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조각조각 기록들
어찌어찌 버티고 지나와보니 벌써 2025년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그전만큼 의욕적이고 진취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속에서 불쑥불쑥 맴도는 생각들과 단어들을 이제는 한 데 엮어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래는 지난 6개월 간, 생각하고 느낀 바에 대한 회고들.
글을 쓰면 그 내용이 내 안에 뿌리내린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내가 쓴 글이 나에게는 파급력이 엄청나다. 때로는 내가 쓴 글이 나를 “이것 아니면 안 돼” 로 몰아갈 때도 있었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라고 하시는데, 그 말씀이 이 상황에 적용되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모 아니면 도’라는 양극단은 피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은 가변적이다. 사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다양한 이벤트들 속에서 생각은 변화될 수 있고, 그에 따른 행동도 달라질 수 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글을 발행했을 때, 나중에 바뀐 나의 생각들이 과거에 적은 글들로 인해 발목이 잡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 그냥 나도 생각이 변했구나”라고 여긴다. ‘이랬다 저랬다 말이 달라지는데?’에서 ‘고착화된 생각보다야 유연한 생각이 낫다’라고 바꿨다.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 굳이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생각이 바뀌지’라고 여길 필요도 없다.
나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힘들어했지만,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J는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믿음이 생겨났다. 그전까지만 해도 함께 교회를 가는 정도였는데, 최근 몇 달간 무엇보다 나에게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자고 먼저 말해주고, 주중에는 함께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갑자기 있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니, 아내한테 어떠한 행복감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고, 또 내가 평소에 큐티를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차이를 보면서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적어도 나는 다른 것들을 좇아 살게 된다. 결국 그 끝은 괜히 마음이 붕 뜨고 뭘 해도 공허한 마음이랄까. 우울증을 "극복했다” 고 여겼는데, 그건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순간 언제든지 다시 나에게 찾아오는 존재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개적인 장소에 목표와 계획글을 올리는 것은 이제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은 더욱 규칙적인 삶을 만들어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지 못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왜 이 정도밖에 못하지‘라고 여기게 되었다. 무엇보다 항상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적당히’ 계획 세우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지금은 일상적으로 매일 하는 루틴들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조금씩 하고 있다. 작년처럼 브런치를 자주 적진 못하지만 간헐적이라도 글을 발행하려 하고, 식단과 내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들도 마찬가지다. 회사 일은 “성과”를 당연히 내야 하지만, 내가 하는 개인적인 일들에 있어서는 일단 과정을 더 중요시 여기기로 굳혔다.
여권을 잃어버린 덕분에 반강제로 여름 계획이 깔끔해졌다. 덕분에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고 온전히 올여름은 더욱 신앙 안에서 바로 잡을 수 있게 됐고, 밀린 집안일도 하면서 조금 더 정돈되고 정갈한 생활을 하게 됐다. 지출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되고 조금은 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동안은 기회가 닿는대로 미국 곳곳을 둘러보아야 된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여행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처음 여행에서 받았던 새로운 자극도 계속 받다 보면 익숙해져서 그전만하지 못한다. 지금은 일관된 것 같지만 꾸준한 일상을 지키는 시간 속에서 인내하는 힘을 키우다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제일 큰 행복감을 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 나이에 돈을 벌어두고 여생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보내고 싶다고 하는데, 적어도 나는 이와 반대다. 나에게는 아무리 힘들어도 “일”을 하며 맞이하는 주말의 아침이나 여행이 주는 행복감이 배가 된다. 일이 주는 기쁨도 있다. 코딩이 익숙하지 않은 분야였고 때로는 무력감과 공포마저 주는 일이었는데, 그걸 전공 삼아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업으로 삼아 4년을 채웠다. 이제는 더 이상 공포감도 없고, 계속 찾아 시도하다 보면 어떻게 해서든 답이 나오는 분야라는 걸 알게 됐다. 이렇게까지 인도해 주신 분에게 감사하다. 엔지니어로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올 한 해, 이제야 조금씩 워라밸을 찾게 됐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했던 전전 매니저의 영향으로, 팀원들과 2시간의 시차 속에서 일을 하며 항상 적어도 오후 7시 좀 넘어서 일을 마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이제는 중간에 산책도 하고, 밀린 일은 다시 로그인해서 마무리하는 식으로 일하는 시간의 자율성을 가지게 됐다.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재택으로 일을 하는 것에서 어떻게 하면 나에게 맞는 생활패턴으로 할지 조금씩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다. 배워 적응하는데도 오래 걸리고 참 많이 느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조금이라도 발전하고 있다는데 의의를 둔다. 1:1 미팅을 할 때도 이제는 걱정과 불안함 없이, 매니저의 “how’s your work-life balance?” 물음에 , 진심으로 웃으면서 “pretty good”이라고 답변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동안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성경에 나오는 욥기가 많이 겹쳐 생각났다. 욥기에 나오는 욥만큼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1/100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알 게 된게 있다면, 운이 안 따라줄 때는 뭘 하던 안 되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내 진심과 그에 대한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오해를 만들고 갈등을 낳는다. 억울하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 성경의 “악으로 갚지 말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을 인정하고 그 부분에 집중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구정물 같은 감정도 흘려보내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조금씩, 다시 괜찮아졌다. 굳이 지나간 일들을 붙잡고, 마음속에 스스로 짐을 얹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나를 오해하거나 무례한 말을 던진 사람들에 대한 기도를 할 때, 정확히는 그들도 하나님 안에서 지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할 때, 내 마음도 편해지고 그들에 대한 어떤 원망의 마음도 없어진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아직도 힘든 시기엔 습관처럼 동굴 속으로 숨어버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연락이 늦어지는 버릇을 못 고쳤는데, 다들 그런 나를 너그러이 이해해준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오래 연락이 없으면 한 번 더 먼저 안부를 물어주고, 오랜만에 만나도 굳이 물어보지 않고 가벼운 얘기들로 웃고 넘어간다. 나중에야 겨우 연락을 하면, 섭섭함을 드러내기보단 “살아만 있으면 됐다”, “바쁠 텐데도 이렇게라도 연락해줘서 고맙다” 같은 말을 먼저 건네준다. 그들 마음속에도 서운함이 없을 리 없을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곁에 있어주는 이들을 더 또렷하게 보게 된다. 그들의 따뜻함 덕분에 나도 더 너그러워지고 싶어진다. 그렇게 마음들을 흘려보내며 살아가야지.
고마운 이들을 떠올리면 참 많은데, 그중 당연코 J이고, 또 한 명은 동생. 동생이랑 더 많이 이야기하고 가까워졌다. 물론 그 전에도 한국에서 오랜만에 만나면 언제든 편하게 얘기하고 지내긴 했지만 자주 통화하는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동생이 본인도 힘든 게 있을 텐데, 많은 힘을 주기도 하고, 한국에서도 동생 덕분에 맛있는 곳도 많이 가고 참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귀엽고 의젓한 내 동생.
마지막으로,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예수님이 전부가 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주실 때, 또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려 할 때, 다시금 걱정도, 불안도, 조급함도 안 든다.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이거늘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언제나 나에게 말해주셨고, 또 내 인생을 그렇게 지금까지 책임져주셨는데, 어딜 가던 굶어 죽게 하지 않으실 분인데, 뭐 하러 걱정고민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더 맛있는 거, 더 좋은 환경이면 당연히 좋지만, 없다고 아쉬워할 건 아니다. 그런 것들이 주어지면 좋고, 갈취를 하거나 부도덕한 방법으로 얻는 게 아니라면 거절할 이유야 당연히 없지만, 굳이 그런 것에 목매어 살고 싶진 않다.
물론 이마저도 내가 태어난 환경과 현재 주변 환경이 이러한 생각에 도움을 준 것도 한몫할 것이다. 그러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결국 하나, 모든 게 다 거저 주어진 것들이고 허락해 주셔서 얻게 된 것들이라는 것. 내 것이 아니니,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