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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정원

by 한운희


아버지의 집에는 늘 정원이 있다.

동생들과 뛰어놀던 앞마당 양쪽으로

소담하게 들어앉은 정원에는 소나무, 사철나무, 감나무, 줄향나무, 앵두나무, 넝쿨장미등이 심어있었다. 업자를 불러 조경바위를 앉히고

당신이 좋아하는 나무를 선정해서 식목을 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정도 정원이 완성되어 갈 때쯤에는 조경원에서 구입한 잔디 뗏장을 직접 땅에다 꾹꾹 눌러 꼼꼼히 심으셨는데 들뜨지 말라고 우리들에게도 밟게 하셨다.


겨울이 오기 전 노지월동 하는 나무 하나하나에

볏짚옷을 입히는 일부터 떼가 되면 나뭇가지를 전지하고 잎사귀를 갉아먹는 애벌레를 제거하는 일까지 아빠의 사계절은 쉴 틈 없이 바빴다. 특히

분재에 취미를 들이신 이후로는 나무의 수형을 예쁘게 만드느라 해가드는 방향까지 고려해 하루에도 여러 번 자리를 바꾸고 모양을 잡아갔다. 덕분에 우리 집 현관 앞 계단과 앞마당에는 소나무 분재와 매화나무 분재, 초본분재(이끼와 야생화를 이용해 자연을 축소해 표현하는 분재)등으로 가득 찼다. 성정상 낙엽 하나 떨어지는 것도 못 보셔서 매일 나무를 돌보고 정원을 가꾸느라 힘드실 만도 한데 그것들을 바라보는 아빠의 눈은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으니 애정이 남달랐다 할 수 있겠다.


돌에도 취미가 있어서 틈만 나면 전국의 강가를 돌며 수석을 채집하러 다니셨다. 길을 걷다 발길에 쉬 차이는 것이 돌이라고는 하지만 아빠가 모아 온 돌에는 가지각색의 개성과 함께 서사와 역사가 분명했다.

본인만의 취향도 확고해서 큰 돌은 정원석으로 많이 쓰시고 작은 돌은 나무좌대를 놓아 실내에 전시해 놓았다. 특히 모양이 수려한 돌은 커다란 수반에 고운 마사토를 깔고 위치를 잡은 후 밤낮으로 들여다보셨는데 가끔은 우리 집이 가정집인지 수석전시장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지금도 언제 어디서 채집하셨는지 다 아실정도

이니 그 많은 돌 중에 하나만 없어져도 큰일 날

일이다.


8년 전 작동 전원마을로 이사를 앞두고는

수십 년간 돌봐온 정원을 그대로 두고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가슴앓이를 많이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가꾸어온 아버지의 뜰이 아닌가? 정원 구석구석 그 어디에도 아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 그래도 돌들은 모두 수거해 올 수 있어서 새집 앞마당에 살뜰히 놓였으니 다행이다.


지금도 아버지의 하루는 분주하다. 새벽 네시면

어김없이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정원 돌보기이다. 밤새 다녀간 길 고양이의 분변을 처리하고 떨어진 낙엽을 줍고 웃자란 잔디를 깎고 난 후 물을 주고 나면 아침인데 밥 몇 술을 뜨고는 다시 정원으로 나가는 일이 반복된다. 올해는 엄마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석류나무 두 그루와 참 다래 한그루를 더 심으셨다. 봄이면 목단과 작약, 수선화가 만발하고 여름 내내 피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불두화와 어우러져 제법 화려한 운치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제일 애정하는 것은 소나무인데

멋들어지게 구부러진 소나무는 아빠의 자랑이자

자부심이 되었다. 다만 소나무 전지는 큰돈이

들게 마련이어서 엄마와 항상 작은 분쟁거리를

만들고는 하는데 집 근처 선산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묘에 식재할 수십 그루의 측백나무와 철쭉을 사느라 들어간 비용도 적지 않아 다툼이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님 묘소에 방문해서 꽃과 나무를

심고 관리하느라 궤념치 않으신다. 덕분에 선산에

있는 어느 묘소보다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돈된

조부모님 묘소를 볼 때면 분명 아빠가 제2의 정원으로 삼아 본인만의 놀이터로 삼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아빠에게 체력을 생각해서 쉬엄

쉬 엄하라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한낮 뙤약볕 아래에서도 일을 놓지 않으니 이쯤 되면 중독을 넘어 지독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번은 산비둘기가 떨구고 간 분변을 바로바로 치워야 한다며 하루 종일 솔과 조리를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아무리 말씀드려도 막을 방도가 없으니 어쩌면 당신의 즐거움을 뺏는가 싶어 입만 달싹거리고 말뿐이다. 그래도 수십 년간 이어진 아빠의 취미 때문에 우리 가족은 때아닌 호사를 누리고 살고 있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살면서도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아름다운 자연과 벗 삼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돌과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아버지의 정원에는

늘 새가 깃들고 해마다 날아오는 새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종일 노래하는 즐거운 새소리는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시름을 잊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즐거워하시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만, 자신의 몸도 돌보면서 건강하게 취미 생활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아니 생각할 수 없는 나이가 되셨기 때문이다. 언제가 마주할 이별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그동안 아버지의 정원을 함께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아버지의 정원을 감상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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