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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처단

비는 증거를 지우지 못했다 [가제]

by 이도한

프롤로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가 죽은 그날처럼.

강민형은 오래된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젖은 손에 캔맥주 하나를 들고,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 아래로 시선을 떨궜다.

강물은 검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흐렸고, 깊었다.

바람에 비가 휘몰아칠 때마다 물결은 뒤틀렸고, 그는 마치 자신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내 지우가 죽은 날 이후, 민형은 이곳에 매일같이 찾아왔다.

처음엔 믿을 수 없어서, 그다음엔 잊을 수 없어서. 그리고 지금은, 살아 있는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지만 죽지 못했다. 지우가 억울할까 봐. 3년을 쫓았다.

아무 단서도 없이, 단 하나의 흔적도 없이. 묻지 마 살인이라 했다.

경찰도, 언론도 모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범인을 찾지 못한 채 죽는 건, 지우를 두 번 죽이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였다.


발소리. 조용했지만 분명히 들렸다.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다가오는 낯선 인기척에 민형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혹시..."

낯선 목소리. 젖은 숨결. 떨림. 민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망설임 없이 가까이 다가왔다.

"죽을 거면... 나 좀 살려주고 죽어요."

그 말에 민형은 눈을 들었다. 여자의 얼굴은 젖어 있었고,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지우 언니가 슬퍼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작은 방수가방 하나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 쪽지 하나를 캔맥주 아래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그를 스쳐 달려갔다.

"거기 서!"

짧고 날카로운 외침이 비를 뚫고 날아왔다. 뒤이어 달려오는 남자 둘. 검은 우비, 눌러쓴 모자, 그리고 그중 하나가 조용히 총을 꺼냈다.

"그 여자, 어디로 갔어? 일단 그 가방 내놔"

민형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손에 쥔 가방을 내려다봤다.

손끝에 느껴지는 묵직한 존재감.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몰랐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그 순간, 멈춰 있던 심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되뇌던 자신이, 지금은 숨을 죽이며, 살아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반대 방향으로 발을 디뎠다. 비는 점점 더 거세게, 그를 삼키듯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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