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부터, 홀로 발걸음하기 (6)
대만에 오게 된다면 항상 필수적으로 들러야 하는 장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야시장이다. 대만 전체를 기준으로 대략 1,200개의 야시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이동식 야시장과 날짜별로 오픈시간이 다른 야시장, 시장형 시장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라고 한다. 타이베이는 20개 이상, 타이중은 15개 이상, 타이난은 이벤트형 야시장까지 모두 합하면 60가지가 넘는다고 하고, 가오슝 역시 12개 이상의 야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통계는 이야기한다.
대만의 야시장은 환경과 역사, 생활방식이 엮이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곳이다. 덥고 습한 낮은 사람들의 생활리듬의 일부를 밤으로 이끌었고,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빽빽해진 주거공간 탓에 주방이 없는 집들이 많다. 역사적으로도 중국에서 넘어온 외성인, 대만에 거주하던 본성인, 수많은 원주민 문화, 일제강점기를 거치던 시절,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대만을 점령하던 시절 등. 한 나라에 켜켜이 쌓인 역사적인 문화적 산물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개성”이자 “정체성”이라고 하였고, 야시장은 어느새 현대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커뮤니티 공간이자 생활 인프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만 내에서는 야시장 문화가 크게 발달할 수 밖에.
내가 처음으로 방문한 야시장은 스린 야시장(士林夜市)이었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관광 야시장으로, 사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국인들이 자주 가는 야시장은 아니다. 물론 인근 주민들은 지리적 위치상 이곳에 올 일이 많겠지만, 난지창 야시장(南機場夜市)처럼 현지인이 찾아가는 야시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야시장 추천 좀 해줘”
이런 질문들을 더러 받곤 하는데, 이럴 때마다 나는 고민에 빠지곤 한다. 대만의 야시장은 스린이나 라오허제처럼 관광 야시장이 있고, 중샤오 야시장처럼 소규모 현지 야시장이 있다.
“야시장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야시장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 먹거리가 위주인 것인지, 혹은 야시장 자체를 체험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대만 현지 분위기를 한껏 느끼고 싶은 것인지.
한동안 현지인 자주 가는 야시장으로 닝샤 야시장(寧夏夜市)을 자주 추천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는데, 여긴 이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지 오래여서 나는 먹거리 위주가 아니라면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MRT에서 내린 후 꽤 오랜 시간 걸어야 하는 것도 한몫하고, 사람이 너무 북적거려서 제대로 된 관광을 즐기기 어려운 경우도 더러 보았다. 때문에 나는 라오허제 야시장(饒河街夜市)에 가는 것을 조금 더 추천하는 편이었다. 스린 야시장보다는 덜 복잡하고, 길이 살짝 꺾인 일자형으로 되어 있어 편하게 둘러보기도 좋다. 미슐랭에 선정된 맛집들도 있어 먹거리를 즐기기도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 야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스린 야시장을 추천한다. 넓고, 다양한 맛집들이 즐비하고, 놀 거리도 많은 공간. 마치 대만 커뮤니티를 축약해놓은 장소가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스린 야시장 초입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지파이나 왕자치즈감자를 먹을 게 아니라면 더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고 싶거나, 깔끔한 위생을 원한다면 스린야시장 입간판 근처에 있는 건물로 가라고 한다. 지하까지 이어진 맛집들의 향연이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은 타이베이 공영시장 관리처가 담당하는 구역이라 맛의 취향은 탈 지언정 위생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곳의 장점이라면 연인끼리, 친구들끼리 방문했을 때 즐기기 좋다는 것도 한몫한다. 다트, 풍선 터뜨리기, 양궁 등 다양한 소규모 게임들이 군데군데 있다. 한 번은 재미 삼아 다트를 쳤다가 높은 점수가 나와 대형 인형을 상품으로 받은 적이 있어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러버덕처럼 생긴 오리 인형을 들고 터덜터덜 야시장을 돌아다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쳐다본 것은 덤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맛집들 이외에도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하는데,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것은 닝멍아이위(檸檬愛玉) 라는 음료를 좋아한다. 개구리 그림이 그려진 음료 가게를 많이 볼 수 있는데, 20온즈 이상 되는 컵 사이즈에 초록색으로 된 무언가를 잔뜩 담아주는 음료이다. 아이위(愛玉)는 대만의 토종 작물이며, 이 아이위라는 무화과 종 과실의 열매를 천 같은 것에 찬물에 담가 비비면 신기하게도 그 물이 젤리가 된다. 젤라틴도, 한천가루도 쓰지 않는데 어떻게 젤리가 될까? 아이위 씨앗에는 천연 펙틴 성분이 있어 물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굳기 때문이다. 가끔 채식주의자인 친구들이 이 닝멍아이위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이 크다. 가격도 40위안(1,850원) 정도로 저렴한 것은 덤이다.
한국에서는 즐기지 못하는 새로운 문화에 눈을 뜬 순간이었다. 오후 17시부터 24시까지 이어지는 야시장의 시간은 소소한 황홀함이었다. 먹고, 놀고, 소화시키고, 먹고, 놀고의 반복. 처음 대만 땅을 밟은 3월. 덥지만 약간의 쌀쌀함이 있던 그 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부터 나는 야시장을 사랑하기로 했다.”
대만 여행 가이드북을 보다보면 샤오츠(小吃) 라는 단어를 자주 볼 수 있다. 과연 이 샤오츠를 한국어로 풀어보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런 고민을 꽤 오랫동안 해왔다. 대만 친구에게도 이것을 물어본 적이 있었으나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식사라기에는 모자라고, 간식이라기에는 무겁고”
내가 이렇게 말하자 대만 사람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하루를 이어주는 느낌이 강해”
처음에는 그의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샤오츠에는 너무도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을 하나 꼽자면, 가볍게 한 끼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끼니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라기 때문에 모자란 만큼 다른 것을 더 먹을 수도 있고, 그 허전함을 다른 방향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하루를 플러스하는 느낌.
한 번은 넓은 종이에 인쇄된 타이베이 지도에 야시장의 위치를 사인펜으로 그려본 적이 있었다. 관광 야시장부터 소규모 이동식 야시장까지. 야시장은 항상 사람들이 사는 자리에 있었다. 대만 사람들에게 샤오츠란, 결국 떡볶이보다 무거우면서 국밥보다는 가벼운 음식. 누군가 입이 심심할 때, 혹은 저녁에 찾아오는 소소한 출출함이 밀려올 때. 많고 많은 편의점을 뒤로하고 찾는 음식. 샤오츠란 결국 하나의 문화이자 생활 리듬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강도 높은 관광을 하고 난 후 찾아오는 허기짐을 소소하게 달래고 싶을 때, 나는 가끔 루웨이(滷味)와 따창바오샤오창(大腸包小腸)이 생각나곤 한다. 루웨이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라탕처럼 내가 원하는 재료를 고르면, 양념에 같이 끓이거나 양념에 섞어주는 음식이고, 따창바오샤오창은 소세지 모양 찹쌀에 대만식 소세지인 샹창(香腸)을 넣어 주는 핫도그에 가까운 음식이다.
몇 해 전에 타이중을 방문했을 때, 나는 이중지에 야시장(一中街夜市)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타이중의 젊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곳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보고, 마시고, 놀았다. 다양한 샤오츠를 먹으며 배가 부르면 걷고, 또 소화가 되면 새로운 걸 먹어보고. 마지막으로 따창바오샤오창을 먹기 위해 잠시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했고, 주변의 불빛들은 그 다양한 감정들을 비추고 있었다.
대만 감성이 궁금하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야시장을 추천한다. 대만이라는 나라의 감성을 축약 해놓은 것 같은 이곳. 야시장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 위를 걷다보면 어느새 대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심어져 있을 것이다. 내가 야시장에서 만난 것은 다양한 샤오츠도, 문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야시장을 나와 숙소로 돌아가면서 이런 생각들을 한다.
“내가 만난 것은 결국 대만이라는 나라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