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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1

by 한운희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아들만 셋 있는 집의 장남이 결혼을 해서 첫 딸을 낳았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장 손주가 아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첫 손녀딸을 너무 예뻐하셨다.


내가 아장아장 걸을 때쯤에는 동네 구석구석을 데리고 다니면서 손녀의 귀여움과 영특함을 자랑하느라 침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큰 손녀딸은 그야말로 삶의 전부이자 세상 그 자체였는지 땅에 발이 닿을세라 안고 엎고 다니시길 7살까지 하셨다고 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제일 마뜩잖아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당신의 큰며느리인 우리 엄마였다. 혹시라도 큰딸이 어리광쟁이로 크거나 버르장머리가 없어질까 봐 몹시 노심초사하셨다니

말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나에게는 맨 밑 남동생포함 동생이 세명이나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툭하면 장난감과 먹을 것을 뺏어다가 나를 주시며 다른 손주들은 신경 한번 안 쓰셨다고 한다. 오로지 할아버지 눈에는 큰 손녀만 보였던 것 같다.


시간은 흘러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아빠가 포천에 있는 일동 중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때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같이 살고 있었던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를 거쳐, 아빠가 다음 근무지로 발령을 받을 때까지 6명 모두 포천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짐은 먼저 트럭에 부치고 모두 대문 밖으로 나서려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뛰어나와서는 제발 첫 손녀는 놓고 가라며 애원을 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애원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떼어놓고 포천으로 향하셨고 애가 타는 부모님의 마음은 꿈에도 모른 체 그날부터 나의 삶은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할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자전거로 태워 등하교시켜주시며 살뜰히 보살펴 주셨는데 할아버지의 넓은 등 뒤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부르던 콧노래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앞마당 넝쿨장미가 소담스레 피었을 때는 전지가위로 쑥덕쑥덕 잘라낸 장미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나에게 주시며 향기를 맡아보라고 하시고는 내 모습을 다정하게 지켜보셨다. 어린 마음에도 할아버지가 참 로맨틱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난 아직도 그 화사하고 신선한 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그뿐 아니라 만능 재주꾼이셨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손녀가 한약을 달여 먹였는데도 계속 땀을 흘리자, 손수 나의 숱 많은 머리를 솎아주시고 어느새 나무를 구해와 뚝딱뚝딱 하루 만에 평상을 만드셨다. 그리고는 평상 가장자리에 모기장을 빈틈없이 둘러 눕게 하시고는

연신 부채질을 해주셨다. 그때 앞마당에 피운 초저녁 매콤한 모깃불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아~ 이렇듯 내 기억의 편린 안에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의 냄새와 더불어 어린 날의 정서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살아가면서 힘들고 우울할 때면 어김없이 내 마음 깊은 곳 추억 저장소에서 할아버지와의 수많은 기억들을 꺼내 놓아 하나씩 하나씩 만져보며 위로를 받곤 한다.


집안 구석구석도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안방에 반듯하게 놓여있던 앉은뱅이 재봉틀도 할아버지 손만 닿으면 치마부터 바지, 수건, 커튼까지 드르륵 소리 몇 번에 작품이 되어 나왔고 그중에서도 빨간 원피스를 가장 좋아해서 며칠이고 벗지 않고 입었던 기억이 난다.


닭장이면 닭장, 전기면 전기, 수도면 수도, 농기구 손질, 심지어 마루 놓는 것까지 못하는 게 없으셨던 우리 할아버지~! 학교 자연 교구인 양팔저울도 톱질과 인두질 몇 번으로 쓱~ 만들어 주셔서 그 바람에 나는 반 친구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모든 것이 마냥 좋았다. 깔깔깔 웃으며 넘던 줄넘기, 손꼽으며 배우던 내림셈, 꾹꾹 눌러 적던 받아쓰기, 구구단 빨리 외우기 시합 등................


추억은 셀 수 없이 많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없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저녁까지 살뜰히 챙기시던 할아버지

손길을 난 잊을 수 없다. 살아계실 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해 사뭇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컸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나의 자존감과 평생을 살아갈 힘을 남겨

주셨음에는 틀림없으므로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도 항상 편안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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