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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by 한운희


나는 자유함을 얻고 싶다.


돈으로부터의 자유, 집착으로부터의 자유, 걱정, 근심으로부터의 자유, 그 밖에 나를 옭아매는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등...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도 나의 목표이지만 죽기 전까지 내가 실행에 보고 싶을 때에 내가 하고자 했던 바를 실천에 옮기는 작업도 꽤 매력이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될지도, 혹은 더 줄어들 수도 있겠으나 현시점에서 나의 버킷리스트는 3개 정도로 추려진다.


그중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마치 비구니처럼 나의 머리거죽에 붙은 털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을 모두 없애고 깐 달걀처럼 매끄러운 생 낯과 조우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두상이 예쁘지 않아 납작하다한들 무에겠는가? 세상 시름과 싸우던 내 영혼이 찰나라도 자유하면 그만인 것을... 내 나이 70부터는 나의 머리는 반드시 자유함을 입을 예정이다


두 번째는 작고 소박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하는 성악 발표회를 가져보고 싶다. 프로페셔널은 아니지만 너무 아마추어도 아닌, 전공자는 아니지만 전공자에 준하는 무대를 꾸며 보고 싶은 것이 나의 현시점에서의 다소 야무진 꿈이다. 세계적인 소프라노에 비견할 수는 없어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소사동의 작지만 아름다운 아마추어 성악가로서 이웃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행복을 주고싶다. 그러기에 꿈을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지금이 행복하고 설레는 이유이다.


세 번째는 내 나이 60에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걸어보는 것이다. 몇 해 전 다리 수술도 있고 하여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러 앞서서 고민하지는 않으련다. 쉬엄쉬엄, 주변을 돌아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 길의 끝에 결국은 닿을 것이고, 단 1온스가량의 깨달음이라 하더라도 감사, 또 감사할 것이다. 걸을 수 있는 길이 어디에는 없겠느냐마는 신앙의 증거자들이 앞서서 걸어갔던 그 길을 걸으며 나와 신과의 참 시간으로 올곧이 마주하고 싶다. 어쩌면, 이런 내 꿈은 나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인 삭발과 맞닿아 있다


. 아무런 욕심 없이 참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는 것과 영육 간의 자유함을 입는 것이 나의 큰 소망일지도 모르겠다. 삭발한 여인에게 화장과 뾰족구두와 화려한 옷차림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 나이 50인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찬란하게 보내고 싶다. 인생은 총량의 법칙을 다 채워야 한다고 하지 않은가? 마음껏 해보고 마음껏 더 무너져 보고 마음껏 즐겨본 후, 그 길의 끝에는 죽음을 넘어서는 담대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꿈꾸고 기대하는 내 노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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