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닿지 못한 세계

역동적인 삶은 ‘새로움’이 아니라 ‘도달’에서 시작된다

by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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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사는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학교라는 작은 세계만으로도 충분했다. 교실의 창문, 복도의 소음, 운동장의 햇빛, 쉬는 시간의 웃음소리. 그 안에서 하루는 늘 새로웠고, 마음은 쉽게 흔들렸다. 설렘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냥 눈앞에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처음 보는 강의실, 처음 타는 통학버스, 동아리방의 공기, MT의 어색한 게임, 사람을 알아가는 속도. 그 시기엔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반짝였던 것 같다. 미래는 불안하면서도 아름다운 가능성으로 가득해 보였고, 삶은 저절로 앞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지나오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자극을 받고, 비슷한 온도의 설렘을 맛본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그때를 떠올리며 말한다. 그때가 좋았지.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그 반짝임을 어디서 다시 찾아야 하는지 누가 알려주지는 않는다.


졸업 후에도 자극은 분명히 있다. 직장이 생기고 돈을 벌며 선택지는 오히려 더 많아진다. 새로 산 물건, 새로 옮긴 공간, 새로운 사람, 처음 가는 도시, 처음 배우는 취미. 겉으로만 보면 더 넓은 세계가 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많은 것이 새로워도 마음은 예전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기대는 하는데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 날이 늘어난다. 즐겁긴 한데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웃긴 장면에 웃고, 맛있는 걸 먹고, 사진도 찍지만, 그 모든 것이 한 겹 얇은 막처럼 지나간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지에 가서도 마음이 집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릴 때의 몰입은 상상만으로도 가능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도 머릿속에는 하나의 세계가 자랐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 세계가 통째로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같은 자극이 같은 깊이로 들어오지 않는 순간이 생긴다. 재밌긴 한데 거기서 멈춘다. 마음 깊은 곳까지는 잘 닿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변한 건가, 무뎌진 건가, 어딘가 고장 난 건가.


그런데 꼭 그렇게만 봐야 할까.


어쩌면 이것은 내 결함이라기보다, 삶의 단계가 달라지는 과정과 닮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 설렘이 생기는 방식도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어릴 때의 설렘은 주로 바깥에서 왔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규칙, 새로운 사건. 세계가 먼저 흔들어주고, 마음은 그걸 따라 흔들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바깥의 사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된다. 그때부터 설렘은 더 무겁고 느린 것들 사이에서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관계, 책임, 성장, 누군가와 함께 쌓아가는 시간. 단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쌓이는 어떤 것. 하루 만에 불붙는 흥분이라기보다, 서서히 밝혀지는 온기에 가까운 것.


아마 힘든 건, 많은 사람이 그 사이의 어딘가에 오래 머문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예전 방식으로 설렘을 찾는데, 예전처럼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꾸 허탕을 치게 된다. 설렘이 사라진 게 아니라, 설렘이 자라는 자리 자체가 달라졌는데도 계속 예전 자리만 더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더 큰 세계로 옮겨 가는 일 같기도 하다. 그 세계는 분명 더 넓지만, 대신 쉽게 열리지는 않는다. 우연히 문이 열리지는 않고, 누군가가 데려다주지도 않는다. 스스로 걸어가야 하고, 선택해야 하고,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다. 눈에 띄는 새로움보다, 조금씩 깊어지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느끼는 어떤 무덤덤함도 단순히 삶이 재미없어졌다는 뜻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이 예전과는 다른 깊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표면만 만지고 돌아오면서 별거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도, 자극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아직 그 깊이에 발을 담그지 못해서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설렘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아직 그 설렘이 있는 곳에 닿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 생각을 하면 아주 조금은 숨이 트인다. 내 안에 남아 있는 회색빛이 끝이 아니라, 어딘가로 옮겨 가는 중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의 이 평평함도 감정이 죽어버린 상태라기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의 잠깐의 공백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세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지금의 나이에 맞는 세계는 다를 테고, 어떤 사람은 관계 안에서, 어떤 사람은 일 속에서, 어떤 사람은 오래 붙잡아 온 무언가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그 문을 만날지도 모른다. 다만 예전처럼 더 강한 자극만 찾는다고 해서 삶이 다시 움직이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결국 중요한 건 새로움 자체보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어떤 곳에 닿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곳에 가면 설렘은 다시 눈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과 똑같은 모양은 아니더라도, 지금의 나에게 맞는 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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