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모두 꺾였다. 이제 나는 축 쳐진 날개를 질질 끌며 걷는 새가 됐다.
스무 살, 드디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설렘에 부풀었던 적이 있다. 사방에 지원 문자를 보냈고 네 군데서 면접을 봤다. 일하게 된 제과점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들은 얘기가 있다. "얼굴이 왜 그래요?" 혹은 "서비스직이라 외모가 중요하거든요."
처음 마주한 사회에서 내 날개는 너무도 쉽게 뚝, 부러져 버렸다. 면접이 끝나고 엉엉 울고 싶어 무작정 걸었다. 버스 안에서 사연 있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지면이 자글자글 끓는 여름이었다. 입안으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자꾸 흘러들었다. 짜다 못해 쓰던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사실 얼굴이 왜 그러냐는 질문은 수도 없이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또래의 무지에서 나오는 무례였기에 참을 수 있었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 거라 믿었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 앞에 내 날개는 너무도 쉽게 망가졌다.
사람이 급했던 제과점에서 악착같이 일했다. 외모 따위 상관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더 많이 웃고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무례한 손님들이 내 얼굴을 걱정하는 척 참견할 때도 웃었다. 천진한 얼굴로 "저 누나 이상해"라며 손가락질하는 아이 앞에서도 울지 않았다. 괜찮다고, 나는 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무엇보다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면 이제는 정말 이런 무례함 따위 겪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 믿음으로 대학 시절을 또 참아냈다.
졸업 후 한 방송 제작사에 입사했다. 제법 유명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상식적인 사람들만 모였을 거라 믿었지만, 그 환상은 또다시 순식간에 깨졌다.
”물어볼 게 있는데... 얼굴이 왜 그래요?“
자신이 꽤 고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나이 든 여직원이었다.
”어릴 때 사고가 나서요.“
”어머... 여자 얼굴에 그렇게 큰 흉터가 있어서 어떡해.“
고상은 무슨. 치가 떨렸다. 내 사고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던 그녀는 모든 얘기를 팀장에게 전했다. 그리고 팀장은 사무실 한복판에서 대표에게 큰 소리로 떠들었다.
“대표님, 얘가 어릴 때 교통사고가 났대요. 그래서 이렇게 아프대.“
죽고 싶었다. 그런데 죽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게슴츠레하게 나를 흝었다. 그냥 웃었다. 또 웃었다. 퇴근길에 도로로 뛰어들까 몇 번을 망설였다.
그래도 몇 번 겪어본 무례함이라고, 남은 날개 하나가 아직 붙어 있었다. 조금 부어오른 것 같았지만 다시 날아보려 애썼다. 제작사를 떠나 영상 제작 회사로 옮겼다. 팀과 직급이 있어 예의를 갖추는 분위기가 좋았고, 일도 제법 잘 해냈다. 이 길이다 싶어 몸집을 불려 이직했다. 그리고, 바로 추락했다.
“병원은 왜 다니는 거야?”
상사와 단 둘이 외근 가던 길이었다. 수술 경과를 보기 위해 병원에 가느라 월차를 쓴 직후였다. 좁은 차 안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지만 얼굴이 후끈거렸다. ”어릴 때 사고가 나서요.”라고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안타까워하겠지, 그러면 난 또 웃으며 넘겨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옷깃을 쥐어뜯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말들이 쏟아졌다.
“부모님이 더 속상하셨겠다. 내가 부모 입장이라 그런지 그 마음이 더 신경 쓰이네. 너도 힘들었겠지만 부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딸인데 흉터 생겨서 속상하시겠다. 어렸을 때 사고 난 거면 친구들도 무서워하고 그랬겠네? 왕따도 당했니? 근데 뭐, 걔네도 어렸잖아. 어쩔 수 없지.“
‘어쩌라는 거지? 자기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뭘 알기나 해?’
참아온 분노와 서러움이 속에서 들끓었다. 남은 날개마저 보기 좋게 부러졌다. 내 마지막 비상이 추락으로 끝났다.
아침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눈이 떠졌다.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누가 내 눈을 빤히 보면 눈물부터 터졌다. 이대로 밖을 다니다가는 정말 도로든 강물이든 뛰어들 것 같아 회사를 그만뒀다.
한참을 앓았다. 온갖 감기를 달고 살고, 피부가 뒤집어지고, 하혈을 하고, 머리카락이 빠졌다. 마음의 진물이 온몸으로 퍼진 듯했다. 이유를 모르는 가족과 남자친구는 한참을 괴로워해야 했다.
서너 달이 흐른 뒤에야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밖에서 이런 삶을 살아왔다고. 더 이상 날지 못하겠다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남들과 다르지 않다며 늘 나를 강하게 키우던 엄마가 이번에는 달랐다. "힘들었지. 괜찮아. 얼마나 힘들었니." 엄마의 어깨가 다 젖고 내 볼이 짓무를 때까지 울었다. 엄마가 무너질까 봐 늘 강한 척만 해왔는데, 이제야 겨우 응석을 부렸다. 남자친구는 내 예쁜 얼굴 하나 보고 만나는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쩌면 날개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아주 조금 생겼다.
다시 용기를 내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옅게 화장을 하고 갔는데 흉터가 보이지 않게 더 짙게 화장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 여전히 쉽지 않다. 하필 돌아오는 길은 퇴근 시간이었다. 모두가 멋지게 날고 있는데 나만 바닥을 기는 기분이었다.
꺾인 날개가 다시 붙을 수 있을까. 평생 걷기만 하다가 다리마저 잃는 게 아닐까. 꼼짝도 못 한 채 도로 위에 누워 죽어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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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