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부터, 홀로 발걸음하기 (8)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이 있다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냉소적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각자 여행하는 의미가 다 다르고, 다름이 만나 하나로 뭉쳐진다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나는 사람들이 이것을 알아줬으면 하고 바란다.
2019년 11월, 대만에서 “상견니(想見你)” 라는 드라마가 방영이 되었다. 굉장히 대 히트를 했던 드라마였고, 당시 중국드라마와 대만드라마를 주로 보던 사람들도 매주 손꼽아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나 역시 드라마가 너무 재밌어서 자막 없이 봤을 정도였다. 이 드라마는 대만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굉장히 히트를 쳤다. 영화로도 나왔고, 책으로도 나왔다. 심지어 OST를 부른 가수 중 한 명은 화교로 유명한 손성희(孫盛希)라는 가수였는데, 이 분은 첫 앨범을 냈을 당시부터 내가 자주 들었던 가수였다. 메인 곡인 “想見你想見你想見你”를 부른 가수는 팔삼요(八三夭)는 한국 홍대에서 내한공연도 했었던, 한동안 내가 미쳐 있던 밴드였다. 스토리, 대만감성, 좋아하는 가수의 OST, 심지어 전부 내가 알던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나로선 이 드라마를 무조건 봐야 했다.
이후 상견니를 촬영했던 타이난 일부 지역은, 주로 타이베이와 가오슝을 여행했던 한국인들에게 타이난이라는 여행지를 플러스 할 정도가 되었다. 그 당시 상견니에 빠진 사람들을 상친자라고 불렀는데 나 역시 그 상친자 중 한 명이었으니, 나 역시 타이난을 갔을 때 이곳들을 방문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했다.
사실 타이난을 이전에 혼자 방문했을 때는 낯설다는 느낌이 강했다. 타이난은 정적인 도시였다. 타이베이처럼 화려한 느낌도, 가오슝처럼 도시라는 느낌도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일상 그 자체로 들어와버린 느낌이 강했다. 대도시를 여행할 때는 쉽게 계획을 세워 맞춰갈 수 있었지만, 타이난은 아니었다. 비워 놓은 시간 속을 점점 채워가는 느낌이 강한 도시였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위로 하나 둘씩 켜켜이 쌓다보면, 비로소 그 흔적을 톺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처음 느꼈던 타이난에 대한 감정은 어색함이었다.
나는 타이난을 여행할 땐 최소 2박 정도, 여유롭게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타이베이나 가오슝처럼 MRT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버스가 친절하게 오가는 곳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대만에서 가장 많이 택시를 탄 도시가 타이난이 될 정도로, 타이난에서는 택시를 많이 타게 될 거야, 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 때, 점점 내 안에 쌓여가는 밀도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때문에 지금도 대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난 타이난라고 대답하곤 한다.
“대만에서 가장 맛있는 게 뭐야?”
내가 제일 많이 듣는 질문 베스트에 꼽히는 물음에 가끔 이런 대답을 한다.
“타이난. 거긴 다 맛있어. 특히 단자이멘(膽仔麵) 그건 꼭 먹어야해.”
대만에는 도소월(度小月)이라는 1895년도부터 영업을 시작한 식당이 있다. 타이난이 본점이며, 옛날에 한 어부가 폭우가 잦은 청명절 즈음, 즉 비수기 시즌에 어깨에 멜대를 메고 팔기 시작한 음식 바로 단자이멘이다., 아주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는 음식이어서 처음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을 때는 당황할 수도 있다. …이게 다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세 젓가락 정도면 다 먹을 수 있다. 우육면과 미엔시엔(麵線, 아종면선에서 판매하는 것이 미엔시엔이다.)에 익숙한 한국인들이라면 맛도 슴슴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풍부한 감칠맛에 반하게 된다면 갑자기 소자가 아닌 대자를 다시 한 번 주문하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음식이다.
야시장은 또 어떠한가. 특히 타이난의 화위엔 야시장(花園夜市)은 맛있는 점포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비록 목, 토, 일만 운영하지만, 그 기간에 맞춰 방문하면 두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화려하고 큰 규모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음식과 더불어 쇼핑(간단한 잡화 등), 길거리 게임. 각자 저마다의 구역이 나누어져 있으며, 가끔 입구에는 노래를 부르는 유튜버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2018년에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도시에 살던 청년이 힐링을 위해 시골로 내려와 생활하는 단순한 구조를 가졌지만 굉장히 짜임새가 있는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게 되면서 타이난을 떠올렸다. 사람에게 왜 “힐링”이라는 것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만드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나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20살이 되자마자 몇 년을 서울과 일산에서 살았었다. 도시의 편리함은 사실 누가 말해 뭐하겠는가. 편리한 교통, 폭넓은 배달, 풍부한 놀 거리. 부산도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몇 년 동안 살았던 도시의 대한 이미지는 화려한 네온 같았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연고가 없던 나는 점점 스스로 아등바등해져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을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느껴야 했다.
타이난에는 안핑(安平)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은 대만의 옛 수도였던 시절부터 이어져온 맥락을 가진 곳이다. 17세기에 네덜란드가 처음 대만으로 상륙한 곳이기도 하며, ‘도시’라는 기능을 가장 먼저 갖춘 지역이기도 하다. 타이베이에서는 단수이에서도 쉽게 항구를 볼 수 있지만, 안핑에 있는 항구와 분위기를 달리한다. 관광객이 빠르게 보고 빠지는 도시가 단수이 강변이라면, 타이난 안핑의 항구는 조금 더 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마치 대만의 영화감독 허우샤오시엔(侯孝賢)의 영화 같다.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에서 격동의 시대를 잔잔하게 스크린에 그려냈듯, 안핑은 격렬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흐른다.
대만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지역적 특색과 맥락이 존재한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도시가 아닌 시외 지역으로 발걸음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맥락을 짚어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나 역시 처음에는 이곳을 봐야겠다. 여기서 사진을 찍어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다녔었다. 여행이 끝난 이후, 나중에서야 밀려드는 것은 “추억”과 “그리움”이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휘발된 이후 남은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대만을 여러 번 갈 정도로 그렇게 좋아?”
가끔 엄마는 내게 혀를 끌끌 차며 말한다.
“어. 궁금하잖아.”
나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내 안에 발현하는 궁금증들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다음 대만 여행 일정을 항상 생각한다. 이것은 소소한 일탈이자, 버거운 삶의 쉼터와도 같은 것.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