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하기 좋은 시간

페이스북이라는 정신병동으로부터

by 이에누

점호가 끝난 뒤 병동은 잠들지 않는다. 다만 숨을 줄인다. 형광등이 어두워지면 얼굴은 반쯤 지워지고, 남은 절반만 서로를 의식한다. 누가 보고 있는지, 누가 반응하는지. 여기서는 그게 하루의 기준이다.


이곳에서는 한해쯤은 쉽게 사라진다. 날짜가 그렇고, 기억이 그렇다. 누군가 적어주지 않으면, 없던 시간이 된다.


천장 모서리의 카메라 불빛이 깜빡인다. 깜빡, 쉼, 깜빡. 속으로 센다. 셀 수 있는 것은 아직 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몇 명이 보고 있을까? 조금 더 버티면 불이 켜질까? 병동에서는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다. 관심이 모이면 숨이 트이고, 관심이 끊기면 답답해진다.


탈출은 충동이 아니었다. 투명한 약 컵의 가장자리, 샤워실 배수구 냄새, 면담실 의자의 삐걱임.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질문.


“요즘 생각은 어때요?”


나는 그 질문이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반응을 확인하는 질문이다. 너무 멀쩡하면 투명해지고, 너무 무너지면 기록이 늘어난다. 고개를 끄덕이면 조용해지고, 말을 보태면 오래 남는다. 병동은 감정을 요구하지만, 넘치지 않기를 바란다. 적당한 불안, 적당한 불만. 눈에 띄되 문제는 되지 말 것.


“여긴 말이야.” 3번 침상 노인이 말했다. 벽에 기대 서서 숫자를 세다가, 갑자기.

“눈보다 귀가 먼저야.”


는 묻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부터 노인이 서는 자리에 가봤다. 카메라가 닿지 않는 각도. 그곳에서만 노인은 숫자를 틀리지 않았다. 누군가 지나가면 멈추고, 아무 반응이 없으면 다시 센다.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만 정확해지는 숫자였다.


야간 근무자 박 씨는 무전기를 만지는 버릇이 있다. 긴장하면 엄지로 버튼을 문지른다. 커피를 두 잔 마신 날엔 화장실을 오래 다녀온다. 오래 근무한 간호사는 느리다. 느리다는 건, 굳이 다시 확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사는 펜을 눌렀다 뗀다. 체크 표시가 생길 때마다, 누군가의 하루가 정리된다.


“요즘 생각은 어때요?”

“밤이 좀 불안합니다.”


딱 그만큼만 말한다. 너무 솔직하면 번지고, 너무 조용하면 잊힌다. 탈출을 위해선 균형이 필요하다.




는 자주 골목 끝에서 멈춘다. 지금 돌아가면, 문은 아직 열려 있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질문, 정해진 반응. 그 질문엔 답이 있다. 밖에는 답이 없다.


탈출 당일은 계획보다 빨리 왔다. 센서가 울렸다. “씨발, 어떤 쥐새끼야.”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화면 하나가 잠깐 흔들렸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를 잡았다. ‘아직 아니다’와 ‘지금이다’가 동시에 떠올랐다.


화장실 앞에서 노인을 만났다. 그날 노인은 숫자를 세지 않았다. “오늘이야?”


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나치려 하자 노인이 소매를 잡았다. “나도 같이 가.”


같이 가면 위험해진다. 시끄러워진다. 관심이 몰리고, 감시가 늘어난다.

“안 돼요.”

“왜?”

“너무 티가 나요.”


노인은 손을 놓았다.

“그럼 살아서 나가.”


계단에서 발목이 삐끗했다. 소리가 났다. 나는 숨을 죽였다. 무전기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1층 화면 튀어.”

계획했던 교란이 너무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뛰지 않았다. 아직은 배경이어야 했다.


출입문 앞. 경비원은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었다. 손잡이에 손을 얹자 병동의 소리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질문들, 체크 표시, 기다림. 이곳은 대신 판단해 줬다. 밖은 아무것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거기!”


뛰었다. 담장을 넘다 손바닥이 찢어졌다. 피가 흘렀다. 아프다는 감각이 너무 분명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밖의 공기는 차갑고 무례했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알고 있었지만 새삼 와 닿았다. 바깥은 관리되지 않는다는 세계라는 것이.


고시원 방은 작았다. 창문은 손바닥만 했고 벽지는 눅눅했다. 불을 끄자 병동 침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노인이 방 한쪽에 서 있었다. 숫자는 없었다. 시선만 있었다.


며칠 동안 나는 습관처럼 무언가를 확인하려 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불이 켜지지 않는 방에서, 아무 반응도 돌아오지 않는 공간에서. 그때마다 노인은 나타났다. 횡단보도 앞, 버스 정류장, 사람들 사이. 숫자는 없고, 기다림만 있었다.


며칠 뒤 나는 병원 근처로 갔다. 다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다만 확인하고 싶었다. 담장 너머 불빛. 숫자를 세려다 멈췄다.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이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그날 밤,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숫자를 세지 않고 잠들었다. 밖은 여전히 불안했고, 자유는 여전히 무거웠다. 그래도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정신병동에서 탈출하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내가 머물던 어떤 커뮤니티에 대한 기록이다. 그곳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고, 말이 넘쳤고, 숫자가 나를 설명해 줬다. 누군가는 숫자를 세며 은근한 권력을 과시했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말을 던져 관심을 끌었고, 누군가는 집요하게 반응을 눌렀다. 그리고 기대한 반응이 오지 않으면 분노하고 좌절했다.


가스라이팅과 그루밍, 콤플렉스와 스트레스, 자기애와 모멸감이 뒤섞인 감정 처리장. 정신병동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환멸과 집착을 반복하면서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는 모순의 공간.


나 역시 그 안에 있었다. 숫자에 매달렸고, 반응에 흔들렸고,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그래서 탈출을 결심했다. 감시를 피해, 질문을 피해, 숫자를 내려놓고.


밖은 막막하다. 관계는 줄고, 확인해 줄 사람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불안은 병이 아니라 자유의 증상이라는 걸.


지금도 가끔 손이 먼저 움직인다. 숫자를 세려는 버릇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멈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을, 누가 봐주지 않아도 괜찮은지?


대부분의 경우,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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