 모든 기술 요소를 직접 조작하고 관리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의 일은 직격타를 맞아 끊겨 갔다.

밀폐된 공간에서 공연을 하는 연극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중단되었다.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던 예술이 한순간에 멈춰버린 그 순간, 나도 나의 자리에서 밀려난 채 현실의 공백 속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늘 누군가를 대신하는 역할이었을 뿐, 그 자리들이 온전히 나의 자리는 아니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 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나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연출에서 연출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글이 필요했다. 조급함과 초조함 속에서 시작한 글은 그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어, 읽기 힘든 글자의 나열일 뿐이었다. 스스로의 글이 창피했고, 넘어지고 무너지는 과정을 솔직한 나로서 제대로 겪지 못했던 나는 넘어지는 게 두려웠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글쓰기에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은 채, 나는 도망쳐 버렸다.

코로나19라는 좋은 핑계를 삼아서.


나의 진짜 위치를 알게 된 나는 주섬주섬 가면을 꺼내 다시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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