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크톤, 캐런의 좌충우돌 이혼상담.
플랑크톤 더 무비
어렸을 때 유달리 눈에 들어오는 애니메이션이 뭔가 하면, 귀여운 앞니에, 노란색 피부. 그리고 각진 외모에 난 구멍들. 걸을 때마다 삑삑 소리가 나는 그 친구 ‘스펀지——— 송’ 이였어요 (놀랍게도 저의 첫 네모바지는 EBS를 통해서였거든요.) 후에 케이블티브이가 생기고 나서 니켈로디언을 통해 스펀지밥을 만나 지금까지도 뚱이, 징징이와 함께 꽤 좋아하는 캐릭터로 남아있어요.
이 역시 짱구와 같이 꽤 오랜 시간 유지가 돼 오고 있는 IP입니다. 원작자가 사망했다는 점도 그렇고요. 오랜 시간을 유지하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는 점에서도 비슷하군요. 특히나 후기 스펀지밥의 평가는 아주 처참할 정도라서 저는 이 시리즈가 과연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시리즈의 어려운 와중에 등장한 극장판. 심지어 스핀오프인 ‘플랑크톤 더 무비’는 사실 의리로 보게 된 겁니다. 오랜 팬이 가진 족쇄?라고 할까요. 별로 일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보고 평가하게 되는 그런 불가항력이 있는 듯 말입니다.
그런데 웬걸, 꽤 수작이 나왔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왜 스핀오프 인가?’에 대한 의문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했고요. 무엇보다 기존 팬들을 위한 여러 오마주들과 패러디들이 가득해서, 이건 ‘어린이들을 위한’이 아닌 ‘어렸을 때부터 사랑해 온 어른‘들을 위한 영화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그렇고요.
스핀오프인 만큼 영화의 주축이 되는 인물은 ‘플랑크톤’과 그의 컴퓨터 아내 ‘캐런’입니다. 그 사이에서 스펀지밥은 ‘정신분석학자 키트’를 들고 관계 회복에 도움을 주죠.
묘하게도 이런 설정부터 아이들보단 정말 부부가 되거나 깊은 연애를 하고 있을 어른들을 겨냥했다고 느껴졌어요. 특히나 ‘부부’와 ‘상담자’는 너무 ‘이혼상담’을 떠올리게 하지 않나요? 실제로 플랑크톤과 캐런의 관계는 플랑크톤의 고집 때문에 기울어진 채 다시 회복될 기미가 전혀 없어 보였으니까요. 이 스토리의 대표적 문제 인물인 플랑크톤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서, 스스로의 문제를 파악하고 관계를 재인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인정. 관계회복되는 과정은, 참 스펀지밥에서 이런 그림을 보네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플랑크톤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인 여성상이었던 캐런의 각성. 그리고 그 이후의 빌런으로서의 행보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악행을 이루는 존재지만 서도 꽤나 숙원이 깊은 사연(25년짜리)+개인의 출중한 능력(세계, 아니 우주정복 가능) 하다는 지점에서 캐런이 보여주는 액션이나 애니메이션등은 죄책감이 들만큼 만족스럽습니다. 말 그대로 세상을 부숴내는데 느껴지는 길티플레져라고 할까요. 거기에 더해 성우의 열연까지 얹어 듣기도 보기도 좋았던 사이보그 빌런의 탄생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캐런의 사연에 집중시키고, 플랑크톤의 잘못을 재인시키는 점. 그리고 작중에 역할을 가져가는 ‘Gal pals’(미녀 삼총사 패러디) 등으로 꽤나 pc 한 작품이네 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만 벨마처럼 정신 나간 듯이 활용한 게 아닌, 딱 심심할 정도. 여서 이야기와 잘 섞여 있는 수준이라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마주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내가 팬으로서 자부심이 있다. 하시는 분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시면 재밌으실 거예요. 미남 징징이, 정신조종 빠게쓰, 구피구버아이스크림, 화장실 아나운서, 00을 너무 많이 먹어버린 ~~ 등등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IP가 가져야 할 소양을 가감 없이, 아니 꽤 넘치게 보여주고 있어서 저는 발견할 때마다 깔깔 모먼트였답니다.
오래된 IP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춰 알맞은 옷을 입고 나오는 경우에 저는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꽤 재밌었어요. 스펀지밥 극장판 중에 이 정도로 스케일이 컸던 작품이 있었나 싶고요.
무엇보다 어떤 논란거리가 될 것을 염려했는지, 이건 그냥 사랑이야기라고 너스레 떨듯 노래로 마무리해 버리는 점에서 어이없지만 괘 귀여운 인상으로 마무리되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스펀지밥이라는 시리즈 역시 더 이상 아이들만을 위해 존재할 순 없겠구나. 타겟층이 변했으니 성인의 취향을 감미해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조금 들었고요.
그럼에도 아직 덜 어른이 된 저에겐 꽤 입에 맞는 영화였어요. 무엇보다 다양한 방식의 애니메이션 연출이 참 좋더라고요! 플랑크톤의 과거, 캐런의 계획 등. 적재적소에 적용되는 그림체들에 화려한 감각들이 참 마음에 들어 킬링타임으론 참 좋았습니다 :)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