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허기진 영혼을 채우는 수액
먹고 먹고 또 먹고 게우고
먹고 먹고 약 먹고 주사 맞고
그래도 살은 절대 안 빠진다.
탐욕의 혀로 찌운 살의 운명이다.
빌어먹을 방송들이, 영상들이
이 막장 같은 먹방 요지경을 부추긴다.
주사 맞고 '주사이모' 부르고
주사 부리고...
이 미친 쳇바퀴는 미친 듯이 돌아간다.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고 걷고...
먹방의 유혹을 떨쳐낼 특급처방이다.
걸신들린 아귀귀신들아
먹방 그만 보고 제발 책 좀 읽어라.
허기진 영혼을 글밥으로 채워라.
울컥해서 쓰고 보니 나한테 하는 말이구나.
먹방이 식탐을 부추긴다는 사실은 이제 이야깃거리도 안된다. 늦은 밤, 불을 끈 거실에서도 스마트폰은 끄지 못한다. 화면 안의 누군가는 고기를 굽고, 누군가는 접시에 얼굴을 묻는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방금 저녁을 먹었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위장이 아니라 눈과 뇌가 반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광고와 먹방 프로그램은 하루의 리듬을 교란하는 신호탄이다. 음식 예능은 허기와 식탐을 부른다. 이미지는 위장을 속이고, 알고리즘은 욕망을 흔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허기는 야식을 부추기고 폭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늘 같은 결말. 체중계 앞의 후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다이어트 산업의 향연. 약, 주사, 관리, 결심, 실패. 먹을 때는 축제고, 뺄 때는 전쟁이다.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각도 같은 방식으로 삼키고 있다. 숏폼 영상, 자극적인 뉴스, 분노를 부추기는 제목들. 씹을 필요도 없이 흡수되는 정보들로 머리를 채운 뒤, 공허하다고 말한다. 정신도 이미 과식 상태다.
책은 안 읽고 식탐만 부리는 내가 한심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절식이 아니라 식단 교체다. 육체가 아니라 영혼의 식단을 꾸려야 할 순간이다.
제대로 읽지도 않고 것핥기만했던 책 몇 권을 되새기듯 간추려 본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영혼의 주식 같은 책이다. “인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나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는가?
국가, 돈, 종교, 기업 같은 것들이 모두 ‘공동의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보는 렌즈를 하나 얻는다. 이 렌즈는 즉각적인 흥분을 주지 않는다. 대신 오래간다. 세상을 단순히 소비하지 않고, 해석하기 시작하게 만든다.
이건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밥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달지 않다. 오히려 읽을수록 불편하다. 명확한 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계속 묻는다. 이게 정말 공정한가? 나는 왜 이 선택을 옳다고 믿는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남의 생각을 씹는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의심한다. 이 과정은 번거롭고 피곤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생각의 근육이 붙는다. 쉽게 소비되는 의견 대신,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남긴다. 이런 힘은 어느 날 갑자기 위기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작동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짧지만 강하다.
처음엔 우화처럼 읽히지만, 끝에 다다르면 씁쓸한 맛이 남는다. 권력은 어떻게 타락하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것을 방관하는가? 이 책은 달콤한 위로를 주지 않는다. 대신 눈을 뜨게 한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더 쓴맛이다. 악은 괴물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함에서 나온다는 주장.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생각하고 있는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성장기의 영혼에만 필요한 책이 아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계속해서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책은 묻는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조용하다. 삶이 왜 이렇게 불안한지, 왜 사랑이 어려운지, 왜 일상이 공허한지. 그는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옆자리에 앉아 설명해 준다.
이런 책들은 과식한 영혼을 천천히 안정시킨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영혼의 균형을 잡아준다. 먹기 싫다고 빼버리면, 정신은 금세 편식에 빠진다. 독서로 찌운 영혼의 살에는 군살이 없다. 빼야 할 살이 아니라, 지켜야 할 살이다. 판단력, 사유력, 상상력. 이 살이 있는 사람은 유행하는 다이어트에 휘둘리지 않는다. 단식도 필요 없고, 살 빼는 주사도 필요 없다.
몸이 무엇을 먹느냐가 하루의 컨디션을 바꾸듯, 영혼이 무엇을 먹느냐가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위장은 금세 잊지만,
영혼은 오래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