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물 같은 할머니

by 최호랑

“네 보험금으로 쇼핑할 생각 하니까 신난다. 돈 남으면 맛있는 거 사줄게.”


사고 후 첫 상해금이 나오자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들어둔 보험이니 병원비 부담을 던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는 기색이었다. 보험의 모든 혜택을 당연한 권리라 여기던 할머니는 손녀의 고통이 담긴 상해금마저 모조리 쓸어 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잇몸을 찢고 얼굴 보형물에 걸린 치아를 끌어내리는 큰 수술을 받았다. 퇴원 후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탔다. 웬만해선 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엄마가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그때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애미야, 진단서 떼서 보내라.”


손녀의 안부를 묻는 말은 없었다. 노인은 그저 상해금을 타기 위한 서류만이 다급했다. 엄마는 혹시 내가 들었을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나는 못 들은 척 창밖만 응시했다. 멀미 때문인지, 할머니에 대한 역겨움 때문인지 속이 메스꺼웠다.


엄마가 몇 번이고 따져 물어도 아빠는 자기 어머니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렇게 나는 내 몫의 상해금을 단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됐다.


집안 곳곳의 묵은 먼지를 걸레로 닦아내던 날이었다.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제 성인이 된 내 계좌로 상해금이 바로 입금될 거라는 통보였다. 절차에 따라 서류를 보낸 지 5분. 다시 전화가 왔다.


“저... 할머니께서 본인이 받으시겠다는데요.”


축축한 걸레를 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상담사는 이제 성인이니 본인이 직접 수령하는 게 당연하다며, 굳이 수령인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대답했다.


“그냥 바꿔 주세요.”


어차피 지난 10년 내내 갈취당한 권리였다. 그 돈을 영영 포기하는 대신, 죄책감 없이 할머니를 마음껏 미워하기로 결정했다.

묵묵히 청소를 이어갔다. 걸레에서 짜낸 구정물이 꼭 할머니의 속내 같았다. 손녀의 아픔을 담보로 쇼핑할 생각에 들뜬 노인. 나는 손마디가 까질 때까지 걸레를 빨고 또 빨았다. 그래도 걸레는 여전히 시커멓고 지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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