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에
역대 대통령의 별장으로 쓰이다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국민에게 개방한 청남대로 여행을 떠났다. 입구로 들어서기 전부터 쭉 둘러져있는 대청호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니 대통령 별장으로 낙점되었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이렇게 멋진 곳을 국민들이 한동안 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얄궂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청남대 안의 잔디광장에서는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어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특히나 눈에 많이 띄었다. 커다란 웨건에 먹을 것을 한가득 싣고 와서 하루 종일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곳에는 외국 수반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기념품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고 대통령 집무실처럼 꾸며놓은 책상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았다.
사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빽빽이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예쁘게 다듬어지고 수형도 멋들어진 좋은 나무들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잠시뿐이고 단지 몇 사람만을 위해 별장 내에 있는 모든 나무를 가꾸고 관리하느라 혈세가 낭비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사택에는 대통령과 가족들이 쓰던 집기며 가구 등 모든 것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최고급의 물건으로 별장을 꾸며놓았는지는 몰라도 세월이 흘러 색이 바래고 유행이 지난 물건들을 보면서 한때는 영화로왔으나 퇴색된 권력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라는 말과 ‘달도 차면 기운다.’라는 선인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대청호변을 따라 쭉 이어진 벤치와 그네에는 호수를 바라보며 한껏 여유로움을 만끽한 채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모습이 왠지 민주항쟁이라는 지난하고 힘든 시간들을 겪은 후 얻은 평화로운 모습인 것 같아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근래 들어 개인적으로 수많은 희생과 고난을 담보로 성장한 민주화가 점점 더 힘을 잃고 의미도 무색해진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든다. 위정자들이 점점 국민의 의견과 뜻을 따라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자기 이해관계와 아집으로만 통치를 하고 당리당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논리에 근거한 찬성과 반대가 아닌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니 실로 한심하기가 그지없다. 흔히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기는 하나, 나라를 이끌어갈 대표를 뽑을 때만큼은 얼마나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다.
민주시민으로서 국민을 대표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데 있어서 그 어느 때 보다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나 하나쯤은 선거를 안 해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 대충 당적에 의거해 대표를 뽑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투표를 한다면 그 결과치는 오롯이 국민에게 반영될 뿐이다..
비단 나랏일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어느 자리이든 수장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두머리의 생각과 가치관이 곧 그 단체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인들이 ‘민심은 곧 천심이다.’라는 말을 마음에 되새기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자주 기본을 놓치고 정치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향한 실망과 더불어 더 이상 이 사회는 진정 미래가 없는 것인가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많이 답답하다.
한 나라의 수장이 되었으면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실로 아름다운 대청호를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라는 물음의 답은 후에 역사가 똑똑히 말해주겠지만 그중 한 사람이라도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이는 대청호수를 바라보며 내가 오롯이 풍광에만 집중할 수 없는 이유는 일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의 안위와 미래를 걱정하는 안타까운 마음의 반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