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얼굴 좀 나아지면 그때 그리자.”
캐리커처를 받고 싶다는 내 말에 아빠가 대답했다. 가족들과 떠난 서해 바다에서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막내 이모네도 함께라 잔뜩 부풀어 있던 마음 위로 순식간에 먹구름이 깔렸다.
그날의 서해는 유독 짠바람이 불었다. 선선한 날씨 덕에 티셔츠 한 장 입으면 딱 좋았다. 조개구이를 배불리 먹고 기분 좋게 산책을 나온 참이었다. 바닷가 앞 둑길에는 솜사탕, 엿, 사주, 타로 등 온갖 잡상인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각설이 타령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호박엿 하나를 사 들고 걷다 보니 캐리커처 가판대가 눈에 띄었다. 특징을 잡아 우스꽝스럽게 과장해 그린 그림들이 왠지 재미있어 보였다.
“나도 저거 할래!”
마침 또래 아이 하나가 수줍은 듯, 자랑스러운 듯 묘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도 꼭 저기에 앉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른들 사이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눈빛이 오갔다. 아빠, 엄마, 이모, 이모부…. 누구라 할 것 없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모네는 못 들은 척 서둘러 앞서 걸어갔다.
“나중에 얼굴 좀 나아지면 그때 그리자.”
“난 지금 해도 괜찮은데?”
“더 예뻐지고 그리면 좋잖아. 그렇지?”
사고 후 1년 정도 흘러 내 얼굴을 받아들인 참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하며 남들과 다를 것 없이 살아보려 했었다. 하지만 아빠의 그 다정한 거절이 내 상태를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지금 캐리커처 한 장조차 남기기 어려울 만큼 망가진 상태라는 사실을 말이다.
부모님 앞에서 울긴 싫어 씩씩하게 알겠다고 답하고 둑길을 뛰었다. 바다의 짠 내음과 내 속의 울음이 섞여 코가 찡했다. 끼룩, 끼룩, 끼룩…. 갈매기들이 대신 울어준 오후였다. 그 후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캐리커처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 스물두 살쯤, 사촌 동생이 태블릿으로 내 캐리커처를 그려줬다. 서프라이즈라며 보내준 파일에는 동그란 얼굴 위로 직 그어진 흉터가 돋보이는 그림이 있었다.
”음... 이 흉터는 지워주면 안 돼?“
사촌 동생은 귀찮다는 듯 살구색 브러시를 찾았다. 쓱쓱 덧칠해 흉터가 덮이자 내가 바라던 내 모습이 나타났다.
“예쁘다. 고마워.”
“근데 그러면 누나가 아닌데….”
동생은 굳이 흉터가 있는 원본도 함께 저장했다. 캐리커처가 뭐라고 자꾸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 걸까. 내가 이렇게 생긴 게 뭐 어때서? 그림에서라도 흉터 좀 지우면 어때서? 캐리커처가 싫었다. 동생의 선물도 짜증 났다. 애써 덮어둔 상처가 다시 찢긴 듯했다.
시간이 흘러 특정 캐리커처 업체가 데이트 필수 코스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선으로 그려주는 방식이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하필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캐리커처를 꼭 그리고 싶어 했다. 난감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피해 다니던 어느 날, 플리마켓에서 수채화 캐리커처 부스를 발견했다. 남자친구는 냉큼 그 앞으로 뛰어갔다.
“여기 그림이 더 예쁘다! 여기서 그리고 가자.”
거절할 타이밍을 놓쳐 주춤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작가님이 우리를 꼼꼼히 살피며 선을 그려갔다. 불편했다. 내 짝눈과 흉터, 무너진 코가 낱낱이 파헤쳐지는 것 같았다. 작가님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불안했다. 지옥 같은 20분이 흐르고 마침내 그림이 완성됐다.
그런데 웬걸. 그림 속의 나는 화사하고 예뻤다.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이 제법 귀여웠다. 감추고 싶던 부분은 다 감춰졌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내 모습만 담겨 있었다.
그래, 캐리커처가 뭐라고. 까짓거 이렇게 받으면 되는걸. 그림 속 내 얼굴 위에 칠해진 따뜻한 수채화 물감이 마음속 흉터까지 쓱, 덮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