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
밤새 비가 내렸다. 각성이 지속되어 쉽게 잠들지 못했다. 빗소리가 좋았다. 몽롱한 상태로 새벽 좌선에 들었다. 와선이라고 하는 게 맞다. 처음부터 누웠으니. 잠깐 코고는 듯한 느낌에 화들짝 놀란 뒤 일어나 앉았다. 호흡도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혼침의 시간. 고엔까지의 힘찬 게송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 꾸벅 졸다가 깨다가 끝났다. Bhavatu sabba mangalam! - 세 번 염송이 끝내는 신호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깊은 진동이 느껴지는 음성이다.
아침은 꼬박꼬박 챙겨먹고(졸립다고 하는 게 위와는 무관한 것 같다.), 걷기를 20여 분 하고, 씻고 앉았다.
8~9시 좌선, 한 차례 정수리에서 발 끝까지 감각관찰하고 나니 주의가 흐트러졌다. 집중하면서도 살그머니 따라다니는 생각들. 9~11시까지 전날처럼 20여 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감각관찰하다가 졸음상태였다가 온몸이 정지한 중에도 의식은 흐르는 상태였다가, 미세한 감각의 산발적 돌출과 흩어지는 현상을 지켜보았다. 무슨 말인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같은 이곳은 시시때때로 큰 구름이 솟았다가 사라지는 것이, 하늘을 볼 때마다 장관이다. 비온 뒤 습기가 많은데도 바람은 오던 날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시원하고 청량하다. 고질적인 비염이 나타나지 않는다. 산책 하면서 벌레와 꽃, 나무들을 볼 때마다 내가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고엔까지는 법문에서 무상, 무아의 진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유쾌한 농담을 들어 가르친다. 해마다 생일을 축하하는 것 – 죽을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을 축하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참으로 그렇다. 잘 죽는 것에 대해, 무상의 예외없는 자연법칙에 대해. 그러니 일희일비가 무의미하고 무익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아 알기. 고엔까지의 가르침의 큰 의미는 언설이 아닌, 개인의 주관적 체험을 통한 깨달음의 성취라는 것.
오후 내내 비가 오락가락 하는가 싶더니 지금은 폭우다. 이곳에 오기 전 본 날씨예보에 태풍이 있었는데 그 영향인가 추측한다. 오후 명상시간에는 다시 꾀부리는 습관이 나타났다. 몸의 피로와 마음의 자루함이 한 시간 반을 견디지 못하게 했다. 거의 끝날 무렵, 참을 수 없는 지루함과 셀의 어둠으로부터 뛰쳐나왔다. 나 좋자고 하는 수행인데 짜여진 틀에 들어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완전히 밖에 있기도 싫은 다중적 이기심을 본다.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 링 위에 권투선수처럼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한다. 그에게는 승패가 달렸으니 당연히 움직이고 민첩하게 이동해야 한다 생존경쟁의 장에서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경쟁자가 없는데 쉐도우복싱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모든 행동에서 지는 것, 뒤에 물러나는 것에 대한 눈 먼 불안이 있다. 콤플렉스다. 상카라를 짓지 않는 것, 수행의 목적. 고엔까지는 세 가지 상카라에 대해 말했다. 1. 물 위에 금을 긋는 것, 2. 모래사장에 금을 긋는 것, 3. 바위에 글자로 새기는 것, 1, 2는 쉽게 지워지지만 3은 없애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묵은 상카라가 현재의 내 의도와 행동에 영향을 더는 미치지 못하게 하자.
명상 중에, 또는 자다가 꿈에서 문득 문득 과거의 인물과 장소가 나타난다.
저녁 법문 – 고성제(고집멸도에 대해), 새로운 상카라를 일으키지 마라. 고통과 고통의 원인,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 쉬운 설명, 감명 깊다.
*옆방 수행자가 매일 밤 탄식과 신음, 혼잣말(곤충에게)을 한다. 오늘은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왔다가 피식 웃었다. 새로운 상카라를 일으키지 마라. 모두가 수행을 돕는 이들이니.
Day-6
어젯밤에는 곯아떨어졌다. 낮동안 감각훑기가 몹시 고단했던가 보다. 수많은 꿈, 그러나 명확한 스토리는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어떤 남학생이 옷(외투)을 빌려달라고 졸라서 준다. 앞섶이 낡은 남루한 겨울 외투, 검정색. 어떤 남자아이와 산 중턱보다는 낮은 곳에 있는데 먼데서 그애 얼굴에 서치라이트를 강하게 비춘다. 그애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서치라이트는 노란색으로 얼굴, 특히 눈부위에 집중적으로 명멸하며 취조 비슷한 걸 한다. 그애는 순순히 자신이 잘못한 걸 인정하고 5조? 5억?, 5가 들어간 벌금인가 벌칙을 받겠다고 한다.
새벽 기상종이 울리기 전에 깨었다. 비가 계속 내렸다.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우산을 들고 나가 걸었다. 새벽 좌선은 오늘도 몽롱하고 혼곤한 졸음 - 잠 속에 빠져 제대로 혼침 속에 있었다. 집에서 매일 하던 새벽좌선과는 왜 이렇게 다른가?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도피의식으로 바뀐 걸까? 고엔까지의 긴긴 새벽게송을 반쯤 누워 몸으로 진동을 느끼며 들었다. 그는 어디까지 도달한 것일까.
아침 먹고, 감사하고, 산책하고, 씻고, 8시 명상하러 갔다. 묵언 중이니 사람들 얼굴을 보지 않는다. 스치거나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8시 명상은 세 번 위아래 훑어내리기 후에 쉬었다. 긴장과 집중이 나란히 나타난다. 집중하되 긴장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잘하려는 갈망인가? 집착?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주의 깊고 기민한 마음으로 감각을 관찰하라는데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과 주의 깊고 기민한 상태가 양립이 가능하려면 더 치열한 수행을 해야 하는 걸까? 아마도 처음 운전을 배우는 것과 같은 건지도.
9시부터 담마홀에서 구수련생 명상 점검이 있었다. 열과 땀나는 것과, 바디스캔 중 생각에 대한 질문을 하려 했는데 점심시간 질의 응답시간에 오란다.
12:23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비 온 끝에 습기가 고온에 섞여 텁텁한 열기가 느껴졌다. 12시부터 지도법사의 인터뷰가 있는데 가지 않았다. 이미 아는 답에 질문을 하는 게 적절하지 않는 것 같아서다. 외국인 지도법사에 대한 거리감도 있나? 자유롭지 못한 의사소통 때문이다. 알아듣지만 말은 유창하지 못한 데에 따른 불편감이 있다. 매니저의 통역을 거치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고. 이래저래 자의식의 발동이다.
이곳에서만 가능한 일 – 꽃과 풀, 곤충과 벌레들에게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는 것, 하늘과 구름, 별, 달 보기, 새와 매미소리 귀 기울이기, 바람,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기, 빗방울 얼마쯤은 그냥 맞기.
이전 수행자가 두고 간 슬리퍼 두 켤레로 담마홀과 식당을 이용하고, 쓰고 남긴 빨래비누로 세탁하고, 옷걸이와 빨래집게를 사용한다. 누군가의 보시로 운영되는 이곳의 전기와 물에 대해 아까운 줄 모르고 쓰면서 가져 온 두루말이 휴지는 10일간 떨어지지 않도록 조금씩 아껴쓴다. 선풍기 플러그를 뽑지 않고 다음번에 편히 쓰고 싶어 그대로 둔다. 유일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우산이다. 이틀간 내린 비에 공용우산이 없었으면 작은 양산에 의지하며 비를 피했을 것이다. 없는 것도, 잊은 것도 아닌, 처음부터 공용우산을 쓰고 슬리퍼를 신을 요량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한 대목이다. 그냥 하자. 할 수 있는 건 하는 게 좋지. 계를 지키는 것이 선정과 위빠사나 보다 먼저인 이유를 이해한다. 궁극의 목적으로 가는 튼튼한 토대인 것.
간간히 집 생각이 난다. 메따를 보내며.....
오후 1시~2시 30분. 쉬엄쉬엄.
오후 2시 30분~3시 30분. 그럭저럭.
오후 3시 30분~5시. 집중 호흡. 중간에 15분 휴식이 있지만 5분 정도 쉬는 시간이고 바로 좌정해서 시작을 알리는 게송을 기다린다. 오후 5시까지 오늘은 중간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물론 끝나기 전에 끝내고 나올 준비는 다했다. 그전에 약 삼십 분 정도 호흡수행을 했다. 감각관찰이 지치기도 했고, 오래전부터 하던 호흡명상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고엔까 전통의 수행이 의도하는 위빠사나의 지혜는 명확하다. 마음을 단련시켜 무상의 지혜로 평정심을 유지함으로써 상카라를 일으키지 않는 것. 이해도 되고 해볼만 하다. 피로도가 아직은 높으니 쉬어가며 하기로 했다. 내적 갈등에서 놓여나기로.
호흡에 깊이 들어가 집중이 되었다. 몸이 부풀어 터질 것 같고 머릿속에 광활한 어떤 세상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빛이 깨알같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칠흑같은 어둠의 벽들이 춤췄다. 위쪽 어디선가부터 훤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어딘가 들려올라 갈 것 같은 느낌. 그 와중에도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흔들리지 않았다. 그 특별한 집중으로 오히려 마음은 깊이 침잠하고 고요해졌다. 밖의 소음이 모두 지각되니 삼매까지는 아니다. 그저 평혼하고 조용하다. 걸음이 매우 느려졌다.
여섯째날이 끝났다. 저녁 한 시간 이곳에서는 금지된 글을 쓰고 느린 걸음으로 한 바퀴 정원을 돈 뒤, 6시부터 다시 명상했다. 감각을 관찰하고 호흡을 보기. 역시 호흡에 집중이 많이 되어 낮과 같은 영상들이 지나갔다. 비옥한 강가의 땅, 삼각주의 축적된 땅과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머리 위쪽이 환해지기도 했다. 명상 후 15분 휴식, 천천히 걸으며 풀과 꽃과 벌레들을 보고 있자니 무상의 진리가 생명에게 주는 의미가 떠올랐다. 모든 순간에 잘 살자. 할 수 있는 한 많이 사랑하자. 이생의 목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게 많다. 사랑하기!
법문-지수화풍의 요소가 어떻게 마음과 물질에 영향을 주며, 그것이 상카라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묵은 상카라는 그냥 내버려두면 사라진다. 새로운 상카라를 짓지 말라. 감각은 묵은 상카라가 일으키는 것. 완전한 평정심으로 지켜볼 것. →바디스캔 중 의도적으로 감각을 느끼려고 하고 통제하려던 것에 급제동!
비 온 끝의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아름다운, 맑은, 깨끗한, 그리고 고요한 밤이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