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게임중독.

<소설 - 단편>

by 황기영


거실엔 또 같은 소리.


‘보상-! 부여됩니다!’ 어눌한 한국어. 아마 조잡하게 번역된 탓이겠지. 양산형 퍼즐 게임의 효과음이 번진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멜로디가 공간에 퍼진다. 텔레비전도 꺼진 채, 그 소리만이 집안에 공허하게 울린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름진 손가락으로 화면을 탭 하고, 실수로 광고를 눌렀다며 나를 불렀다. 태스크를 보니 게임이 열 개가 넘게 켜져 있고, 알림은 더 많다. 대부분 광고다. 아니, 전부 광고다. 엄마의 아침은 그걸 모두 확인하느라 늘 분주하다.


“엄마는 그게 재밌어?”


나는 눈을 흘기며 식탁에 앉아 말한다.


“그런 거 전부 돈 쓰게 하려고 만드는 거야. 중독자 만드는 거라고. 안 그래도 저번에 광고 잘못 눌—”


“얘 또 그 이야기. 나 진짜 돈 안 써.”


엄마는 웃는다. 어딘가 멋쩍고, 비어 있는 웃음.


“그냥 하는 거야. 이제 알았으니 안 속지. 무료로도 꽤 재밌어. 우리 같이 해볼래?”


나는 길게 한숨을 뿜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는다. 소리는 여전히 문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온다. 엄마의 소리가 아니라, 게임의 소리가.


아니, 딱히 구별할 필요도 없던가.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집안이 이상했다.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뭐야?”


현관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벽이 잿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엄마는 행주를 삶던 냄비가 타버렸다고 했다. 엄마 말로는 물을 넣고 불을 켜둔 채, 소파에서 게임을 하다가 깜빡했다고 말하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불은 다행히 크게 번지지 않았다. 연기가 심했지만 물을 바로 끼얹은 덕에 불씨는 금세 잡혔다고 한다. 소방차를 부를 일은 아니었지만, 벽과 천장에는 짙은 자국이 남았다. 뒤처리를 생각하면 골치 아파 올 일이었다. 탄 냄새 덕분에 두통이 더 몰려오는 듯했다. 그날 이후 몇 주 동안 거실은 언제나 그을린 냄새가 배어 있었다.


“또 게임하다가 깜빡한 거야?” 사고 당일, 아빠는 한숨을 쉬며 말하고, 동생은 “진짜 심각하다”며 혀를 차고 방으로 들어갔다. 각자 저녁을 먹고 들어온 터라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집에서 밥을 먹는 건 나와 엄마뿐이었던 게 꽤 오래된 이야기였다.


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의 손을 잡았다. 영혼이 빠진 듯, 엄마의 손은 놀랍도록 차가웠다. 나는 엄마의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놀랐지? 괜찮아?”


내가 묻자, 엄마는 희미한 의식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으응. 그래. 이제 게임은 그만둬야겠다.”


또 그 웃음이다. 멋쩍은 미소.

울 것 같고, 아무렇지 않은 척도 같은 얼굴에 띈 공허한 미소.


나는 엄마를 안아준다. 오랜만에 엄마 품에서 나는 무언가 익숙한 냄새를 느낀다. 탄 냄비 냄새와, 싸구려 바디워시 냄새와, 오랜 시간 헤묵은 슬픔 같은 것들의 냄새. 나는 엄마를 안고 있는 채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굳게 닫힌 방문들뿐이었다.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거실의 매캐한 공기와 달리, 내 방은 놀랍도록 깔끔했다. 연기마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던 듯. 바닥엔 먼지도 없고, 커튼은 그대로 닫혀 있다. 문을 닫고 방 한가운데 서서 한참 동안 숨을 쉰다.


정적 속에서 들리는 것들. 동생의 컴퓨터 소리. 아빠의 핸드폰 소리. 매번 똑같은 벽너머의 소음들. 하지만 원래는 들려야 할 엄마의 게임 소리가 사라졌다.


문틈 아래로 흐릿한 빛이 감돌았다. 나는 조용히 다시 문을 열고, 거실을 바라본다. 그을린 천장, 벽에 남은 자국, 그리고 멍하니 베란다를 바라보는 엄마. 잿빛의 벽에 덩그러니 놓인 엄마가 너무 작아 보였다.


그 옆으로, 아빠 방과 동생 방의 문도 굳게 닫혀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화재는 지나갔다. 소방차도 필요 없었다. 집도 불에 타지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다. 하지만 어딘가 타들어간 건 여전히 그대로 인 것 같았다. 어쩌면, 더 깊이 스며들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같이 해볼래?’


문득 광고하나 떴다고 어쩌지 못해 나를 불렀던 엄마를 떠올린다. 그런 사람이 ‘게임 중독’이라니. 그런 건 사실 다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어쩌면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지금도 가만히 앉아 있다. 창밖은 어둡고, 그 안에 엄마의 모습은 더 어둡다. 마치 새까맣게 불타버린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일으켜 엄마에게 다가갔다. 어깨에 손을 올린 나에게, 엄마는 생경한 일처럼 흠칫— 하고 몸을 움츠렸다.


“이제 치워야지. 같이 하자, 엄마.”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엄마는 이번엔 웃지 않았다.


참고 참았던 무언가를 잔뜩 쏟아내었다.


. 그것만으로 이 까만 탄내가 씻겨 내려갈 듯이.


• • •


매거진의 이전글<공지사항: [지구] 서비스 종료 관련 안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