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하얀 감옥

by 최호랑

우리 집은 가난했다. 옥탑부터 반지하까지 가난의 표본인 집을 넘나들며 살았다. 아빠는 차가 없어 막내 이모의 초록색 마티즈를 빌려야 했다.


그런 우리 집에 드디어 차가 생겼다. 아빠는 금의환향하듯 하얗고 번쩍거리는 차를 끌고 나타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시 내 눈엔 그 차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차였다.


"우리 이제 이거 타고 신나게 돌아다니자!"


살면서 봤던 아빠의 미소 중에 가장 어린아이 같던 해맑은 미소였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차를 보며 히히히 웃던, 생애 첫 차에 가슴 뛰던 아빠다.


차에는 하나둘씩 우리 가족의 추억이 늘어갔다. 내가 만든 캐릭터 키링이 백미러에서 달랑거렸고, 각종 음악 테이프가 글러브박스에 가득했다. 이제는 차도 우리 가족이었다.


2년 뒤, 우리 차는 왼쪽 면이 다 찌그러져 버렸다. 유리창과 좌석엔 피가 흥건했다.


반대편 차선에서 달리던 SUV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해 들이받았다. 우리 차에는 아빠, 나, 그리고 사촌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아빠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하필 나는 운전석 뒤에 앉아 유리창에 기대 자고 있었고, SUV 차량은 나를 강타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촌은 다 찢어진 내 얼굴이 무서워 오른쪽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고 나갔다. 그렇게 우리 차는 만신창이가 됐다.


엄마는 사고 당시 내가 입고 있던 옷, 안경을 전부 버렸다. 사고의 흔적이 묻은 거라면 뭐든 버리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했기에 차를 버릴 순 없었다.


병원에서는 내가 평생 차를 못 탈 수도 있을 거라 했지만, 사실 나는 사고 당시 기억을 거의 잃었기 때문에 별 거부감이 없었다. 수리된 차는 새 차 같았고, 나는 여전히 우리 차가 좋았다.


그러다 문득 피비린내가 났다. 분명 차 안은 쾌적했다. 에어컨을 타고 디퓨저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꾸 왼쪽 자리에서 피 냄새가 났다. 조수석 뒤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엔 정체 모를 비명이 들렸다.


"우리 차 바꾸면 안 돼?"


정적이 감돌았다. 내 귀에만 비명이 들렸다. 대답 없는 엄마, 아빠가 미웠다.


"차 바꾸자."

"무슨 소리야. 이렇게 멀쩡한데."

"나 싫어. 이 차 타기 싫어."

"잘 타고 다니다 뭔 소리야. 조용히 해."


모질게 말하던 엄마의 표정을 보진 못했다. 아마 울음을 꾹 참고 있었을 것 같다. 아빠는 말없이 운전만 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음악 소리가 커질수록 비명이 난무했다. 하지만 더 고집을 부렸다간 혼날 것 같아 말은 못 한 채 울기만 했다. 내 숨죽인 울음소리가 엄마, 아빠에겐 비명보다 괴로웠을 거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차를 바꾸지 못한 채 불편한 여정이 이어졌다.


새 차를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직접 운전을 하게 됐을 때 깨달았다. 그 차를 계속 끌어야 했던 아빠의 심정을.


사고가 난 지 1년 정도 지났던 어느 날, 아빠가 술에 취해 펑펑 울던 밤이 있다.


"미안해. 미안해 아가. 아빠가 핸들을 틀지 말아야 했어. 우리 딸 예쁜 얼굴을 이렇게 했어... 내가."


아빠는 운전할 때마다 그날이 스쳐 갔을 거다. 핸들을 꺾지 않았더라면, 다른 길로 갔더라면.... 수없는 가능성을 떠올리며 자책하고 괴로워했을 거다. 어쩌면 아빠에게도 피비린내가 났을 텐데. 아빠 귀에는 내 비명이 들렸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아빠 가슴에 대못을 박아왔던 지난날의 내가 사무치게 원망스러웠다. 아빠라고 왜 그 차를 바꾸고 싶지 않았을까. 누구보다 빨리 도망치고 싶었을 사람은 아빠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은 아빠를 그 운전석에 계속 묶어두었다.


아빠에게 그 차는 일상의 수단이자, 도망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하얀 감옥이었다. 매일 아침 찌그러진 차체를 기워내듯 무너진 마음을 겨우 이어 붙이며 그 핸들을 잡아야만 했을 것이다.


마침내 그 하얀 감옥을 떠나보내던 날, 아빠는 운전석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낡은 핸들 위에서 떨리던 아빠의 손등과, 차마 헤아릴 수 없는 회한이 뒤섞인 그 눈빛....


이제야 아빠의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나는 새 차의 핸들 위로 고개를 묻고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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