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권리를 반납했다

by 최호랑

사고 당시 앞니 하나가 깨져 치과 병동으로 향했다. 치과 특유의 서늘한 소독약 냄새가 신경에 거슬렸다. 이를 씌우기 위해서는 우선 엑스레이 촬영을 해야 했다. 손바닥만 한 검은색 물체를 건네받았다.


“혀 아래에 깊숙이 넣고 꽉 누르면 돼.“


말은 쉬웠다. 하지만 깨진 앞니를 함께 짓누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다 드러난 신경 위에 딱딱한 플라스틱을 짓이겨 넣는 고통을 아는가? 별이 보인다는 어른들의 비유를, 나는 고작 열 살에 몸으로 깨우치고 말았다.


“더 꽉 눌러야 해. 안 그러면 다시 찍어야 한다.”


눈물이 턱끝에 대롱대롱 고인 채로,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기계를 눌렀다. 신경을 타고 흐르는 통증은 찌릿하다 못해 뇌세포 하나하나를 터뜨릴 것처럼 머리에 쏠렸다.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은데, 촬영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결국 나는 엉엉 울며 손을 놓아버렸다.


그때, 방 건너 유리 벽 너머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의 한숨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넘어왔다. 확성기를 댄 듯 귓가를 울리는 그 소리에 심장이 팽창했다. 나의 고통보다 타인의 피로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선생님이 들어와 직접 기계를 누르며 시범을 보였다. 그 무신경한 손가락을 꽉 물어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침을 질질 흘리며 울음을 삼킬 뿐이었다.


“하... 이거 꼭 해야 해. 좀 참아 봐.”


얼굴 흉터에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가 눈물에 불어 터질 때까지 울었다. 결국 촬영을 포기하고 복도로 나왔다. 대기실 모니터에는 ‘진료 지연’ 안내 문구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모두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좀 참아. 지금 너 때문에 진료 다 지연됐잖아.”


엄마의 날 선 목소리에 가슴이 찢어졌다. 괜찮냐고, 내 새끼 많이 아팠냐고, 그냥 오늘은 집에 가자고 말해주길 바랐다. 너무 아파서 못 하겠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표정을 보는 순간 그럴 수 없음을 직감했다. 엄마의 얼굴 위로 한숨을 내뱉던 선생님의 얼굴까지 겹쳤다.


아, 그렇구나. 나는 아프면 안 되는구나. 내가 아프면 모두가 불편해지는구나. 나한테 아플 권리 따위 없구나.


주먹을 꼭 쥐고 촬영실로 다시 향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또 다른 통증을 만들어낼 때까지 힘을 주었다. 고통을 분산시켜야만 버틸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냥 차에 치여 죽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던 기억뿐이다.


그 뒤로도 나는 수없이 많은 치료와 수술을 받았다. 맨 정신에 잇몸을 찢기도 했고, 부분마취로 코를 다 뜯어낸 적도 있다. 그때마다 허벅지든 손바닥이든 쥐어뜯으며 참았다. 담당 교수님들은 내가 잘 참는다며 기특해했고,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도 나를 ‘의젓한 아이’라며 예뻐했다.


‘나는 참아야 사랑받는다. 마음 놓고 아플 권리는 없다.’


참는다는 행위의 범위는 신체적 고통을 넘어 심리적 영역까지 뻗어 나갔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웃으며 넘겼다. 그래야 미움받지 않는다고 여겼다. 칭찬은 달콤했지만, 그 대가로 나를 지킬 권리를 반납해야만 했다.


고통이 밀려올 때마다 입안 어딘가에 딱딱한 기계가 박히는 기분이 든다. 그때마다 내 안의 열 살짜리 아이는 주먹을 꼭 쥐며 속삭인다. 참아야 사랑받는다고. 비명 지르는 법을 잊어버린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안에서 아플 권리를 밀어내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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