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미팅을 끝내고 점심을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방 안에서 ‘쿵!’ 소리가 났다.
이윽고 내 시야에 포착된 겁먹은 눈의 우리집 냥이, 모찌.
무엇 하나 생각할 겨를 없이 0.1초만에 몸이 반응했다. 후다닥 방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 내 소중한 회사 랩탑이 수직으로 바닥에 하강해 있었다.
"모찌야!!!!" 라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내지르며 노트북을 열었다. 가느다란 하얀색줄과 파란색 줄이 여러개 겹친 검은 화면. 터치패드를 틱틱 두드리고 노트북을 껐다켜봤지만 이미 노트북은 수명을 다 했다.
하필 당시 이미 여러 개의 파일에서 바꾸어놓은 파일들을 깃 커밋git commit을 안 했다. 즉, 내가 만든 코드 변경들도 다 날라갔다.
하하하하하.
아주 말 그대로 깨물어주고 싶은 우리 모찌. 눈치 빠른 아기고양이는 내가 이전에 "모찌야!!!!"라고 우렁차게 부른 소리에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이미 침대 밑으로 숨어버리셨다. 허겁지겁 핸드폰에 있는 슬랙 앱을 열어 매니저에게 노트북이 고장 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발 빠른 매니저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다음, 임시 노트북(rental laptop)을 주문해줬다. 새로운 랩탑 주문은 자기 선에서 하기엔 과정이 복잡하고 임시 노트북(rental laptop) 을 받으면 내 선에서 주문을 하면 된다고 말해줬다. 임시 노트북(rental laptop)이 오기 전까지는 하루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에 그 날 오후는 팀 채널에 내 소식을 알리고 다른 엔지니어에게 handover을 한 다음 일을 끝마쳤다.
살짝 미안하고 찝찝했지만 어쩌나. 다음에 점심을 만들 땐 절대 방문을 열어두거나 노트북을 책상에 조금 걸쳐 두지 않도록 더 유념할 수 밖에.
이틀 뒤 아침, 캘리포니아 주에서 출발한 rental latptop이 우리집으로 배달됐다.
미국 대륙을 건너 이틀만에 오다니. 아마존 프라임데이 Prime day(보통 3일 안에 배달되는 아마존 서비스)도 못하는 걸 Fedex가 해냈다. 드디어 가뿐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고 셋업을 하려 하는데 첫 단계에서부터 막혔다.
회사 웹사이트 시스템에 접속하려면 VPN이나 패쓰키(Passkey) 가 필요한데 이전 랩탑에서는 간편하게 다른 방법으로 연결이 돼서 세팅을 안 했었다. 그게 지금 발목을 잡고 있었다. 회사 내 IT 테크팀 슬랙 채널에도 티켓을 끊었지만 돌아보는 대답은 AI 챗봇의 도돌이표 자동 응답.
매니저를 통해 얻은 전화 번호로 전화해도 통화량이 많아져 기다려야 된다는 자동 응답 뿐이었다.
일은 많은데, 강제휴가를 얻은지도 3일 째 되는 날, 덕분에 회사를 다니며 한 번도 안 들려본 오피스를 처음으로 들려보게 되었다.
같은 팀원은 아니더라도 회사 내 직장동료들을 처음으로 본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갔지만, 오피스에는 안내 데스크 2명 제외 텅텅 비어있었다. 물어보니 그 다음주가 미국 공휴일이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찍 집에 돌아갔거나 재택으로 근무를 한다고.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의 오피스는 개발자보다는 컨설팅 쪽이 많아서 그런건지 IT 부서가 따로 없다고 했다.
결국 오피스에 있는 무료 스파클링 음료 몇개와 좋은 뷰의 오피스를 본 걸로 만족했다.
재택으로 일을 한 지 4년 차가 되었기 때문에 오피스로 나가는 것에 대한 로망 아닌 로망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오피스에 가 보니, 50층 위에 위치 해 있어서인지 인터넷도 잘 안 터지고, 오피스로 가기까지 엘레베이터도 한 번을 더 갈아타야 돼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어쩌면 와이파이 잘 터지는 집에서 시간 절약하며 일하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귀여운 아기 고양이 덕분에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몇 시간 동안 일한 파일들은 날라갔지만, 그래도 강제휴가로 정신적으로 오랜만에 휴식을 얻었으니 그것도 감사였다.
고양이랑 살면서 재택으로 일을 하니 이런 일들도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