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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으로부터, 홀로 발걸음하기 (5)

by 이레이
49FA6DE6-D933-4434-9FCF-C49E545EDA9B_1_105_c.jpeg 2016년의 신베이터우, 롱스테이 타이베이 게스트하우스

그러니까 이건 예술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 역시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낯선 타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까닭은 지금의 나로선 알 수가 없다. 10년 전에 나눴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야심한 밤에 벌어진 아주 사소한 음주가 내 안의 무언가를 끄집어 낸 것이나 다름 없다.


나는 예술로 인해 대만이라는 나라를 처음 접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주걸륜, 그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호기심. 어느새 나는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었고, 대만식 중국어를 따로 공부하고 있었고, 나중에는 역사와 문화가 궁금해서 수업을 듣기까지 했었다. 그즈음 나는 바이안(白安) 이라는 대만가수에 푹 빠져 있었다. 오죽하면 처음 대만에 왔을 때 청핀(誠品)으로 달려가 앨범부터 사러 갔을 정도였으니까.


그때 내가 샀던 앨범은 바이안의 2집 接下來是什麼?(What’s Next), 장혜매의 17번째 앨범 偏執面 (Faces of Paranoia)이었다. 두 앨범 모두 내가 한동안 미쳐서 들었던 앨범이었고, 그 당시 까지만해도 좋아하는 앨범을 사서 듣는 것이 취미였다. 그 당시에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돈이 없었고, 생각의 범위가 짧은 사람이었다. 호텔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하며 여행 경비를 아꼈고, 아낀 경비로 맛있는 것을 더 사먹거나, 굳이 사도 되지 않는 것들을 모으는 평범함을 자행하곤 했다.


“어 그거 아메이(장혜매를 부르는 다른 이름) 앨범 아니에요?”


당시 시간은 밤 11시가 넘었고, 게스트하우스 거실은 일부 불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등된 상황이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사온 만한대찬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쇼핑한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옆에는 포도맛 타이완비어 세 캔이 있었는데, 나에게 말을 건 남자도 타이완비어 망고맛을 손에 들고 막 도미토리 룸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그 역시 중국어를 구사했지만, 유창한 편은 아니었다. 홍콩에서 온 사람이었고 그의 모국어는 광동어였다.


“아메이가 홍콩에서도 유명해요?”


그 당시의 나는 아메이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배경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 국내 음원 라이센스가 뒤죽박죽이어서 멜론이나 지니에서는 검색할 수 없는 노래가 태반이었다. 2025년이 된 지금까지도 한 가수를 여러 이름으로 검색해야 나올 정도이니, 때문에 나는 항상 그 시절의 음원수입사들을 원망하며 애플뮤직이 나왔을 때 바로 갈아탔을 정도였다.


내 질문에 그는 “당연하죠(當然)” 라고 대답했다. 본인도 콘서트 열면 티켓 못 구해서 전전긍긍한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나는 그 대답을 번역기로 검색을 한 뒤에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고, 그 역시 보통화 구사가 어려워 가끔 막힐 때면 구글번역을 사용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밤 11시부터 2시까지 3시간 가량을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보니 한국 소설 중에서 대만이 배경으로 나오는 소설이 있어요. 전체는 아닌데 일부 장면에서 대만이 나오더라구요.”


7F6972E7-E2B0-4484-AC12-3D1F2494B86C_1_105_c.jpeg 그 당시 구매했던 바이안의 接下來是什麼 ? , 장혜매의 偏執面 앨범


내가 이야기하는 책은 정이현 작가님의 <너는 모른다> 라는 작품이었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달콤한 나의 도시> 이 세 작품을 너무 재밌게 읽었었고, 나는 한국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모를 수 없는 작가였다. 해당 작품에는 옥영이라는 인물이 대만 화교인 인물이며, 친정에 간다고 남편에게 말을 한 뒤 전 연인을 만나러 대만에 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두 사람이 대만에서 향한 곳은 마오콩 곤돌라를 타면 중간에 내릴 수 있는 즈난궁(指南宮)이었다. 이곳은 커플이 방문하게 되면 헤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기에 작중 의미심장한 요소로 쓰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그에게 이 이야기를 장장 20분이나 끙끙거려가며 이야기 했다.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이런 식으로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근거림이 강했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우리는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음식 취향과 대만에 여행을 오게 된 계기, 그리고 홍콩 하면 빠질 수 없는 홍콩 가수들의 이야기까지.




나는 중국어 언어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을 때였다. 단순히 듣기만 해서는 이게 보통화인지, 광동어인지, 대만어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지금이야 한 번 들으면 아 이건 이 언어로 이야기 하는구나를 알아차릴 수 있지만, 당시에는 뭣도 모르고 홍콩 가수들의 노래를 보통화로 이해하곤 했었다.


그 당시에 내가 자주 듣던 홍콩가수는 용조아(容祖兒)였고, 내가 그녀의 노래 몇 가지를 이야기하자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 보았다.


그는 홍콩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전부는 생각나지 않지만, 당시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그 이야기를 나눴었고, 르 클레지오, 알베르 카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 진짜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하네요.”


그가 구글번역 화면을 보여주며 내게 말했다. 화면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식으로 번역되었지만, 나는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했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게스트하우스 여러군데를 갔지만 이런 식으로 대화 해본 적은 처음이에요.”


BB048509-815E-40DF-8426-6149D2F49C61_1_105_c.jpeg 그날, 나와 홍콩 청년은 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던 6달째 대만에 있다는 영국인 부부도, 혼자 여행 온 나를 보며 스게- 라고 이야기하면 일본인 청년도. 이렇게 별의 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단편으로 끊어진 대화의 틈을 이어갈 새도 없이, 여행객들은 대만이라는 나라를 만끽하러 떠났다.


그날 절반 정도 먹은 라면은 다 불어 있었고, 3번째 캔의 맥주 안에는 탄산이 모두 빠져 있었다. 홍콩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남은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모두 정리한 뒤 완안(晚安) 이라는 인사를 남긴 채 서로의 침대로 들어갔다.


10년이라는 기간동안 대만을 다녔지만, 나는 아직 이때의 기억이 제일 마음에 닿는다. 잊을만 하면 당시의 분위기와, 대화를 이끌어나가려 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다소 치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 생활, 바이오리듬 같은 것들이 눈 앞의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힘을 쓰던 그 모습들이.


E79918F1-792B-415A-ADDE-041C4D691E14_1_105_c.jpeg 한국어를 할 줄 알았던 대만인 호스트는 항상 친절했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소설에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라는 문장이 있다. 나는 오랜 기간동안 대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왔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거기까지? 라는 대답을 몇 번 듣곤 했다. 한국인인 나의 입장에서 대만은 여전히 타국이었다. 나의 바운더리에서 조금은 벗어난 공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대만이라는 나라를 나의 바운더리 속으로 끌어 안고 싶었다. 대만이라는 나라 안에서,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하지만 마음의 한 켠을 비워두고 그 안을 대만으로 채우고 싶다는 갈망은 여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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