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부터, 홀로 발걸음하기 (9)
대만의 거리를 걷다보면 수 많은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 물론 현 시점에서 제일 많이 들리는 노래는 단연 케이팝(K-POP)이다. 어딜가나 한국어 노래를 쉽게 찾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들려오는 대만 노래들을 듣다 보면 어? 이거 무슨 노래지? 좋다. 싶은 생각들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대만 내에서 히트를 친 노래라면 발행연도와는 관계 없이 주구장창 들려오는 노래들이 있다. 주걸륜(周杰倫)과 임준걸(林俊傑), 왕리홍(王力宏)의 노래들이 주로 그렇다. 2000년대 초중반에 워낙 히트를 친 노래들이 많아 2020년대인 지금까지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
채홍(彩虹)이라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채홍은 무지개를 중국어로 부르는 말이며 주걸륜이 2007년에 발매한 8집의 히트곡 중 하나다. 주걸륜의 8집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사운드트랙을 샘플링하여 변주한 노래가 많은데, 이 곡은 그 중 First Kiss를 이용하여 만든 곡이다. 이 곡은 이별 후의 그리움을 말하는 서정적인 연가(情歌)이다.
그리고 장혜매(張惠妹)가 부른 채홍(彩虹)이라는 노래도 있다. 2009년, AMIT 라는 앨범의 수록곡으로, 주걸륜과는 결이 조금 다른 노래이다. 이 노래는 분노, 자각, 해방의 순서로 감정이 이어지며, 이후에는 온연한 자기 해방을 노래한다. 두 노래는 결이 전혀 다르지만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여자 가수의 노래로 소비되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
시먼에서는 장혜매의 노래를 조금 더 많이 들을 수 있는데, 특히 10월 넷째 주에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만큼 하루종일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다.
가끔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듣는다.
“대만 저렴하다고 해서 가보려하는데 왜 이렇게 비싸? 숙박비가 너무한데?”
“언제 가는데”
“10월 넷째 주.”
“대만의 몇 없는 제일 비싼 시기에 가는데?”
이렇듯 대만에는 숙박료와 항공료가 오르는 시기가 몇몇 존재한다. 대만도 아시아권 국가이기 때문에 설날(春節)과 추석(中秋節)은 당연히 쉰다. 이 시기에는 해외로 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비행기값도 비싸고, 문을 열지 않는 가게들이 많아 웬만하면 지인들에게 추천하지 않는 시기이다. 그리고 청명절과 쌍십절 같은 기념일이 껴 있는 주간도 위험하다. 그리고 대망의 10월 마지막 주. 이 시기에는 대만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데, 대만 퀴퍼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행사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대만으로 방문하는 인파가 많다. 이 시기에는 비행기 값도 오르지만 타이베이 전역 숙박비용이 2~2.5배 상승한다.
한 번은 대만에서 한 달 정도 묵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단기로 방을 렌트하여 타이베이 다안(大安)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일을 하던 곳에서 퇴사한 이후 극심한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었을 때여서 나는 오롯이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한 달 정도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나는 타이베이에 숙소를 두고, 타 지역에서 지낼 때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서 지내곤 했었다.
그즈음 댄서로 일하고 있던 한 친구가 대만에 온다고 하여 잠시 내가 묵던 곳에서 이틀 정도만 묵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당시 내가 지내던 방은 더블 침대 하나였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불을 깔고 자도 다소 추울 수 있다고 미리 고지했다. 친구는 괜찮다고 했다. 적어도 내가 숙박을 제공하면 50만원 정도 되는 이틀 치 숙박비를 아낄 수 있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는 대부분 방이 다 만실이었다.
“그런데 굳이 퀴어퍼레이드 하나 보려고 대만까지 와?”
내가 물었다. 한국에서도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 퀴어 퍼레이드가 주기적으로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대만 퀴퍼는 좀 다르더라. 되게 자유롭고, 유명한 사람들이 많아서 공부하기 좋아.”
나는 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공부라는 것이 어떤 건지는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많은 작가들을 동경했기 때문에 북토크, 출간기념회 등을 찾아서 간 적이 있었다. 친구에게는 내가 그러했듯, 이렇게 직접 와서 보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공부였을 것이다.
그가 내 방에 머무는 이틀 동안은 심심하지 않아 즐거웠고, 퀴어 퍼레이드를 다녀온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즐겨보지 못한 영역이었기에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 같았다. 친구가 클럽에서 논 뒤 들큰하게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온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말했다.
“나 이 노래 궁금해.”
그러면서 어떤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처음 흥얼거린 노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채의림(蔡依林)의 무낭(舞孃)이었다. 나온지 20년이나 된 오래된 노래지만 워낙 노래에 대한 파급력이 강한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이 15년 전이었지만, 그 당시에도 워낙 노래의 색채가 강해 기억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본 영화 <메리 마이 데드 바디>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온 허광한(許光漢)이 흥얼거린 노래였다. 이 영화는 코미디 추리 버디 장르의 영화이긴 하지만 퀴어적인 색채가 다소 얽혀 있어 LGBT 앤썸곡인 이 노래가 나온 것이다.
“그 노래는 채의림의 무낭.”
“어, 이 노래 나오니까 다들 춤추더라.”
친구는 그 다음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노래는 장혜매의 채홍(彩虹), 그 노래 퀴어앤썸곡이야.”
친구는 내 말에 아,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노래가 거의 퍼레이드 막바지에 나왔는데, 몇몇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울었다고 했다. 친구는 가사를 몰라서 단순히 듣고만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떼창 속에서 울음이 전염처럼 퍼져나갔다고도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친구에게 이 노래가 가진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2016년에는 愛最大(Love is KING)이라는 자선 콘서트가 열린 적이 있었다. 대만에서의 동성결혼 지지 합법화를 위한 자선 콘서트였는데, 당시 참여한 가수는 장혜매를 필두로 채의림(蔡依林), 소아헌(蕭亞軒), 소경등(蕭敬騰), 임억련(林憶蓮), 오월천(五月天), 양승림(楊丞琳), 소타록(蘇打綠), 나지상(羅志祥), 전복견(田馥甄), A-LIN 등 지금으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연말 가요대전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라인업을 자랑한다. 특히 이때의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공연의 마지막을 장혜매가 장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이 채홍(彩虹)이었다. 이 노래는 1절은 장혜매가, 2절은 거의 관객이 불렀다고 해도 다름없는데, 영상의 말미에는 노래를 부르는 장혜매가 아닌 관객을 하나하나 비춰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감성을 지닌 채 입을 모아 노래를 따라 불렀다. 6가지의 무지개색 종이를 들고, 무지개 빛 라이트가 흐드러지게 주변을 비췄다.
나는 그 영상을 한 번, 두 번 보면서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선 콘서트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는 사람도, 웃는 사람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아직 친구가 그 말을 했을 때의 표정이 생각나지 않는다. 복합적인 감정을 짓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은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