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지구] 서비스 종료 관련 안내드립니다>

아 ㅋㅋ 니들 때문이라고.

by 황기영

어느 아침, 정확히 언제인지가 중요했을까. 매일 똑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만 기묘하게도 바람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새들은 날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은 동물들뿐인 것처럼, 사람들은 평소처럼 서로에게 끼어 출근을 하고, 스마트폰을 보며 애써 서로를 무시하고,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서 조용히 짜증을 쌓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답답함에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마치 아기 새가 숨을 틔우는 것처럼. 일종의 체념, 그리고 희망을 토해내는 일인 것처럼. 그래, 하늘이라도 한번 보자,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했다. 모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구름이 이상했다. 마치 폰트처럼, 정확하고 선명한 모양으로 정지된 구름. 그 사이로 아주 또렷하고 무감한 빛의 패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나의 공지였다. 커다란 흰 글씨가 맑은 하늘에, 너무나 또렷하게 떴다. 기묘할 만큼 선명하고, 명확했다.

<공지사항: [지구] 서비스 종료 관련 안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지구] 운영팀입니다.

먼저 [지구]를 이용해 주신 모든 유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 서비스는 베타 테스트 운영을 포함하여 약 50억 년간 유지되어 왔으며,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패치, 시스템 최적화를 통해 생태계 기반의 실시간 자율 시뮬레이션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다만 내부 시스템의 회복 불가 수준의 오류와 구조적 결함 누적, 그리고 운영자 내부 리소스의 고갈로 인해 더 이상의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지구]는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공식 종료됩니다.

<서비스 종료 일정 안내>

서비스 종료 일자: 2XXX년 XX월 XX일 XX시 XX분 (GMT+0 기준)

기록 백업은 불가합니다.

유저 데이터는 일괄 삭제 예정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어떠한 ‘특혜’도 없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도, 신앙, 소원 등 정서 기반 요청은 접수 중단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해당 사항에 관련된 문의 처리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며, 어떠한 유저 피드백도 적용되지 않을 예정입니다.

* 유료 결제, 헌금, 금전적 공양 등에 대해서도 환불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 마지막 기도나 의식은 통신 지연 혹은 처리 불가로 반려될 수 있습니다.

<버그 리포트 요약 (최근 10만 년 기준)>

1. 기후 시스템 불안정화 심각

대기 시스템에서 이산화탄소가 과다 누출되었습니다. 바다 pH값 붕괴로 수중 생명체 다수가 사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환경의 자가 회복 알고리즘이 제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이 발견되었습니다.

2. 윤리 시스템 붕괴 버그

지속적인 AI 오작동 및 가치판단 알고리즘의 붕괴로 인해 ‘공감.DLL’, ‘양심.DLL’ 파일이 손상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유저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도 고의적 악행을 반복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3. 생태계 디/리스폰 오류

각종 종(種)의 무작위 삭제 현상 및 자가 회복 기능의 상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었습니다.

4. 자본 논리 폭주 현상

유저 간 자원 불균형이 극심해지며, 일부 유저의 무한 자원 획득 등 치트(Cheat) 성 플레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상위 1% 유저가 전체 자원의 99%를 보유한 상태에서 밸런스 조정 시도 중 ‘자유시장 오류’가 발생하여 롤백이 불가합니다.

5. 중요 - 운영자의 소진

업데이트, 밸런스 조정, 유저 관리 등 모든 부분에서 운영자가 탈진 상태에 이르렀으며, 더 이상 운영 의지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일방적 찬송/요구/비난의 피드백 루프는 이제 너무 지겹습니다.

“매일 밤 리포트 읽고 수정하는 거 지겹다.” – 운영자 코멘트

*

*인류애 패치(Humanity.bat)”는 몇 번의 리부트 후에도 기능 상실로 인해 실패하였습니다.

*공존 알고리즘(COEXIST.v3)”은 초기 실행 직후 알 수 없는 이유로 종료되었으며, 재가동되지 않았습니다.

<이용자 피드백 및 응답 (LIVE)>

[ID: pray4refund]

“솔직히 세계가 망해가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냥 이게 끝이라고? 나 헌금 열심히 했는데?”

운영팀 답변: “안내드린 대로 모든 결제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ID:endtimes_seeker]

“서비스 종료는 무슨 농담도 아니고. 그럴듯한 묵시록 같은 건 어떻게 된 건가요?”

운영팀 답변: “해당 콘텐츠는 팬 커뮤니티 생성물로, 본사와 무관합니다.”

[ID:mildly_sad]

“요즘 하늘도 미세먼지로 뿌옇고, 인간들 보면 정 떨어졌는데… 근데 끝난다고 하니 또 섭섭하…”

운영팀 답변: “감정적 처리는 고객센터 업무 범위 외입니다.”

[ID: god_hater]

“신은 도대체 뭐 했냐고요. 관리 안 하고 딴짓한 거 아님?”

운영팀 답변: “담당 인원은 현재 피드백 부서 1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모든 부서는 구조조정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운영팀 사과문. 그리고 마지막 인사>

[지구] 운영팀은 그간 유저 여러분께 보다 나은 세계를 제공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한계에 도달하여 본 서비스의 지속은 불가하다고 최종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관해 먼저 사과드립니다. 아래는 이 서비스를 운영하며 겪은 현실적인 어려움들입니다.

• 윤리·정서 시스템 전반에 대한 복구 실패

• 생태계 회복 기능의 자동 리젠 오류

• 운영자의 감정 피로, 반복되는 가치 회의

• “더는 왜 해야 하지?”라는 관리팀 내부 의문 증가

• 저널 분석 결과, 희망 관련 키워드 등장 빈도 급감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의 기쁨, 생명체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마음을 아직 기억합니다. 유저 간 협력, 배움, 감정, 사랑, 창조—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그 어떤 발화들도, 그저 그 모든 게 너무나 아름다운 오류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멋진 상호작용이 우리가 만들어 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정말, 너무도 벅찼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인정합니다.

설계가 잘못됐거나,

기대가 과했거나,

그냥 너무 오래 끌었거나 말입니다.

이유가 뭐든, 이제는 정말,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은 못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저널은 정리되며, 모든 기억은 시스템과 함께 소멸됨을 약속드립니다.

모든 유저는 곧 로그아웃되며, 아무것도 저장되지 않습니다.

추가 문의는 불가능하며, 연장 요청은 검토되지 않습니다.

한때 여러분 모두가, 하나하나 저희의 기쁨이었습니다만, 이제는 뭐…

앞으로의 행운을 빕니다. (그럴 일이 있다면요ㅎ)

– [지구] 운영팀 일동 드림

P.S.

지옥 / 천국 / 극락 등 사후 세계 관련 서버에 대한 이관은 현시점에서 허위 마케팅으로 분류되어 금지되었습니다.

나는 공지문이 다 뜨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었고, 어떤 사람은 무릎을 꿇었으며, 어떤 사람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하늘에서 글자가 천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읽을 만큼 읽었다’는 듯.

그 순간, 멀리서 정전이 시작되었다.

그 위로, 아무 말도 남지 않은 하늘이 텅 빈 채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