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부터, 홀로 발걸음하기 (7)
여행을 간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마다 정의는 다르겠지만, 나는 경험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어 한다. 특히 해외여행의 경우, 국내와 다른 정서를 경험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에 가깝다. 태국에 갔을 때, 싱가포르에 갔을 때, 홍콩에 갔을 때도 나는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한국과 다른 점들을 경험하고, 해석하곤 했다. 그것은 대만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을 하다보면 종종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사람마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음식이 입에 안 맞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관광지에 가서 “에? 이게 전부야?” 라고 말을 할 수도 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은 다양하고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난 이것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반응을 표출하는 것을 넘어 굳이 무례함을 뽐내는 부류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끔 시외 지역을 갈 때는 약간의 불편함이 따르곤 했다. 혼자 다닌다는 것은 자유인 동시에 제약이다. 예를들어 예스진지(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를 갈 때는 오랜 시간 기차에 앉아 시간을 보내야 한다던가, 실수로 시간대를 놓쳤을 때 그것을 알려줄 사람이 없다는 것. 책임은 오롯이 나만의 몫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2023년에 간만에 대만에 방문했을 때, 버스투어는 어떤 느낌일까 문득 궁금해져서 출발 하루 전에 버스투어 신청을 하여 참가한 적이 있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버스투어였기 때문에 모두 한국 사람이었고, 가이드마저 한국 사람이었다. 내가 버스투어를 신청한 것은 순수한 호기심이었기도 했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여행이라는 것도 있었다.
사실 한국인이 바글바글한 관광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은 어찌보면 반가울 수도 있지만, 대만 만큼 한국인 만나는 게 쉬운 나라도 없다는 생각도 컸다. 웬만한 관광지를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나중에는 입는 옷만 봐도 “아, 저 사람들은 한국인이구나” 싶은 경우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버스투어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출발 시간에 제때 맞춰 오지 않는 사람부터, 가이드가 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행들을 더 신경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싸우려 드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 돈 내고 이용하는데 이것도 못해?”
그 사람은 이렇게 말을 했다. 버스투어 참가 비용은 고작 9,800원이었다. 버스에는 총 36명이 있었다. 계속해서 툴툴거리는 그 사람에게, 누군가 말했다.
“그렇게 챙김 받고 싶으면 개인 투어를 했어야지! 겨우 만 원짜리 투어에 큰 걸 바라는 게 문제 아닌가요?”
경상도 사투리가 물씬 풍기는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툴툴거리던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겨우 버스가 출발하고 난 이후, 우리는 이런저런 설명들을 들으며 예류(野柳) 지질공원에 도착했다. 사실 몇 번이고 와본 곳이었지만, 나는 예류 지질공원이 가진 특이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아닌 자연이 조각하는 곳, 자연이 시간을 도구 삼아 빚어내는 현재진행형의 공간. 이곳을 다녀오면 항상 호흡에 대해 생각해보는 그런 장소였다.
예류지질공원은 자연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낸 산물에 가까웠다. 인간은 그저 그곳을 감상할 수 있게 틀을 마련해 놓은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곳곳에는 들어가지 마시오, 손 대지 마시오 같은 경고문이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었다. 바람을 맞고 태양 아래를 거닐며 시간의 흐름을 느껴야 할 그곳에서, 몇몇 사람들은 말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사실 이런 여행지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그것, “한국인 관광객”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나 역시 한국인이라는 타이틀은 지울 수 없었다.
오래 전 용산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은 대만의 대표 관광지이기도 하고,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용산사에서는 점을 볼 수 있는 즈자오(擲筊) 라는 반달모양의 나무가 있다. 연애를 관장하는 할머니신에게 소원을 빌고 즈자오를 던져 점을 보는 방식이다.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점을 보는데, 어떤 한국인 커플이 펜으로 즈자오에 낙서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본인들의 이름을 쓰는 것 같았다.) 나는 화가 나고 부끄러운 나머지 그들에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 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많은데 이거 하나 한다고 뭐 큰일 나요? 같은 한국인이면 좀 눈 감아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두 사람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나는 용산사 관리인을 불러 해당 사실을 말했고, 곧이어 용산사를 관리하는 스님도 오셔서 상황을 보고 계셨다.
“같은 한국인끼리 진짜 너무하네.”
같은 한국인. 어떻게 우리가 같은 한국인 일 수가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들과 같은 존재로 엮이는 것이 불쾌했다.
“같은 한국인? 누가요? 불쾌하니까 같은 한국인으로 엮지 마세요.”
그 때의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약간 정의감에 불타 올랐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이나 똑같지만, 그 상황에서의 나는 부끄럽다는 감정이 먼저 밀려들었다.
용산사를 나가기 전, 나는 용산사의 벽에서 “A와 B 다녀감” 이라는 한국어 문구가 매직으로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꽤 오래전에 쓰여진 문구인 듯 잔뜩 풍화되어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지워보려고 한 흔적도 있었다. 순간 그것을 지우기 위해 힘썼던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벅차오른 부끄러움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이 낙서는 최근 용산사를 방문했을 때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투어는 한국인 관광객이라는 한정적인 문구를 틀에 담고 있는 관광이었다. 타인이 보았을 때, 나는 그들과 같은 한국인 관광객이었다. 다행히 여왕머리 바위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으나,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밟고 안쪽으로 향하는 사람은 몇몇 눈에 들어왔다. 경고 문구 위에 선명하게 찍힌 흙 발자국과, 태연하게 금지된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바람은 이들을 외면한 채 여전히 시간을 도구 삼아 자연을 조각하고 있었다.
금지는 결국 배려의 영역이다. 그 빨간색 선을 넘어가 발생하는 불상사는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
“왜 화를 내고 지X이야,”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몇몇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반응하곤 한다. 스펀에서 풍등을 날릴 때, 자칫 잘못하다가는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풍등 날리기를 보조하는 사람들은 다소 거칠게 제지하는 광경을 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런 말들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아마 본인 실수로 다쳤더라도, 이 사람들은 이들을 탓하겠지? 하는 생각은 덤처럼 따라온다.
물론 한국인들이 모두 이렇다고 할 수는 없다. 대만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 관광객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분들도 정말 많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특히 한 곳을 지속적으로 다니다보면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한 영화를 두 번, 세 번 봤을 때 보이지 않던 미장센과 오브제들이 눈에 들어오듯,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장면들이 많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들을 직면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까. 여행 후 남은 감정들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렇게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