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불협화음
새벽 다섯 시.
알람은 아직 울리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눈을 떴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방 안에서, 그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군인에게 시간은 본능이자 훈련된 반사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일어나는 동작이 망설임으로 바뀌고, 그의 시선은 이불 너머 아내에게로 머물렀다.
짧고 고른 숨소리, 잔잔한 체온.
그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일어났어요?”
언제 깬 건지 모를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작게 웃었다.
“더 자도 돼. 아직 이른데.”
“당신 나가는 거 보고 저도 나가야 해요.”
이불을 걷어내는 그녀의 동작은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는 묘하게 낯설었다.
익숙한 풍경이 오늘만은 다른 색으로 보였다.
나는 나갈 준비를 위해 씻고 나오는 사이에
식탁 위엔 아내가 준비해둔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
바삭하게 구워진 식빵 사이에 야채와 참치가 들어간 샌드위치 와 향이 좋은 커피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오늘은 왠지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엔... 며칠이에요?”
조심스러운 듯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
그는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게 길진 않아. 일주일 정도.”
“실전이에요?”
“응. 이번이 마지막.”
그는 잔을 내려놓으며 작게 숨을 쉬었다.
“전역 승인 났어. 이 일만 끝나면, 우리—”
“여행 가요.”
그녀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리스트 잔뜩 모아놨어요. 첫 번째는 홋카이도, 맞죠?”
“그랬지.”
말은 가볍게 주고받았지만, 그 사이의 공기는 다르게 떨렸다.
그는 무심코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가 멈칫했다.
손등에 희미한 화상 자국.
작은 흉터 같은 흔적이 눈에 밟혔다.
“그건...”
그녀는 커피잔을 들며 미소지었다.
“어제 실험하다가, 살짝 데인거 뿐이예요.”
“위험한 거 아니야?”
“아니에요. 조심하고 있어요.”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그녀도 더 말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세계에 경계선을 긋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그녀도 더 말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세계에 경계선을 긋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그녀도 더 말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세계에 경계선을 긋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다.
부대 정문에 도착한 재하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긴장감이, 그의 몸을 천천히 조여왔다.
입구에서 신분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규칙적인 발소리, 반복되는 구령, 군복 위로 쏟아지는 무채색의 새벽.
“윤재하 대위. 오랜만에 같이 실전이네.”
대기실에서 전술복을 점검하던 동료 중 하나, 박하준 대위가 말을 걸어왔다.
“이 작전이 마지막이라며. 진짜 전역할 생각이야?”
그는 장갑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작전 마무리 짖고 진짜 전역이야. 나도 이제 내 삶을 살아야지”
“에이, 너는 군인이 체질인데. 예전엔 죽는 줄도 모르고 뛰어들었잖아. 나 아니였음 여러번 죽었다?”
”그래 이번에도 잘부탁 한다.”
“형이 꼭 너 전역 시켜준다”
하준은 헛웃음을 흘리며 등을 쳤지만, 그의 눈빛엔 미세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
이번 임무는 단순한 체포 작전이 아니었다.
기밀 정보가 흘러나간 실험 시설,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도는 정체불명의 무장 세력.
작전 명은 ‘처단’.
갑작스레 내려온 이 작전은 보안 최고 등급의 임무로 내려왔다.
이 작전을 위해 최고의 요원들이 투입되어 작전을 펼치기로 했고, 사실상 이번 작전이 나의 마지막 작전며 최대규모의 작전이기도 했다.
작전 브리핑이 시작됐다.
지휘관의 목소리는 단단했고, 동료들의 얼굴은 익숙한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그는 스크린에 표시된 위성 사진과 동선을 눈에 새기며, 이 임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미 작전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을 거다.”
지휘관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목 뒤로 찬 공기가 흘렀다.
“이 연구소에선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인체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는 내부 제보가 있었다.
문제는 그 배후가 확인되지 않은 거대 민간 기업이라는 점이다.
해당 시설은 정부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고, 인근 위성 이미지도 조작되어 있었다.”
스크린에 위성 사진과 분석된 실험실 구조가 나타났다.
“우리가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기억 조작, 세포 재생 속도 가속, 그리고 의식 간섭을 통한 행동 유도에 관련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말 그대로 핵무기보다 더 위험한 기술이다.
이게 성공적으로 상용화된다면—
정부도, 군도, 민간도, 모두 통제 밖에 놓이게 된다.”
재하는 스크린 속 실험실 모형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군 생활 중 마주한 어떤 위험보다 더 설명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우린 이번 작전으로 이 실험을 중단시키고, 주요 인물을 확보해야 한다.
타겟은 2명. 내부 과학자 중 하나는 이미 연락이 두절됐고, 나머지는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휘관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재하를 비롯한 요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어. 그게 뭔지 정확히 확인하고, 보고해.
절대 임의로 움직이지 마라.
실험 결과 자체가 무기일 수 있다.”
브리핑이 끝난 후, 그는 홀로 남아 장비를 점검했다.
방탄복, 통신기, 단검, 응급 키트.
무게보다 무서운 건, 이 장비들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는 가방 안쪽 깊은 곳에서 조그만 메모지를 꺼냈다.
꼭 돌아올 것.
아내의 손글씨였다.
그녀는 장난처럼 쓴다며 넣어주었지만,
그에겐 이 말이 지금까지 어떤 명령보다 무거웠다.
출발 전, 벽에 기대어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메시지 한 줄.
“걱정하지 마. 곧 봐.”
전송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끄자, 잠깐 그의 눈빛이 흐려졌다.
이제, 돌아갈 곳이 생겼다는 게 그를 더 절박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