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을 기회를 주소서

by 최호랑

첫 수술의 기억은 파편화되어 있다. 간호사가 내 입에 마스크를 가져다 댄 것이 가장 선명한 첫 조각이다. 숨을 크게 쉬라는 말에 두어 번 폐를 부풀렸을까, 그대로 암전이었다. 비몽사몽 눈을 떴을 때 세상은 형체 없이 일렁였다. 누군가 침대를 밀고 있었고, 비릿한 소독약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우리 아가예요...?”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 엄마... 나 너무 춥고 무서웠어.’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파왔다. 엄마의 손을 잡아보지도 못한 채 중환자실로 격리됐다. 잠시 잠든 것 같았는데 너무 많은 게 변해 있었다.


두 번째 수술날, 엄마는 나를 보며 억지로 활짝 웃어주었다. “아가, 잘 다녀와. 파이팅.”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엄마의 젖은 눈을 보니 울컥 울음이 차올랐다. 수술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손이 덜덜 떨렸다. 무영등 아래 누워 내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뚜뚜.. 뚜뚜..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살고 싶다는 몸의 비명 같았다.


“무서워, 아가?”

“네...”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거야. 괜찮아.”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새겨져 있을 흉터가 두려웠고, 마취가 깬 후 몰려올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무(無)’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 공포스러웠다. 매 수술마다 나는 믿지도 않는 신을 붙들고 기도했다. 제발 다시 깨어나게 해달라고. 살려달라고. 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내 몸은 자주 마취약을 거부하며 끝까지 의식을 붙들곤 했다.


그러다 열댓 번째 수술을 앞둔 어느 밤이었다. 문득 마취에서 깨어나는 것이 정말 축복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영원히 잠들면 타인의 시선과 지독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왜 나는 그토록 처절하게 깨어나길 빌었나 싶었다. 산다는 건 지지부진한 고통의 굴레로 다시 복귀한다는 것, 그뿐이었다.


링거를 꽂은 퉁퉁 부은 손으로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그동안 나를 돌봐줘서 고마웠다고.


새벽 7시, 덜컹이는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향했다. 어쩐지 저승으로 가는 길 같아 목덜미가 서늘했다. 차가운 약물이 혈관을 타고 들어와 의식이 흩어지는 찰나, 나는 평소와 다른 기도를 올렸다. ‘제발, 이대로 끝나게 해 주세요.’


그날은 신기하게도 마취가 단번에 들었다. 그리고 깨어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어나세요! 정신 차리셔야 해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아, 결국 일어났구나. 허망함이 몰려왔다. 수술 부위의 통증이 폐부를 찔러 숨이 턱 막혔다. 나를 이승으로 끌어올린 무명의 신을 원망하며 울부짖었다.


그 뒤로 전신마취를 할 만큼의 큰 수술은 더 없었다. 가장 고통 없이 세상을 등질 수 있었던 편안한 기회를 영영 놓쳐버린 듯했다.


우울감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밤이면 습관적으로 생각한다. 전신마취 했을 때처럼 아픔도, 소리도 없이 눈을 감으면 좋겠다고. 이번 잠에서는 깨어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뒤늦게 빌어서 염치없지만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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