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코리아에서 열흘] day7~8, 에필로그

by 하범

Day-7

새벽 좌선, 어김없이 졸음 속에 푹 젖어 몸미 멈추고 의식은 깨어 있으나 의지가 선명하지 않다. 이상태로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호흡을 본다. 감각관찰은 희미하게 한 번 훑고나니 더 느껴지지 않아 그만한다. 옆 셀의 수행자들이 하나 둘 나가는 기척이 들린다. 속으로 몇이 나갔나 세어본다. 공연히 위안이 된다. 나만 고단한 게 아니구나.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이곳에만 오면 힐링이 될 것 같고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으로, 어떻게든 도시와 직장의 번잡함을 떨쳐내고 싶어 손꼽아 기다려서 달려온 담마코리아인데 매 수행시간은 고역이다. 생각하면 모순에 웃음이 나고, 적당한 구실을 찾아내는 마음의 영악함에 놀란다.

몸의 멈춤과 마음의 흐릿함을 털고 나도 명상홀을 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사방에 안개가 가득하다. 몽환적인 아침풍경. 안개비가 미세한 감각이 일어나 감지될 때처럼 맨살에 와서 살그러니 부딪힌다. 명상하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한 이곳- 담마코리아 위빳사나명상센터.

대단한 진전은 없다. 가만히, 또는 불현 듯 떠오르는 어떤 인식, 생각. 객관적인 ‘나’를 처음 만나는 느낌. 이렇게 흐트러져있었구나. 죄책감이나 자괴감과는 다른 발견.

오전 11시. 볼펜 끝. Metta to all beings.


에필로그

신촌세브란스 병원 암병동 갑상선 초음파센터. 오전 8시 20분. 검사 대기중.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결절이 몇개 발견되었는데 그중 모양이 예쁘지 않은 게 있어서 정밀검사를 받기로 했다.

담마코리아 두 번째 수행기는 볼펜 잉크가 다 되어 7일째 아침에 기록을 멈춘 뒤 나머지 코스 일정이 끝났다. 고단함과 마음의 방황도 그렇게 끝났다.


사랑으로 살기로

가슴 저 아래 깊은 고요의

샘을 느꼈다. 그 느낌을

기억하기로. 더 없는

평화와 평정심, 지복감

가슴에 등대 하나 세웠다

흔들리고 소란한 순간에도

등대같은 그 고요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Day-10 metta의 날 아침

자비명상 중 울었다

온몸으로 눈물이 솟아나는 듯

모든 코스가 끝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걷기, 걷기, 걷기

숙소에서 명상홀까지는 직선으로 어림잡아 백 미터 정도 거리다. 시멘트로 도보를 만든 중앙선을 두고 양쪽에 잔디밭이 있고, 그 외곽을 둘러싼 길과 외곽선을 연결하는 두세 개의 중간선이 있다. 그런데 그 길의 모양을 보면 전문가의 솜씨는 아닌 것 같은 엉성한 느낌이 든다. 비율이라든지 도보의 길이나 중간 연결선의 위치가 제각각이다. 잔디밭에는 군데군데 작은 나무가 심겨져 있거나 몇가지씩 종류가 다른 화초들이 작은 무더기씩 붉은 벽돌로 경계를 두른 화원을 이루었다. 화초들 역시 이곳저곳에 제각각 심겨져 통일감은 없다. 어설픈 조경이다. 이유가 의미있다. 담마코리아 운영은 시설관리와 프로그램 운영 등 모든 것이 구수련생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자원하는 사람들의 구성이 다르니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도 품종과 심겨진 위치가 제각각이다. 그래서 어설프지만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지는 곳이다.

명상시간, 먹고, 씻고, 빨래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남는 시간이 많다. 빈 시간에는 담마홀까지의 잔디밭 사이에 난 보도를 걸었다. 걷고, 걷고, 걸었다. 어느 때는 휴식시간의 대부분을, 어느 때는 십 분이라도 천천히 걷기도, 두 팔을 휘저으며 빠르게 걷기도 했다. 천천히 걸을 때는 발에 주의가 모이고, 빨리 걸을 때는 가슴이 쭉 펴지고 허리가 꼿꼿해졌다. 명상이 깊어진 다음에는 저절로 걸음이 느려지고, 식사 후에는 온몸이 분주했다.

아침 7시에는 챙모자로 얼굴만 가리고, 낮에는 양산으로 팔뚝까지 햇볕을 차단하고 걸었다. 고귀한 침묵의 아흐레를 보내는 동안 길동무들이 생겼다. 늘 같은 사람들이 나와 걸었다. 시선을 마주치거나 몸을 스치는 일도 없지만 서로를 알아둔다. 행로가 겹치거나 엇갈려 지나지 않도록 먼 발치에서도 상대방의 몸의 방향을 미리 알아차려 길을 비켜주고 다른 길로 향했다. 하루 이틀 날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거나 쪼그려 앉아 풀숲을 들여다보곤 했다. 마을을 사방으로 둘러싼 높고 낮은 산봉우리를 넘어 온 흰구름은 새파란 하늘 아래 설산을 이루기도 하고 뭉게구름 겹겹이 목화솜을 펼쳐 놓은 듯 눈부셨다. 창공의 에베레스트와도 같이, 한여름의 하늘은 장관이었다. 느릿느릿 발을 떼어 옮기려 하면 흰 보도 위로 개미가 분주히 오가고 무리를 따라 시선을 주는 곳에는 메뚜기나 방아깨비가 초록의 보호색 속에서도 팔딱이는 모습이 선명히 구별된다. 도시에서는 보려고도 하지 않던 생명체들에게 마음을 들이고 귀 기울이고 눈길을 준다. 한동안 쪼그려 앉아 있다가 무릎을 세우고 일어서서 걸음을 옮기려면 몇 발자국쯤 빈 마음이 되어 가볍다. 열흘 동안 걷고 멈추고, 걷고 덜어지면서 그 자리에 하늘과 구름, 바람, 풀벌레들이 들어와 머물렀다.


#수행자

세 시간을 운전해서 담마코리아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사무실에서 등록을 마치고 방 배치를 받았다. 백팩 하나 달랑 들고 갔지만 그것도 짐은 짐인지라 방에 들어가 가방을 열어 선반에 물건들을 정리했다. 30여 개의 방이 중앙에 복도를 중심으로 나란히 있는데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는지 몇 가지 되지 않는 짐을 놓고 움직이는 소리가 고요한 숙소에서 가장 크게 들였다. 밖으로 나가려는데 백발의 할머니가 마침 방충망 미닫이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섰다. 작고 여윈 몸집, 주름진 살집없는 얼굴, 짧은 머리카락, 헐렁한 옷차림, 족히 팔순은 훌쩍 넘겼을 노인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기역자로 굳은 허리였다. 꼿꼿이 세워도 60도를 넘지 않을 듯한 굽은 몸으로 부러 고개를 들어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상태였다.

노인은 스스럼없이 말을 붙여왔다. “점심은 먹었수?” 얼결에 나는 먹었다고 대답하고 노인과의 첫대면을 마쳤다. 이곳에 사는 할머니인가? 전에는 만나본 적 없는데 그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나? 속으로 의아한 생각이 잠시 들었다. 미닫이출입문 앞에 노인이 밀고 온 작고 낡은 유모차가 놓여있었다.

노인이 수행차 그곳에 왔고 이미 이전에도 경험이 있는 구수련생이라는 걸 다음날 아침 알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방역지침은 수시로 강화와 완화를 시소 타듯 오갔다. 수도권에서는 최고 단계인 4단계였고, 시골마을 한가운데 있는 담마코리아도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외지에서 찾아오는 방문자들은 대중교통을 타지 않도록 하며 사전에 코로나 검사 결과를 보내야만 했다. 수행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엄격하게 방역지침을 준수하도록 안내가 거듭되었다. 명상홀 게시판에 구수련생들에게 개인명상홀이 배정되었다. 하루 세 번 단체명상도 모두 개인 명상실에서 하도록 안내되었다. 그 명단 마지막에 노인의 이름과 명상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노인은 흰고무신을 신었다. 명상시간에 담마홀에 가면 늘 그 흰고무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명상실에 도착하고 가장 나중에 나왔다. 숙소에서 담마홀까지, 숙소에서 식당까지 노인은 늘 유모차에 몸의 무게의 반을 의지하며 이동했다. 고귀한 침묵의 9일 동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움직이고 먹고 씻고 빨래했다. 식당에서 식판에 음식을 담을 때, 설거지를 할 때면 유모차 없이 이동해야 하는데 힘겨워보였으나 그건 내 가벼운 연민이거나 동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왜 수행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은 노인에게 무의미한 소음인지도 모른다. 나는 왜 수행을 하는가에 대해 묻고 대답해야 할 차례다. 몇차례 비가 내렸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노인이 한 손에 받쳐 든 장우산은 기역자로 굽어 뒤로 빠진 등허리로부터 엉치와 다리를 가리지 못했다. 그러나 어쩐지 내눈에는 빗줄기가 노인이 가린 머리 위의 우산에만 쏟아지는 것 같았다. 고귀한 침묵이 해제된 열흘 째, 메따의 날, 노인에게 사람들이 다가갔다. 나는 세상의 호기심을 꾹 누르고 돌아왔다. 인사없이.

#지렁이와 나

수행이 시작된 첫날, 담마코리아가 있는 진안은 수도권 못지않게 고온의 날씨였다. 낮동안에는 지열과 습기를 피해 땅 위로 나온 지렁이들이 시멘트 보도 위로 기어다녔다. 이슬 젖은 잔디를 벗어나 까끌한 보도 위로 올라와도 느린 움직임으로 피할 곳 없는 땡볕 아래에서 지렁이는 한 낮이면 말라죽었다. 아침에는 죽은 지렁이들이 널려 있어 발 딛는 곳을 조심히 고르면서 걸었다. 하루 그렇게 다니다가 다음날 아침 대빗자루를 들고나가 지렁이 사체를 모두 잔디밭으로 쓸어냈다. 더러 살아있으면 작은 나뭇가지로 살짝 밀어냈다. 지렁이는 온몸을 펄떡이며 반응했다.(그게 참 무서웠다.) 그래도 무언가 좋은 일을 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수행자들이 말끔해진 길을 따라 담마홀에 가는 것도, 발 밑을 신경쓰지 않고 빠르거나 느리게 산책하는 것도 보기에 흐뭇했다. 한낮이 되자 햇볕은 다시 뜨겁게 대지를 달궜다. 지렁이들이 여기저기 다시 기어나오고 있었다. 수행자 중에는 쪼그려 앉아 지렁이를 잔디밭으로 밀어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죽은 지렁이 주변에 개미들이 모여들었다. 지렁이 사체의 어떤 것은 이미 희미하게 형체만 남은 것도 있고, 개미떼에게 끌려가는 것도 있었다. 아침에 빗질로 쓸어버린 지렁이 사체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보지 못한 무수한 생명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대로 두기로 했다. 다음날부터 비를 들고 나가지 않았다. 생명은 순환이라는 것, 자연의 순환을 통해 흐를 뿐 살고 죽음의 분별이 의미없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다. 그 자체로 ‘행’이 없으니 충분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렁이를 보는 마음에 흔들림이 사라졌다. 무섭고 끔찍하고 싫다는 염오의 마음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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