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울지 않는 아이

by 르미

그날, 아버지는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나는 방 한구석,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낙서를 하고 있었다. 종이는 연필 자국으로 빼곡했고, 그중 몇 줄은 지나치게 진했다.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처음 듣는,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방바닥 위에 올려 둔 100원짜리 몇 개, 500원짜리 두어 개를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바닥에서 동전을 챙겨들며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받아 본 용돈이었다.
그 무렵 나는 ‘퐁퐁’에 빠져 있었다. 흔들리고 튕겨 나오는 바람 속에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좋았다.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 동네 아이들과 옆 동네까지 걸었다. 퐁퐁을 타고 쭈쭈바도 사 먹었다. 땀에 젖고 먼지에 절은 채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한나절이 지나가고 초저녁이 찾아올 무렵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내 앞을 가로막았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옷 다시 입혀줘도 괜찮을까?”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학생은 내 머리를 다시 묶어주었고, 바지 밖으로 삐져나온 셔츠를 바지 속에 정돈해 넣었다. 무릎 위로 먼지가 앉은 바지도 탁탁 털어주었다. 마지막엔 만족한 듯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낯설지만 싫지 않았다. 나는 아까보다 깨끗해진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가벼워졌고, 신이 나서 집으로 달려갔다.

발걸음이 문턱을 닿기도 전에, 집 앞 대문부터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주저앉아 있는 엄마, 신고를 했다는 아저씨의 목소리, 소란스러우면서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나는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지 못한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넋이 나간 엄마는 나를 보지 못했고 어른들이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눈다고 나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장롱으로 가른 동생과 내가 지내던 가짜 방에 계신 아버지를. 그제 서야 내가 온 것을 안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와 내 눈을 가렸다. 축 늘어져버린 아버지의 몸이 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엄마의 곡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친척들이 모여들고,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정신이 없이 멍하다가 때로는 흐느끼며 주먹으로 가슴을 내려치길 반복했다. 나는 그들 틈에서 고개를 꾸벅이고는 뻘쭘이 서 있었다. 먹을 것이 어느 날보다 많았다. 나는 누군가 챙겨준 고깃국에 밥을 말아먹었고, 떡도 먹었다. 동생은 울다 지쳐 엄마 품에 안겨 잠이 들었지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두고 고모는 “어린 계집애가 독하다.”며 한 소리하였다. 주눅이 들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슬프지가 않았다. 그저 아무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른들은 울지 않은 내 얼굴을 보고 수군거렸고, 나는 그들 틈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돌아다녔다. 장례식장은 이상하리만치 생기 있었다. 누군가는 화투를 쳤고, 누군가는 술을 먹으며 고성을 질렀으며 음식냄새는 진하게 피어올랐다. 오직 엄마만이, 모든 것을 끌어안은 듯 울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왜 엄마는 아버지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자주 엄마에게 욕설을 퍼붓고 때리기도 했다. 멀쩡한 날보다 멍든 얼굴로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떠나지 않았다. 엄마가 붙잡고 있던 건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었다. 남편이라는,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었다. ‘과부’라는 이름을 감당해야 하는 삶, 아이 둘을 혼자 키워야 하는 삶. 그 무게를 생각하면, 엄마에게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남긴 자리에는 늘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그 공간은 우리 자매가 들어서기엔 너무 흔들렸고, 너무 추웠다.

그 후로도 오래, 우리는 어른들이 내뱉는 말에 찔리며 자라야 했다. 그들은 아는 척했고, 말 뿐인 동정으로 상처를 남겼다. 낯선 이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종종 묻고 싶었다.
왜 나는 슬프지 않았을까.
나는 정말 독한 아이였을까.
아니면, 너무 오래 아파서 이미 울음을 잃어버린 아이였을까.
나는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지 않는다.


*개인 사정상 당분간 연재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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