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박기철의 위험한 동행에 부쳐
손현숙은 매력적인 시인이다.
그의 시는 섹시하다.
이 말은 가볍게 던진 감탄이 아니다.
섹시하다는 건 노골적이거나 자극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독자의 시선을 붙잡고, 쉽게 놓아주지 않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다. 시가 그렇다면, 산문은 더더욱 그렇다.
『바다, 저 건너에서 누가 온다』는 시집 같기도 하고 산문집 같기도 한, 장르의 경계를 슬쩍 비껴간 에세이집이다. 시를 읽는 이야기이자, 사람을 읽는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한 시인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읽게 만드는 책이다.
2부에 이르자 나는 어느새 한 인물과 나란히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부 초입에 등장한 한 사내의 잔상이 가시기도 전이어서 그랬을까?
목련이 피었는데 죄나 지을까
하필이면 당신 방 창문 앞에
펑, 폭탄처럼 귀신처럼
허공을 말아 쥐는 나의 몰입
그것은 유혹이 아니라 발정이다
얌전하게 입술 다물어 발음하는
봄 따위, 난간 위를 걷는 고양이 걸음으로
한바탕 미치면 미치는 거다, 뭐
오늘이 세상의 끝나는 날이다 몸을 열어
한 순간에 숨통 끊어져라 하얗게 할퀴는
꽃, 곱게 미쳐서 맨발로 뛰어내리는데
모가지가 허공에 줄을 맨다
ㅡ시집『일부의 사생활』(시인동네, 2018)
“목련이 피었는데 죄나 지을까”
이 문장을 처음 만났을 때, 웃음이 먼저 나왔다. 발칙하고 발랄하다. 목련이 피는 건 죄가 아닌데, 왜 하필 ‘죄’를 떠올릴까. 요설과 몽환이 난무하는 이 난세에, 아무 죄도 없이 하얀 얼굴을 내미는 목련 앞에서 시인은 속절없이 음흉해진다. 아무 계략 없이, 아무 계산 없이 한 시절을 통과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손현숙의 문장은 이런 질문을 장난처럼 던지면서도, 독자의 발목을 은근히 붙잡는다.
그 질문의 한가운데로, 한 사내가 초대된다.
소락(素樂)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내, 박기철.
먹물을 스무 해 넘게 뒤집어쓰고도 현학과 가식에 물들지 않은 사람. 학자이되 학자 흉내를 내지 않고, 교수이되 교수의 권위에 기대지 않는다. 손현숙의 시선 속에서 그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등장한다. 다 벗은 채 세상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사람. 탐닉과 도취, 관능과 충동, 야성과 赤心이 뒤섞인 소굴로 주저 없이 몸을 던지는 사람.
이 책에서 박기철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다. 미화의 대상도 아니다. 그는 하나의 풍경이 되고, 하나의 사건이 된다. 손현숙은 그를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곁에 둔다. 함께 걷고, 함께 바라보고, 함께 웃는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은 유난히 숨이 붙어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체온이 느껴진다.
素樂庵子,
소락암자.
이 별명이 오래 남는다. 즐거움을 꾸미지 않고, 소박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암자처럼 조용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욕망도, 충동도, 웃음도, 망설임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가식이 없다는 건 때로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 속의 박기철은 그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쪽을 택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 인물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책이 있다. 박기철의 『박교수의 21년』이다.
이 책은 한 교수가 21년간 대학이라는 공간에 몸담으며 남긴 기록이자, 정년이라는 문턱 앞에서 스스로를 정리해본 한 사람의 자서전 같은 에세이다. 연구와 강의, 논문과 교안, 여행과 글쓰기, 그리고 사람들. 외형만 보면 ‘교수의 기록’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책은 직업보다 태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여기에는 권위를 정리하는 법이 나오고, 내려놓는 방식이 담겨 있으며, 여전히 즐기며 사는 법이 스며 있다. 손현숙의 시선 속에서 ‘천둥벌거숭이’였던 그 인물은, 이 책에서는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견뎌온 한 인간으로 서 있다. 다만 신기하게도 두 얼굴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증명한다.
『바다, 저 건너에서 누가 온다』에서 박기철은 풍경이고 사건이었다면, 『박교수의 21년』에서는 그 풍경과 사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삶을 너무 단정하게 정리하지 않으려는 태도, 즐거움을 제도 안에 가두지 않으려는 고집,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희화화할 줄 아는 용기.
“바다, 저 건너에서 누가 온다.”
이 문장은 끝내 질문으로 남는다.
그는 초인일까? 광인일까?
신기루일까? 허깨비일까?
아마 정답은 없다. 손현숙도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슬쩍 넘긴다. 궁금하면 읽어보라고, 직접 만나보라고. 이 책은 그렇게 독자를 부추긴다. 한 사람의 삶을, 한 시인의 시선을, 그리고 그 둘이 나란히 걷는 시간을.
이 책들에는 ‘읽는다’기보다 ‘동행한다’는 말이 어울린다. 시와 산문 사이를 오가며, 목련이 피는 계절을 지나, 바다 저편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 자신도 이 무모한 범죄에 초대된 공범이 되어 있다.
목련이 피었는데,
죄 한 번쯤 지어도 괜찮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