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언급한 것과 같이 나는 성악으로 노래를 부를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러기에 잠시 짬이 날 때면 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를 부를 때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구간이 있는가 하면 마의 구간에 걸려 한참을 연습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노력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곡에 대한 숙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연주회가 코앞이라도 고사를 하기도 한다. 완전하지 않은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휘자님이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익히고 발표해 보자고 하셔서 열심히 악보를 들여다보는데 집중이 안된다. 직장일도 눈에 밟히고 이 생각 저 생각 마음만 바쁜 하루가 훌쩍 흘러가 버린다. 그래도 맘 한편에는 노래에 대한 갈증이 채워지질 않아 심사 가 어지럽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가사도 쉬 외워지지 않고 마음만 자꾸 산란하다. 처음 성악 을 배울 때는 멋모르고 노래만 불렀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일종의 책임감마저 느껴지고 호흡. 발성, 가사등을 모두 신경 쓰는 작업이다보니 등줄기에
식은땀마저흐른다.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노
래를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던 중, 친구와 경기도 포천 산정 호수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설산의 풍경과 한껏 얼어 있는 호수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확 트인다. 일과 생계를 벗어나 인적이 뜸한 시골로 여행을 오니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둘레길을 걸으 며 한참을 노래부르니 울림 좋은 여느 연주실보다 목소리도 잘 나오고 한번 시작된 흥도 멈춰지질 않는다. 물론 같이 걸어가는 친구의 사정까지 살필 여유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둘레길 끝자락에 이르니 산 더덕을 판매하는 할머 니가 계셨다. 기분 좋은 마음에 흥정도 않고 냉큼 한 봉지를 샀다. 향긋한 더덕향에 내 마음도 상쾌 해진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산책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시골이라 그런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간간히 개 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가 좋아 한참을 더 그렇게 다녔다. 친구는 걱정이 되는 마음에 자꾸만 전화 해서 들어오라지만 나는 그이의 타박에도 아랑곳 않고 결국에는 작품 하나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완성된 노래가 모차르트의 아리아, 피가로의 결혼 2막 3장에 나오는 시동 케루비노의 아리아 ‘VOI CHE SAPETE’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는가)이다. 백작 집안의 세 여성에게 마음을 뺏겨 사랑의 열병을 노래하는 케루노비아의 마음이 노래를 사모하면서도 주변 상황에 떠밀려 제대로 과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내 마음과 비교한다면 심한 비약일까? 물론 디테일한 부분은 연주를 맞춰가며 더 조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 숙제를 자꾸 미뤄 놓고 조급한마음
만 들던 시간에 비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정신없는 일상에서는 제대로 된 노래가 나오질 않는다. 의무감에 자꾸만 마음이 쪼그라들고 맘만 바쁠 뿐이다. 때로는 가사, 음정, 박자들이 온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온몸을 휘감는다. 짐승은 감정의 본능을 바로 배설하지만 인간은 감성을 예술로 승화시켜야 할 소명과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일개 성악을 배우는 늦깎이이자 만학도인 내가 논하기에는 거창하지만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곧 있을 연주에서도 노래를 잘하는 연주자이기보다는 관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는 연주자이고싶 다. 또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올곧은 연주자이 고도 싶다. 무엇보다도 긴장을 좀 늦추면서 노래
자체를 즐긴다면 어느새 듣는이들도 함께 동화 되어 연주자와 관객이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 무대를 갖고자 함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