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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팥트랏슈 Feb 02. 2022

28살, 붕어빵 장사를 하게 되다 7 : 빌런 등장

붕어빵 사주세요

13. 과도한 칭찬을 경계하라 1 : 아저씨, 전 20대거든요?

 앞서 말했듯이 바람동은 괜찮은 주민들만 있어서 젊은 여자 혼자 일해도 별일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빌런은 어디에나 하나씩 있는 법. 한 늙은 아저씨가 손님으로 오셨습니다. 젊은 여자가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는 게 퍽 안쓰러워 보였던지 동정의 눈길로 이것저것 물어보셨습니다.

"혼자 일하시나 봐요?"

"네~^^"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에요?"

"28살이요~"

"아 28살? 안 그래 보이는데~ 그럼 편하게 말 놔도 되겠다 ㅎㅎ"

"...?^^ 아 네..."

"요즘 붕어빵 장사 많이 없는데 생겨서 좋네~"

"네에~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젊은 여자가 싹싹하니 보기 좋다~ 우리 엄마 며느리로 두면 좋겠네~"

'....? 아빠뻘 같은데 뭐지? 돌싱인가... 기분 나빠...'

"빵을 참 맛있게 굽네. 야무져~ 앞으로 종종 사 먹으려고 오고 싶은데 어디로 연락하면 될까~?"

"^^... 제가 핸드폰을 잘 안 해서요 번호는 공개 안 합니다."

"정말? 아쉽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그 늙은 아저씨는 지갑에서 자기의 명함을 꺼내 저에게 건넸습니다.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여기로 연락해요.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이게 누굴 거지로 아나...'

아빠뻘인 아저씨가 선을 건드리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게 거슬렸습니다.

"이래 뵈어도 나 돈 많아. xx지역에 땅이랑 상가가 좀 있거든."

".... 네에 (어쩌라고)"

"내가 돈만 벌다 보니 결혼도 못하고 홀어머니랑 같이 원룸에서 살고 있는데... 그런 거 보면 울엄마 짠해 죽겠어. 빨리 색시 얻어서 아파트에서 오순도순 셋이 살아야 할 텐데..."

그 늙다리는 말을 흐리며 저를 쳐다봤습니다. 역겨워서 면상에 죽빵을 갈기고 싶었습니다.

"돈 많으시다면서 왜 원룸에서 사세요?^^"

"응? 둘이서 사는데 큰 평수가 필요한가 싶어서 핫핫핫!"

'지롤하네....'

"그나저나 여자 혼자 일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싹싹한 게 어른한테도 잘하는 것 같아 보기 좋아~ 아저씨 같은 연상은 어때?"

'아놔 붕어빵은 왜 많이 사셔 가지고! 오늘따라 더럽게 안 익네!'

"저 남자 친구 있는데요."

그 늙다리는 피식 웃더니 그러든가 말든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마침 주문한 붕어빵이 나와서 빨리 꺼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넸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 이쁜 아가씨~^^"

 그 늙은이는 차에 올라타 사라졌습니다. 붕어빵 매대 위에 있는 명함이 나를 더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난 단지 붕어빵 먹고 싶어서 파는 건데,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우리 아빠가 옆에 있어도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길거리에서 혼자 장사하니까 만만하게 보는 거겠지... 직장이었으면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했을 텐데 내 지금 위치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 

 그 늙은이는 재미 들렸는지 한동안 자주 왔습니다. 저는 어떻게 대처했냐고요? 판매자 입장에서 사무적으로 답하고 쓸데없는 말에는 씹었습니다. 그게 최선이였습니다. 그 늙다리는 제가 반응해주지 않자 시들해졌는지 며칠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사회경험이 더 없는 20대 초반 여자애였다면 더 수위 높은 성희롱 발언을 해도 억지로 웃었지도 몰라요. 그 늙다리는 그걸 즐겼겠지요. 지금에서야 이렇게 덤덤하게 쓰지만 그 늙다리가 자꾸만 자기 홀어머니와 수발들면서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어필할 때마다 쇠 꼬챙이로 혀를 뽑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녔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제가 파는 붕어빵 마차 위치가 공원과 가깝고 학부모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 그나마 안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Tip : 아버지 같은 분들이 딸처럼 생각해서 잘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꼭 헛짓거리 하는 늙다리도 있으니 경계를 하며 함부로 웃어주지도 말자. 단골 만드려다가 스트레스받아서 장사 때려치우고 싶을지도 모르니. 
Tip : 스포츠 선수가 아닌 이상 싸움에서 이길 수도 없으니 붕어빵 자리 선정할 때 최대한 밝은 곳(기운, 위치, 햇볕 등등)에서 하기! CCTV나 혹은 주차된 차가 많아서 블랙박스라도 찍힐 수 있는 곳에서 하자.


14. 과도한 칭찬을 경계하라 2 : 어머! 땅천지는 사이비 종교 아니거든요?

 뉴스에도 나오고 시사프로그램에서도 다루었던 유명한 사이비 종교 땅천지(가명). 어느 날 붕어빵을 사 먹으러 온 30~40대 여성들이 왔었습니다. 특이하게 바로 나온 붕어빵을 먹고 싶다며 붕어빵 마차 안에서 먹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코로나 때문에 불편하니 정드시고 싶으시면 공원 가서 드시라고 했어요. 그러자 그분들은 그건 싫은 티를 내면서 굳이 마차 안에서 먹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붕어빵도, 손님도 없어서 한 개만 먹고 가라고 했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분들은 저에게 폭풍질문을 했었습니다. 몇 살이냐, 왜 장사를 하냐, 언제부터 했냐 등등등... 이런 질문들은 다른 분들도 하시니 그러려니 했었어요. 그리고 그분들은 붕어빵을 드시면서 너무 맛있다며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직감인지 뭔지, 정말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맛있다고 말하는 것 같진 않았어요. 뭐랄까 목적이 있어서 묻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비결이랄 것도 없구요~ 재료는 붕어빵 마차 임대해주시는 분에게 때 온 거라 다른 곳도 맛 똑같을 것이고 단지 팥을 많이 넣어서 그럴 거예요~^^"

"그렇구나~ 어쩐지 팥도 많고 맛있더라~"

"네 감사합니다"

"나 이거 먹으려고 여기까지 오잖아요~ 근데... 혹시 교회 다녀요?"

"네? 아뇨 저 무교인데요."

교회 다니냐고 묻는 순간 '아. 교회 다니라는 권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죠. 더한 게 있었습니다.

"그래요? 혹시 땅천지라고 들어봤죠?"

"땅천지요? 그거 사이비잖아요."

"아휴~ 땅천지 그거 사이비 아닌데 뉴스에서 이상하게 보도를 해가지고 억울하게 누명 받은 거예요. 코로나도 그거 땅천지 때문에 퍼진 거 아닌데! 막 그렇게 몰아가구! 땅천지는 어떤 종교냐면 어쩌구 저쩌구…."

'아놔 잘못 걸렸네.'

제 시야와 귀는 점점 흐리멍텅해져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구세주처럼 다른 손님이 등장했습니다. 그 손님은 땅천지분들이 마스크를 벗고 있는 거를 힐끔 쳐다봤습니다. 저는 이때다 싶어 한마디 했습니다.

"크흠. 저기 더 드실 거면 공원 가서 드셔주겠어요?^^ 코로나 때문에 좀...^^"

역시 요즘 시국엔 코로나라는 글자가 주는 힘이 컸습니다. 땅천지분들은 머쓱하게 마스크를 올리며 땅천지 소개 팜플렛을 건네주며 떠나갔습니다.

'앞으로 마차 안에서 먹게 해주나 봐라.'

그 이후로 땅천지 분들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분들은 지금도 종종 오십니다. 그리고 붕어빵이 맛있다며 늘칭찬과 함께 꾸준히 땅천지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사실 이건 제 타임 때 오시는 분들이 아니라 뭉이 타임 때 오는 분들입니다. 저는 사이비 같은 거 혐오하고 어디서 자꾸 포교활동을 하느냐며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역시 우리 뭉이는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대처했습니다. 그게 뭐냐면 그냥 그 손님들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대놓고 포섭한다고 타동네사람까지 데려와서 더 사주시는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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