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의도치 않게 생각보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많아졌다. 그동안은 너무 바삐 지내서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나는 어떨 때 제일 편한지/무얼 원하는지 등에 대해 딱히 정해진 기준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된 시기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생전 처음 심적인 여유를 느끼면서부터다. 정확히는 다른 주로 이사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한 직후부터. 그때부터 지금까지 간간히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다음과 같다.
대학교 때는 너무 바쁘게 지내서 혼자서도 꽤나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사실 너무 바빠서 '외롭다'라고 생각할 틈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그러나 오직 '직장' 하나만을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다른 주(state)로 이사하면서, 흔히 말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적어도 누군가와 함께 같이 밥을 먹고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있어야 된다는 것.
어쩌면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매우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 '혼자서도 충분히 잘 지내!'라고 강한 척하고 싶었어서?
그러나 그건 내 오만이라는 것을 새로운 곳에서 전면 재택근무로 지내면서 알게 됐다. 대학생 때와는 달리 직장생활은 쉽게 마음 터놓고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울뿐더러, 코로나가 심했을 때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때, 그동안 스스로 강한 척하려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더욱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극 계획형이었다. 매일 그날 그날 할 일을 써 놓고 영어 듣기를 마스터하겠다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들리지도 않는 해리포터 책 음성 파일을 들으며 지냈고(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유별났다), 시험 기간 한 달 전부터는 '~까지 뭘 공부하고 일주일 전까지는 (이만큼) 끝내겠다-'와 같은 계획을 세우는가 하면,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는 '난 이번에 ~ 것들을 이룰 거야!'라고 혼자 종이에 적어놓기도 했다. 지금 보면 요즘 자기 계발서에 나와있는 내용들을 어렸을 때 아주 철저히 실천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넘어가는 시기 동안, 내 계획에 없던 일들이 생기고 내가 목표했던 것들이 번번이 잘 안 됐다. 아마 이때부터 '인생은 계획하는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닌가 보다- '라고 체념 비슷한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했던 것 같다.
이후 대학교에 와서는 '처음 하는 유학생활 + 매일매일이 코딩 과제와의 사투 + 조기 졸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 주 15-20시간의 알바'라는 4단 선물폭탄이 날아왔다. 덕분에 그저 하루살이처럼 “오늘 하루 잘 버텨냈어!”라는 마음가짐으로 매일매일을 지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즉흥형이 되어 그날그날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해치우는데 바빴다. 그럼에도 감사했던 건, 그때는 교회에서 찬양을 듣고 기도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벅차고 때론 행복했다.
덕분에 졸업을 1년 앞당기게 됐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바라는 삶이 뭔지에 대한 상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현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이전보다는 생활적으로,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그제야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됐다.
먼저 나의 그날그날 닥치는 일만 해치우던 그동안의 패턴이 앞으로 내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래서 최근에는 주간 목표와 월간 목표를 정하고 조금이나마 규칙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됐다.
사실 목표 자체를 이루는 것보다는, 매일 스스로에게 변함없는 루틴을 만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의도치 않게 주위에 들판 밖에 없는 시골에 한동안 살게 됐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가 도시/시골 타입 중 어느 곳이 맞는지 10000% 알게 됐다.
아래는 그때 적은 일기:
시골에 사는 동안, 가끔 주말에 대도시로 놀러 갔다 오면서 대도시가 주는 북적거림, 저마다 분주해 보이는 활기참이 나에게 생기를 준다는 걸 제대로 체감했다. 반대로 매일 정적인 경치와 풍경, 그리고 차분하고 조용한 주변 환경이 나에게 그렇게 좋은 영향은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가끔, 아주 가끔 일에 지치고 인간관계에 지쳐 주변 소음으로부터 조금 단절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쭈욱 도시에 살고 싶을 것 같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이런 마음이 한 번도 든 적이 없다ㅎㅎ 휴가를 가더라도 국립공원에 가지 않는 이상, 사람 많은 도시로 가는 게 좋다)
지인들 중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을 보면 그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취향이 확고하다는 건, 적어도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는 안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지금에라도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나 자신을 알면, 적어도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으니까. 특히 사회적 압박감과 굴레에서 '~식으로 해야 한다'라는 무의식이 나를 옥죄였던 걸 생각하면, 참 큰 변화다.
포레스트 검프의 다음 구절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ing to get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무엇을 집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