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부터, 홀로 발걸음하기 (4)
여행지에서 가장 억울한 일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바가지를 당했을 때? 불친절함을 경험했을 때? 사전조사까지 다 했음에도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CLOSE 팻말? 나는 당당하게 도착하자마자 아플 때라고 말을 하고 싶다.
때는 코로나가 막 풀렸을 즈음, 여름의 열기가 작게나마 꺾인 한 때였다. 지긋지긋한 폭염이 지나간 이후라고는 하지만, 더위를 유독 많이 타는 나에게 힘든 것은 매한가지였다. 나는 타이베이에 있는 호텔에서 4박을 했었다. 쉽게 찾아볼 수는 없는 호텔이었다. 한국인 후기가 거의 없었고, 위치도 시먼이나 타이베이 메인역 인근이 아닌 솽롄역(雙連站)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이 근방은 대규모 호텔 보다는 소규모 호텔, 2성에서 3성 정도 되는 호텔이 많아 외국인 보다는 내국인들의 방문이 잦은 동네였다.
나는 이곳에 있는 호텔 한 곳을 예약했었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흔히 호텔 하면 떠오르는 것. 넓은 입구과 리셉션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곳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라인(LINE)으로 직원과 소통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사람이 메시지를 받다보니 나는 답안이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미 땀으로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곧이어 호텔 비밀번호를 받을 수 있었고, 문이 열리자 내 눈앞에 들어온 것은 텅 빈 카운터였다. 이곳은 비대면으로 호텔 키를 받을 수 있었다. 카운터 위에 올려진 수많은 번호들 사이에서, 나는 라인으로 받은 내 방 번호를 찾았다. 라인으로 받은 비밀번호를 다이얼식으로 된 자물쇠에 맞추자 상자가 열렸다. 나는 키를 수령하여 방으로 향했다. 내 방은 5층이었고, 이곳은 엘리베이터조차 없었다.
방은 생각보다 매우 협소했다.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 바로 옆에는 작은 다다미룸 같은 공간이 있었고, 나는 그곳에 캐리어를 두며 4박을 보냈다. 창문으로는 허름한 옆 건물이 보였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인지 공사 자재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변변찮은 뷰와 협소한 방, 제대로 된 책상조차 없는 방. 나는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을 켰다. 다행히 바람은 시원했다. 제대로 된 계획조차 없이 왔기 때문에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하며 인스타그램을 살펴보았다.
“역시 어디를 가야하는지 모를 때는 시먼부터.”
간만에 방문한 시먼은 분위기가 꽤 달라져 있었다. 코로나 이후, 내가 알던 많은 매장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매장들이 들어서고. 완전하지 않지만, 그래도 리셋된 마음으로 시먼을 마음껏 돌아다녔다. 시먼은 원래 젊은 층의 방문 비중이 높고, 스트릿 문화와 개방적인 성향의 상징이다. 또한 LGBTQ+ 문화가 강해 타이베이시에서는 이러한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시먼에 무지개 횡단보도를 설치했다. 이 무지개 횡단보도는 관광객들의 사진 명소가 되기도 했다. 정확히는 2019년 5월, 대만 내 동성결혼 합법화가 시행된 이후 6월에 설치되어 현재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다.
물론 나는 홀로 방문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인증샷을 찍으려 하진 않았지만, 상징성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 작게나마 사람이 없을 때 빠르게 찍어놓긴 했다.
그렇게 시먼을 지나, 야시장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징메이 야시장(景美夜市)을 다녀왔고, 간만에 먹는 대만의 샤오츠(小吃)를 한껏 즐긴 후 숙소로 복귀를 해 잠을 청했다. 그러고 다음 날, 나는 극심한 두통과 발열, 침을 삼킬 때마다 수십 개의 바늘이 목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급성 편도염이었다.
나는 원래 매년 편도염에 시달리는 편이었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플래시로 내 편도 상태를 확인하였고, 편도에 희멀건 염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 첫날이 지나갔고, 남은 여행 기간은 5일이 남아 있었다.
보통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급성 편도염의 경우 몇 가지 이유가 존재했는데, 그중 하나는 이미 편도염이 체내에 발발한 상태에서 청결하지 못한 에어컨 바람을 쐬게 된다면 그것이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위에 지쳐 에어컨을 체크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좁은 방 안, 에어컨은 침대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다. 종일 에어컨을 틀고 숙면을 취한 탓에 건조해진 목 상태는 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꾸역꾸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양이세수를 하고, 간편한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다시 이 길을 올라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처연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오늘 아침에는 밥을 먹을까 면을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는데, 이제는 밥과 면 보다는 따듯한 옥수수 스프(玉米湯)가 먹고 싶었다. 그렇게 인근 식당에 가서 옥수수 스프와 시엔또우장(鹹豆漿)을 주문했다. 짧은 기다림 동안 머리가 핑핑 돌고, 관자놀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 몰라 요우티아오(油條)도 함께 주문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뜨거운 옥수수 스프를 한 입 머금었다. 짙은 옥수수의 향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갔지만 삼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목이 찢어질 듯한 통증에 여러 번 바닥을 내리쳤다. 이 와중에 요우티아오는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요우티아오를 작게 찢고, 그것을 옥수수 스프에 푹 찍어 입 안으로 넣었다. 스프가 닿은 부위는 부드러웠지만, 역시 삼키는 것은 힘들었다. 억울한 감정이 지독하게도 터져나왔다.
“인생이란 원래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즐겨보는 애니메이션 극장판에서 나온 대사가 문득 떠올랐다. 그래… 인생이라는 게 원래 쉽지 않은 법이라는 건 너무도 잘 아는데. 그런데, 왜 지금 이 순간이었을까요? 나는 꾸역꾸역 스프와 또우장을 먹으며 되뇌였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어?”
대사는 위의 말로 이어진다. 그래. 이렇게 아픈 것도 어떻게 보면 추억일 수도 있으니까 일단 약국. 약국부터 가자.
나는 대만에서 약국을 오게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야시장에서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소화불량에 걸려 소화제를 사러 약국에 간 적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파서 간 경우는 드물었다.
현재 위치에서 제일 가까운 약국은 역 근처에 있는 약국이었다. 병원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구해야 할 것은 해열제와 항생제. 항생제를 구할 수 없으면 감기약이라도 먹고 싶었다. 약국으로 들어선 나는 의학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파파고와 아는 중국어를 총 동원해서 말했다.
“급성편도염에 걸린 것 같아요. 해열제와 항생제가 필요해요.”
그 와중에 나는 항생제의 성조를 다르게 말해 약사 선생님께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 파파고와 사전을 써서 겨우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는 내게 항생제와 해열제, 그리고 편도에 바로 뿌릴 수 있는 진통제를 건네었다.
“대만에 온 지 며칠 째 인가요?”
약사가 내게 말했다.
“이제 이틀 째 입니다.”
그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편도염이면 열이 날텐데, 열 재봐드릴게요.”
그는 적외선 체온계를 들고 와 나의 체온을 쟀고, 정확히 38.5도라는 숫자가 기계에 달린 작은 디스플레이 위에 떠 있었다. 숫자를 보자마자 약사는 더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약값을 지불했다. 밖으로 나와 미리 사둔 편의점 우롱차와 함께 약을 먹었다. 진통제를 굳이 써야 하나 싶었지만, 놀랍게도 그 진통제를 목에 뿌리자마자 치가 떨리던 통증이 사그라들었다. 사실 500위안 정도면 병원에도 갈 수 있었지만, 굳이 병원에서 접수하고 대기하는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약값이 더 비싸게 나왔지만, 나는 진통제를 얻은 것 만으로도 비싼 약값을 톡톡히 한다고 생각했다.
5박 6일동안, 정확히 3일간 나는 고열과 통증에 시달렸다. 맛있는 야시장의 샤오츠들도, 새로 생긴 식당들도 모두 먹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못내 아쉬웠다.
종종 대만으로 가족여행을 간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오곤 한다. 특히 갑자기 동행자가 아프거나 했을 경우, 나에게 연락이 온다면 나는 곧장 병원에 가라고 전달한다.
“500위안 내외로 진료 받을 수 있어. 여행자보험 들었으면 돈 꼭 청구해.”
나는 약으로 아픔을 달랬지만,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만큼은. 특히 나를 믿고 연락해준 사람들 만큼은 나보다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이 커, 나는 항상 병원에 가라고 말을 한다. 타지에서 아픈 것 만큼 서러운 일이 또 있을까.
홀로 여행을 하다 보면 갖가지 상황에 노출되곤 한다. 그래도 돌파구는 있다. 다만 조금 더 감수해야 할 일이 많아질 뿐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어?”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쇼츠를 보다보면 한 개그우먼이 다른 방송인을 성대모사 하면서 마무리짓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참 좋아한다. 혼자 여행하는 여행객의 입장에서 이만큼 공감가는 말이 있을까 하고.
“퉁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