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대답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by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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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영화나 책을 보면, 등장인물들을 통해 인생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인생에 어떤 진리가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무언가를 깨달아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의 나는 어린 탓인지 그런 말들을 인생의 진리로 쉽게 받아들이곤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크고 대단한 삶에서 나온 작품들을, 나는 종종 과대평가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는 영화나 책이 아무리 ‘깨달음’을 말해 줘도, 그저 한 사람의 견해로 들린다. 예전에 엄청나고 대단해 보였던 일들도, 막상 나도 조금은 할 수 있게 되거나 그 구조를 대강 이해하게 되니 경외감이 줄었다. 무엇보다 그 어른들조차 잘못된 방향을 붙잡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이 조심스러움은 한편으론 나를 지켜준다. 쉽게 휩쓸리지 않고, 무턱대고 믿지 않게 한다. 그런데 동시에, 그 조심스러움은 삶의 어떤 온도를 가져간다. 예전처럼 누군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한 문장에 마음을 맡기고, 어떤 세계에 깊이 빠져드는 일이 어려워진다. 안전해졌지만 쓸쓸해졌다.


사람은 자유롭게 행동하고 자유롭게 생각하길 원하면서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사로잡히길 원하는 것 같다. 동경하는 대상을 따라가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 방식은 이상할 만큼 강한 힘이 있다. 누군가의 말과 기준이 내 안의 기준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마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를 닮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의 확신 안에서 안심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경험과 생각이 쌓이면 인생관이 생긴다. 누군가는 권력을 좇고, 누군가는 명예를 좇고, 누군가는 돈을 좇는다. 누군가는 모든 걸 내려놓고 산속으로 들어가 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거창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그냥 사는 대로 살아간다. 산다는 것 자체가 버거워서,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고된 일이니까.


그래서일까. 때로는 나도, 내가 고민해서 무언가를 깨닫기보다 누군가가 답해줬으면 좋겠다. 무엇을 묻든 대답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반드시 선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자꾸 떠오르는 분이 한 분 계시긴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은 늘 선명하게 대답해 주시지 않는다. 아무리 물어봐도, 아무리 찾아도 찾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아서, 그래서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접할 수조차 없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그 이유를 돌리는 편이 차라리 편할 때도 있다. 그래야 이 침묵이 의미가 되고, 이 거리감이 벌이 아니라 과정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때때로 바란다. 이런 부족한 나를 아시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찾아와 주시길. 거창한 계시가 아니어도 좋다.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작은 표지판 하나면 충분하다. 오늘을 버티는 마음이 아주 조금만 덜 흔들리도록, 내가 붙잡아야 할 방향을 너무 늦지 않게 알아차리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그 정도뿐이다. 찾아와 주시길, 그리고 내가 그분을 알아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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