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분의 일

밥값도 친분값도 공평하게 내자구요!

by 이에누

밥상머리에 앉으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자식 자랑, 조상 자랑, 지난날의 성공담까지, 자랑거리만 나오면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는 분. 반복되는 이야기도 마치 새로운 소식처럼 꺼내놓곤 한다. 열 번쯤 들은 이야기라도 “아, 그 얘기 또 들려주세요”라고 추임새 넣어주면 흐뭇해하시고, 테이블 분위기는 어쩐지 더 따뜻해진다.


사실 이런 분들은 대환영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밥값을 내신다. 자랑 듣는 대가가 밥 한 끼라면 이 정도야 고마운 일 아닌가 싶다.

하지만 예외는 늘 있는 법이다. 대화는 혼자 독점해서 ‘엔 분의 엔’을 다 가져가다가, 결제할 때가 되면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는 분이 있다.
“자, 오늘 밥값은 엔 분의 일로 냅시다.”


이 얼마나 계산적인 완결성인가. 말문이 막힌다. 모두의 시간을 쓰다가, 정작 지갑은 나눠 들자는 이 신박한 논리. 이상하리만큼 뒷맛이 씁쓸하다.




생각해 보면, SNS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SNS에도 밥상머리가 있다. 다만 테이블 대신 타임라인이 깔려 있을 뿐이다.

이곳에도 ‘자랑의 달인’들이 있다. 지식자랑, 인맥자랑, 음식자랑, 여행자랑. 하루만 쉬어도 금단증상 오는 것처럼 꾸준히 자기 세계를 전시하는 분들.


솔직히 말하면, 부럽다. 저 넉넉한 삶의 결, 사람들과의 두터운 인연,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붙는 호의와 환대. 어떤 분은 거의 페이스북 대통령 같은 기세로 선한 영향력을 뿌리고 다닌다. 무명작가 책이 나오면 진심을 다해 리뷰 올리고,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을 조용히 돕기도 한다. 이런 분들 덕분에 SNS가 아름답게 유지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마찬가지다.
‘나 이렇게 추앙받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자기 기쁨과 성취만 전면에 세우고, 타인의 말에는 귀 기울일 마음이 없는 사람. 누군가의 소소한 기쁨, 작은 슬픔, 일상 속 고민에는 눈길 한 번 주기 아까워하면서, 자기 소식은 온 세상이 알아야 한다는 듯 끊임없이 외치는 사람.


친구 신청은 귀찮고, 메시지는 번거롭다고 말하면서도 팔로잉 숫자가 늘어나는 건 즐기는 사람. 묘하게 권세를 누리는 골목대장 같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생각하게 된다.
관계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는 방식은 왜 이렇게 불평등해지는 걸까?




사실 관계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기쁨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사소한 ‘좋아요’ 하나를 눌러주는 일. 누군가의 글에 짧은 응원 댓글 하나 남기는 일. 말하자면 아주 작은 정서적 지불이다.


그런데 자랑은 독점하면서 정서적 지불은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순간, 관계는 급격히 메말라간다.
밥상머리에서 말을 다 차지하고 돈은 엔 분의 일로 내자는 그 장면처럼.

SNS는 특히 이런 불균형이 뚜렷하다. 필요할 때만 문을 열고 들어오고, 평소엔 관계를 편의점처럼 취급한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쓴 글은 스쳐 지나가면서, 자신의 일정이나 성공담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정성스럽게 올린다.
감정의 밀도는 고르게 나누지 않고, 관심과 애정도 자신에게만 채운다.

물론 자랑이 나쁜 건 아니다. 자랑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싶다.


문제는 자랑의 무게를 남에게 나눠 들려는 태도다.
기쁨의 몫은 나 혼자 챙기고, 귀 기울이는 시간은 남이 대신 감당해 주길 바라는 마음.
결제할 때만 ‘엔 분의 일’이란 단어를 꺼내 드는 그 얄미운 수학처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밥값도 엔 분의 일, 마음의 비용도 엔 분의 일.
말을 나눌 때도, 기쁨을 건넬 때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도, 최소한의 형평성은 지켜야 한다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작은 균형에서 시작된다.
그 균형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래 사랑받는다.
좋은 밥상처럼, 좋은 관계도 나누어 먹는 맛이 있어야 한다.

나만 배부른 식사는 오래가지 않는다.
SNS에서도, 밥상머리에서도, 마음의 계산서는 늘 남보다 먼저 꺼내보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따뜻함을 얻는다.

그러니 이왕이면,
밥값도 엔 분의 일, 친분 값도 엔 분의 일로!
서로 조금씩 나누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그게 우리를 더 오래, 더 편안히 이어주는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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