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라이프, 초록 아래를 걷는 사람들

대만으로부터, 홀로 발걸음하기 (3)

by 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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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뻗은 가지를 필두로 흐드러지게 몸을 뻗은 이파리들. 작은 잎들이 모여 하나의 그늘이 되고, 사람들은 그 아래를 걷는다. 걷다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저 건물은 왜 이리 낡아 있을까. 저곳은 분명 며칠 전 까지만해도 편의점이었는데 왜 공사중일까. 저기는 항상 어느 노파가 앉아 부채질을 하며 창 밖을 보고 있었는데 오늘은 어디를 가셨을까. 수만가지의 이유와 수천가지의 시선, 수백가지의 생각들을 하다보면 비로소 모이는 결론들이 있다.


나는 대만에 있을때 대중교통이나 택시 타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지하철 한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라면 걷거나, 혹은 공공자전거인 유바이크 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대만의 지하철은 지상으로도 다니기 때문에 흔히 쓰이는 단어인 띠티에(地鐵)보다 지에윈 혹은 첩운(捷運)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대만의 첩운을 타다보면 자연스럽게 창 밖의 풍경을 보며 대만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단수이(淡水)를 가기 위해, 혹은 스린 야시장을 가기 위해 2호선 레드라인을 타다보면 자연스럽게 지하에서 지상으로 가게 되는데, 대다수의 관광객들이 창밖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대만의 풍경은 여행객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아름답다라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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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여행하다보면 흔히 동먼(東門)이라는 곳을 알게 된다. 이곳은 융캉지에(永康街)라는 곳을 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융캉지에에는 맛집과 소품샵이 즐비해 여행객들의 필수요소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나 역시 융캉지에를 좋아하는 편이며, 특히 이곳에 있는 톈진총좌빙(天津蔥抓餅)을 너무 좋아해 이것만 먹으러 방문하기까지 하는 곳이다. 치즈와 계란이 들어간 총좌빙은 특유의 소스, 치즈와 계란의 부드러움이 더해진 풍미를 자랑한다. 긴 줄을 기다린 후 총좌빙을 들고 인근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를 테이크아웃. 이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대만의 일상으로 들어갈 준비는 완료된 것이다.


동먼역 근처에는 다안 삼림공원이 위치해 있다. 하지만 굳이 그 넓은 공원으로 가지 않아도 융캉지에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다보면 칭티엔지에(青田街)라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융캉지에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대만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곳.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 중 하나.


칭티엔지에는 오래된 건물들 사이사이에 자연이 스며들어 있다. 곧게 쭉 뻗은 나무들은 동네 사람들의 작은 쉼터가 되고, 융캉지에에서 칭티엔지에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금화공원(金華公園)이 있어 동네 사람들의 커뮤니티 센터가 되기도 한다. 가끔 이곳에 앉아 주변을 들여다보곤 했다. 대만 사람들 특유의 여유를 구경하고 있다 보면, 한국에서의 생활을 돌아보게 되곤 했다. 빠르게 움직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회색빛 도시 안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내 모습. 딱딱하게 굳은 표정들에 동화되어 가는 모습들. 집으로 돌아와 한껏 긴장이 풀렸음에도, 검은 TV 화면 속 내 모습이 아직까지 굳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대만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에게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숨겨야 한다고 늘 교육받아 왔다.


“뭐가 그리 즐거워요?”

“혼자 힘든 거 아니에요.”


“혼자 다른 세상에 있네”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손님과 나눈 스몰톡이 즐거워 잠시 웃어도, 그날따라 커피 추출이 너무 잘 되어 기분이 좋아도, 늘상 찾아오는 러쉬타임 이후 끝났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도, 업무적 실수로 인해 상사의 꾸중을 들어 의기소침해 있을 때도. 나는 항상 감정이 표정에 드러났다는 이유로 혼이 나곤 했다.


하지만 대만에서 만큼은 그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내 현재에 공감해주고, 어쩔 때는 위로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왔다. 그 점에 있어서 대만의 공원은 참으로 신기한 곳이다. 개인적인 문제로 한참 찌푸린 표정으로 공원에 앉아 있다 눈물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속상한 일이었고, 감정이 주체되지 않아 한숨을 푹푹 내쉬며 울었다.


“괜찮아요?”


한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아차린 듯 당황스러워 했지만, 나는 그것보다 눈물을 보였다는 부끄러움에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훔쳐 괜찮은 척 하려 했다.


“울어도 돼. 울어도 괜찮아.”


그녀는 진짜 동네 마실을 나온 사람인 듯 한 손에는 우쓰란(50嵐) 음료가, 다른 한 손에는 대만에서 흔히 먹는 길거리 간식인 마슈(麻糬) 한 팩이 들려 있었다. 허리춤에 두르고 있던 작은 포켓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내게 건네면서 괜찮다고, 울어도 된다고 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금세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살아오면서 항상 들었던 말들이 있다.


“왜 울어? 그게 울 일이야? 뭘 잘했다고 울어?”


평생을 그런 이야기만 듣고 살아온 나이기에 울어도 된다는 말. 심지어 외국어로 들어버린 그 말은 사뭇 충격적이게 다가왔다. 정말 울어도 되냐고 묻고 싶기까지 했다.




나는 그렇게 대만의 열기와 곧게 뻗은 초록 아래에서 잠깐동안 울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내 옆을 지켜주셨다. 나이가 들고 내가 일의 책임자가 되고 난 이후, 종종 직원들이 우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간 내가 들어왔던 차가운 말과 다르게, 나는 직원들에게 “편하게 울고 오라”는 말을 건네었다. 울 수도 있다고. 사람이 우는 건 당연한거라고.


가끔 4월 한낮의 대만을 걷다 보면, 특히 공원을 걷다 보면 문득 이때의 일이 떠오른다.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던 그 친절함들, 끝에 남는 얄팍한 감정들이 또 하나의 단단함이 되었을 때의 추억들이.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일을 하고 지내며, 빠른 시간에 동화되어 행동하고 있지만. 가끔 극한에 부딪히는 순간마다 대만의 초록들이, 그때의 감정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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