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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외모에 대한 압박이 덜할 수 있는 이유

해외생활 중 편안함 하나를 꼽으라면

by 밍풀


한국에 가서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나오는 말이 있다.


“얼굴에 볼살이 올랐네~“

”잘 먹고 잘 지냈구나~”


또는


“어머 살이 빠졌다”

“왜 이렇게 말랐어”

“이제 좀 성숙해 보이긴 한다^^”


등등.



유학 후 1년 만에 만난 동생은 출입국에서 나온 나를 보고 "미국 가면 세련되질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꾀죄죄해졌어”라는 촌철살인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나 이 때는 예외상황이었다. 경유를 하면서 20시간 넘게 비행을 했는데 그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처음 한국에 1년 만에 돌아갔을 때, 부모님이 공항에 도착한 나를 보시고 제일 먼저 데리고 간 곳도 미용실이었다.




사실 인사치레로, 또는 상대방은 칭찬으로 생각하며 건네주는 말들이다. 그 마음을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서 외모 관련 얘기를 전혀 안 듣다가 이런 외모 관련 인사치레를 여기저기 폭탄으로 듣게 되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내 몸을 유심히 관찰해 볼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솔직히 지인을 만날게 아니라면 거리를 돌아다녀도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한국에서는 언제나 집 밖을 벗어나면 무조건 풀메이크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오면 이 모든 과정이 '선크림 바르기' 하나로 끝난다. 재택으로 근무하는 직업 특성상, 평소에 꾸며야 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화장품을 사는데 드는 지출이 거의 없다. 1년 전에 한국에서 산 화장품을 아직까지 쓰고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외모와 관련해서 참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여자들이 레깅스를 입고 속옷 끈이 다 보이는 상의를 입고 돌아다녀도 그 누구 하나 주목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 6년 전, 미국에 처음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알게 된 거였는데 그 누구도 레깅스를 입는 것을 선정적으로 보지 않고, 속옷 끈이 보인다고 해서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 schimiggy, 출처 Unsplash



지금이야 한국도 워낙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는 것이 일반화되긴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레깅스를 입고 등산을 하는 젊은 여성들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여전히 어르신들의 눈에는 편하지 않는 시선이 있다. 나 또한 이런 사고방식으로 유학길을 갔기에 처음엔 앞서 본 장면들이 문화 충격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느낀 점은, “우리가 문제 삼기에 문제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일단 그 누구도 외적인 부분에 대해 한국만큼 많이 신경 쓰지 않는 것도 한 몫한다. 외모보다는 그 사람이 입은 옷이나 액세서리를 가지고 칭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워낙 다양한 스타일의 개성 넘치는 옷을 입어서, 한국에서라면 절대 입지 않을 옷도 미국에서는 거림낌없이 입게 된다.



한 번은 대학교 1학년 때 집에서 뒹굴러 다니는 사자 얼굴이 프린팅 된 옷을 미국으로 들고 가 수업 때 입고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길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Oh I like your sweater!(너 스웨터 이쁘다)“라는 인사말을 적어도 3번은 들었던 것 같다.



또 한 번은 대학교 때 처음 시작한 구내식당 알바에서는 나보다 2학년은 더 위였을 거라고 짐작되는 미국인이 케로로 벨트를 매고 온 걸 본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든 생각은 '진짜 케로로 좋아하나 보다'. 그리고 다른 면으로 '대단하다'. 한국에서 저 나이에 케로로 벨트를 매는 사람이 있을까? 매고 싶어도 괜히 남들의 시선 때문에 못하지 않을까? 물론 내가 선입견으로 꽉 차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후에도 나와 비슷한 또래가 유니콘 가방을 메고 길거리를 다니는 걸 보면서 '이 나라는 이래서 각자가 자신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화 덕분인지 선입견이 점점 사라지고 점점 나와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도 열린 마음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한국의 사대주의 문화에 익숙해서 나이를 물어보고 괜히 더 예의를 차리며 조심스럽게 대했던 지난날들이라면, 이제는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그 시간에 서로의 관심사, 취미를 공유하니 그 사람을 사람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외모에 신경을 덜 쓰면서 이 때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 '그냥 나 자체로도 충분하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솔직히 여자로서 외모에 관심이 더욱 많은 한국 사회에 대해 강한 반대의견은 못 내겠다.



그런 관심이 있기에 한국 스타일의 옷들은 (개인적인 취향으로)이쁘고 머리 스타일링이나 피부 관리 같은 면에 있어서도 많이 앞서간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곳, 미국.


그래서 가끔은 막무가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기도 하지만, 나는 이 나라에 오기 전까지 좋아하는 것도 안 좋아하는 것도 없는 무채색의 인간이었기에 이 시간이 나에게 나만의 색을 입혀주는 시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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