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사유.

회귀, 그리고 어머니의 품

by 황기영

오늘도 같은 골목, 같은 시각, 같은 야간학원을 마치고 나왔다. 몸이 무거웠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불빛 아래 갇혀 있었고, 나는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집까지의 동선을 알고리즘처럼 자동으로 따라 걸었다. 집 문을 여는 손이 이상하게 느리게 움직였다. 아버지의 인사말이 들린다. “요즘 너무 열심히 사는 거 아니니?” 분명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윙윙거리는 소리로 전해진다. 귀가 먹먹했다. 미끄러지듯 내 방으로 들어왔다. 가방을 놓기 전에 먼저 바닥이 나를 잡아당겼다. 딱딱한 침대가 놀랍도록 따뜻했다.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매번 같은 패턴이다. 체력의 부족을 탓해야지, 이걸 해결할 방법이 더 움직이는 방법뿐이라는 것에 탄식한다. 눈이 감긴다…

잠깐,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빛 같은 걸 본 것 같기도 하고… 뭐지 이건, 흙냄새…?

시간이 끊어진 공간 속에 잠겨 있었다. 무언가 연결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무엇이었을까. 무언가… 엄청난… 위로가 되는 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정말,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나는 벌떡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몇 신지 확인해 봤지만, 충전해놓지 않은 핸드폰은 켜지지 않았다. 삐리릭- 하고 도어록을 연다. 정확하진 않지만, 새벽의 냄새가 났다. 아직은 싸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콧속과 목덜미를 스쳤다. 너무도 선명한 달빛이다.

“그래 걷자, 걷자꾸나. 한 번만 더 걷자꾸나. ”

나지막한 혼잣말. 오래된 소설을 가져온 탓에 피-식 하고 웃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면서도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상황처럼, 낯설지 않았다. 나는 걸었다. 어디를 향해가는지도 모른 채. 단지 밟고 있는 것들의 의미를 떠올리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끝. “1층입니다.”라는 소리가 울린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느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엘리베이터 한쪽 구석의 모니터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거울에는 몇 개의 광고 카드들이 같이 개재되어 있었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정작 내가 흐릿하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눈을 어지럽혀.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현대 문명의 정수를 떠올린다. 철강산업, 전기공학, 프로그래밍, 건축, 인공 지능 센서, 광고. 모두가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더 높은 차원의 문명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품. 하지만 왜, 이곳 안은 이렇게 숨이 막힐까? 뉴스에선 암울한 이야기가 계속 흐른다. 출산율, 경기, 정치… 인류는 분명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왜 우리는 점점 더 숨이 막혀 오는 걸까? 우리의 문명은 분명 고차원으로 나아가고 있을 지언데, 혹시 우리는 ‘고산병’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위로, 더 위로, 속도를 높이며 만들어낸 세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 갇힌 채, 내릴 수 없는 사람들.

갑자기 내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시간 속을 관통하는 타임머신처럼 느껴졌다. 마치 닥터 후의 전화부스처럼, 나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유인원들이 휘두른 뼈를 그리고 그게 하늘로 집어던져졌을 때 우주선으로 변하는 메타포를 떠올린다. 그 짧은 찰나 인간의 문명이 도구와 함께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주마등을 본다. 모든 역사가 이 좁은 상자 안에 압축돼 있었다.

띵. 문이 열렸다.

갑자기 현실의 찬 바람이 후-욱 하고 끼쳤다.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주마등은 멀리 떠나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도 순식간이군 이란 생각을 했다. 바닥이 떨리자, 눈앞의 시야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복도를 나와 아파트 단지 앞에 선다. 앞 라인의 아파트는 어딘가서 불이 꺼지고, 어딘가서 또 다른 불이 켜졌다. 도시의 수많은 방들, 자동차들의 소리, 여전히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의 문 건너편에 들리는 시끄러운 세상사들. 이 모든 것들이 나는 ‘발전’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진보라면, 나는 왜 이토록 무력하고 작아지는가? 왜 나는, 멸망을 상상하는가?

한 발을 내디딘다. 아스팔트의 잘 정리된 표면이 신발을 뚫어 발바닥에 닿았다. 도시의 피부를 밟고 선다. 검거나 회색인 바닥. 이것을 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드럽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것에 우리들은 서 있다. 그 얇은 표피 위에 하늘을 뚫어낼 듯한 마천루가 쌓인다. 나는 ‘태어나고 보니 모든 땅에 주인이 있었더라.’라는 말을 떠올린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는 말이 없다. 그저 모든 걸 지탱한 채로 깔려 있다. 이 위에 쌓여있는 것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순히 ‘문명’이라고 보기엔 이것은 너무 의도적인 부분이 있다. 무언가를 가리고 숨겨야만 하는 의도가 있다는 걸 생각한다. 그리고 떠올린다. ‘이건 단순한 길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모든 길에는 통제가 박혀있다. 완벽하게 구획된 블록들, 도시는 세금이 흐르고 통제가 숨 쉬는 장소. 나는 바닥에서 고개를 들어 도로를 본다. 반듯하게 설치된 신호등과 표지판들이 보인다. ‘이쪽으로 가.’ ‘가지 마’ ‘멈춰’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거대한 체계. 효율을 내세운 시스템에서 나는 코즈믹 한 감상을 느낀다. 나보다 더 거대한 것의 힘을 느낀다. 이것은 일종의 공포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나는 나를 통제해야 한다. 나는 단지 산책을 하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지시를 따라야만 한다. 단지, 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살기 위해서.’

갑자기 숨이 막혔다. 생각은 스멀스멀 벽을 타고 아파트보다 더 높아졌다. 시스템이라는 건 뭘까. 아니, 국가라는 건 뭘까. 우리가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옥죄어 오는 걸까. 절망이 예견된 대한민국. 그 이름 속에 나는 있었던가? 청년 실업률, 부동산, 비정규직, 성별 임금 격차, 교육과 계급의 대물림. 왜 사람이 살지도 못할 건물은 높아지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낮아지기만 하는 걸까. 수많은 발자국이 이 땅을 딛고 지나갔지만, 그 선대의 발자국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게 덮여 과거의 잔재가 되어버렸다.

나는 문득, 내 걸음 소리가 너무 크게 울린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도시는 공허하다. 계획된 도시, 계획된 삶, 그리고, 묵살된 목소리. 나는 멈춰 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산으로 향했다. 흙을 밟고 싶었다. 다음은 흙이다. 그곳에, 나를 세워두어야만 한다.

푹 꺼지는 신발에 놀랐다. 마치 너무 오래된 것을 다시 만나 떠올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나는 유연하게 나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흙의 감촉에 오히려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더 뻣뻣해졌다. 천천히 힘을 주어 땅을 디딘다. 아… 그렇지. 땅은 원래 이런 감촉이었지. 흙은 말랑했고, 조금은 차가웠고, 감각은 생생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했다. 나는 신발을 벗었다. 양말도 벗었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흙의 온도에, 피부가 아닌 마음으로 느껴졌다. 상상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나는 마치 다른 세계에 끌려간 것처럼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기분을 받는다. 단지 다른 것을 딛고 서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기가 바뀌는 것을 느낀다. 사락- 사락- 거리는 나뭇잎들의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마치 돌아온 탕아를 반겨주는 듯하면서, 잠깐 끊어졌던 ‘연결’을 반기는 듯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걸어온 이 산책길. 도시, 건물, 시멘트, 아스팔트, 엘리베이터, 모두 이 흙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문명은 흙을 덮었고, 국가는 흙을 잘랐고, 도시는 흙을 잊었다. 우리는 효율과 자본이라는 이름 아래서, 그저 존재할 뿐이었던 모든 것들을 계량해 판매했다. 그러나 자연은 가만히 모든 것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흙으로 빚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고 우리가 죽을 때, 우리는 ‘돌아간다.’라는 말로 순환을 떠올린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가 ‘나’인 경계가 흐려졌다.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만약 그런 게 정의된다면 아마 ‘나’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겠지. 그러면, 과연 정말 ‘나’는 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가? 흙을 응집시키는 곰팡이는 과연 없다면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지구의 나무가 없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공기를 마시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우리였고, 나는 지구였고, 나는 우주였다.

우주에서 내리쬐는 에너지, 하늘에서 조용히 대류를 하는 공기들, 지구가 스스로 생동하는 열, 끊임없이 파도치는 바다, 모든 것들이 딛고 서 있는 땅, 그 위의 식물과 동물들, 그 안에서 작동하는 세포들, 세포들을 움직이게 하는 독립된 DNA를 가진 미토콘드리아…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그 모두가 지금 내 주변에서 조용히 생동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걷지 않았다. 그저 서 있었다. 흙 위에서.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의 연결인 이곳에서.




저 멀리서 어슴푸레 하늘이 밝아져 온다.

이번 산책은 너무 길었네. 하곤 주섬주섬 신발을 다시 신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어머니.’

나는 고개를 숙여 가벼운 인사를 올리곤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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