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토실토실했다. 시험 100점 맞으면 엄마에게 꽃게탕을 끓여 달라는 아이였고, 용돈이 생기면 단번에 불량 식품을 사 먹곤 했다. 사고가 나던 날도 가족들과 근교에서 두부찌개를 배불리 먹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런 내가 첫 수술이 끝나고 한 달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목에 꽂힌 호흡기 때문에 밥을 넘기기는커녕 가래 한 번 뱉어내지도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때 나는 욕구랄 게 없었다. 살아있는 것에만 집중해도 하루가 다 가버렸다.
큰 고비를 넘기고 중환자실에서 소아병동 2인실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내 옆 침대엔 나보다 어린아이가 입원해 있었다.
아이는 밥을 먹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먹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가 그 사실을 일깨웠다. 아이 엄마가 바삐 아이 입으로 밥을 넣을 동안 우리 엄마는 내 호흡기에 쌓인 가래를 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3분 짜장 냄새가 났다. 밥 냄새는 단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내 코가 짜장을 알아채 버린 것이다. 나는 엄마 손에 '짜장면 냄새야?'라고 적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병실 안엔 달콤하고 니글거리는 인스턴트 짜장의 향이 퍼지고 있었다.
용케 숨어있던 욕구가 터져버렸다. 호흡기에 턱턱 걸리는 숨을 뱉어내며 먹고 싶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내비쳤다. 얼굴을 감싼 붕대가 축축해질 때까지 울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당황한 아이 엄마가 당황하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 짜장이 먹고 싶나봐요."
아이 엄마는 죄송하다며 부랴부랴 짜장을 치웠다. 아이는 먹고 싶던 짜장을 뺏겨 울었고, 우리 엄마는 짜장 한 입 먹여줄 수 없게 된 현실에 울었다.
그날 짜장 냄새는 지독하게도 오래, 아주 오래 병실에 머물렀다.
퇴원하던 날 우리 가족은 병원 지하에 있는 중국집부터 향했다. 다른 곳보다 몇천 원은 더 비싼 곳이었다. 당시 형편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엄마는 꾸역꾸역 탕수육까지 시켰다.
"많이 먹어. 꼭꼭 씹어서 다 먹어."
이제 나는 짜장면 따위 실컷 먹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고, 비싼 중식당의 불맛 가득한 요리를 즐길 만큼의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마트 매대에 진열된 3분 짜장을 마주할 때면 목 끝까지 차올랐던 그날의 가슴 아린 욕구가 되살아나곤 한다.
나는 오늘도 노란 상자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리고 내가 되찾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 지독하게 달콤했던 냄새를 통해 가만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