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적인 차별.
인간 중심이 아닌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게 된 것이 얼마나 됐을 것 같아? 어쩌면 지금까지의 자연스러움은 진정한 자연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국가, 인종, 정치가 채워진 가짜 자유인 것처럼 말이야. 우리는 우리의 껍질을 깨지도 못한 채 흐릿한 알의 벽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몰라.
있잖아. '자연스럽다'라는 이야기를 하니까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곤 해. 어쩌면 인간은 너무 오래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이 지구상에서 정말 늙어서 죽을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나는 인간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존재가 없어. 그럼에도 사람에게 죽음은 너무나 두려운 것이라서, 어쩌면 모든 발전이란 건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몰라. 어쩌면 모든 것의 원인은 두려움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두려움에 대해선, 우리는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의외로 그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 어쩌면 우리에게 허용된 것은 단 두 가지일 뿐이야. 하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연민. 두려움은 가장 오해받는 감정이지. 사실은 '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왜 인간은 매번 이 두려움을 이겨내려고만 하는 걸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극복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두려워하면서도 연민하는 것이 어쩌면 사랑일지도, 또 용기일지도 모르는데.
연민에 대해선, 안타깝게도 우리는 공존의 방식을 잊어가는 것 같아. 세상의 너무 많은 것들이 착취의 문법으로 쓰여왔으니 말이야. 자연적으로 다양성으로 가득했던 숲을 지우고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든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 공식이 들어오는 건 당연하겠지. 아니, 오히려 그 기준이 다르다면 더 문제가 되겠지.
내가 공존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건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생각해 온 오래된 이야기 같은 게 아니야.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혼자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왔어.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었지. 하지만 결국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는 건 아주 지독한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됐어. 아주 다행인 일이지. 하지만 그런 깨달음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타인을, 혹은 반대편을 모욕할 것, 짓밟아야 할 것, 죽여야 할 것으로 보는 경우를 너무 오래 봐왔어. 이 '인공적인' 정체성들 말이야. 내가 느끼는 차별은 그 '인공적인 순수성'을 지키려는 태도라고 느껴.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오염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어. 마치 백신처럼, 다양성은 일종의 면역력이 되어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존속을 유지시켜 나가게 될 테지. 이건 단순히 신체적, 생물학적인 부분의 이야기가 아니야. 생각과 영혼 역시 그래. 하지만 어떤 생각이든 '순수함'은 실은 나약할 뿐이야. 개인이란 건 너무 작고, 그 개인의 한 가지 생각은 너무 깨지기 쉬우니까. 나는 그 순수함의 '인공성'이 두려워. 초가공, 추출, 정제의 과정이 개입되지 않으면 '완벽한 순수함'이란 건 존재할 수 없으니까. 난 그 정제된 인공적인 정체성에 휘둘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 환상을 쫓는 일은 언제나 조금 씁쓸한 일이니까. 필터링된 자아상이 자신의 것이 아닌데도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 일은 정말 공허하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환상과 공허감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답은 간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입장을 섞으며, 타인을 거울삼아 나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선 두 개의 거울로서 서로를 무한하게 비추는 일. 그 과정으로 사람의 영혼은 겹치게 되겠지.
그렇게 우린 정말, 정말로 애써서 손잡고 살아야 해.
서로를 응원하고, 서로를 보듬으면서.
다시 자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인간 중심에서 벗어난 자연은 놀랍게도 '약육강식'이 아니야. 모든 개체는 상호 호혜적으로 존재하고, 상보적인 관계로 개체군이 유지돼. 식물들 사이에는 '어머니 나무'가 존재하고, 균류와 정보를 교환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지. 인간이 착취의 문법으로 쌓아온 것이 채 100년이 되지 않았는데 우린 벌써 '인간의 멸종'을 걱정한다는 걸 떠올려 봐. 우리의 삶이 착취의 문법 사이에 있다는 걸 알았다면, 이젠 조금 다른 문법을 가져와야 할 때가 된 건 아닐까?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
나와 다른 타인을 거울삼아 바라보고 싶어.
차별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생각해.
혼자는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걸 생각해.
어쩌면 연민과 두려움이 인간 감정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재미없지?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애써서 사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