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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미국에서 만두를 빚었다

3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떡만둣국

by 밍풀

2024년 1월 1일.

올해로 미국생활 7년 차에 접어들었다.


해외생활 7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서 손수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어 떡만둣국을 해 먹었다.



재료는 한국 마켓에서 하루 전날 장을 다 봐 뒀다. 만두피까지 만드는 건 무리일 것 같아서 시중에 파는 만두피와, 세 가지 만두 속을 위해 다진 돼지고기, 부추, 김치를 샀다.



1월 1일 아침 오전 8시 반.


전날에 지인들에게 새해 축하 문자들을 보내느라 2시 반에 잠들고 느지막이 눈을 떴다. 일단 2024년 새해 계획으로 세운 아침 큐티를 위해 성경 창세기 8장을 읽었다.


그리고 오늘 할 일 목록을 정리해 봤다. 앞으로 매월 계획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 좀 더 세부적으로 단계별 계획을 세워뒀다. MBTI 검사하면 몇 년 간 P였는데 최근에 J로 바뀌는 것 같다.




오전 11시.


30분 전에 일어난 남자친구와 함께 만두소를 준비했다. 내 담당은 김치 만두였기에 한국 마켓에서 산 김치와 다진 고기, 후추, 양파가루를 섞어 속 재료를 간단하게 5분 만에 만들었다. 남자친구는 굴소스, 진간장, 후추, 부추, 돼지고기를 섞은 만두소 하나와 달걀과 중국 시금치를 섞은 두 번째 만두소를 뚝딱 만들어냈다. 남자 대장금을 보는 기분이었다.



만두소 만들며 기타 재료를 준비하는 데에만 30분이 속절없이 흘렀다. 그로부터 약 20분 뒤, 남자친구의 지인이 훈툰(Wonton)이라는 중국식 만두에 쓰이는 만두피를 가지고 오늘의 새해 만둣국 만들기 모임에 참여했다.




오후 12시.


드디어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명절에 친척들과 함께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 만두를 만들곤 했던 기억을 되살려 둥근 모양의 만두부터 끝에 힘을 준 가지런한 만두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얼마큼 만두소를 넣어야 될지 몰라 가늠이 안 됐다가 3개, 4개 만들어보니 감이 생겼다.



3명이서 스피커에 음악을 신나게 틀어놓은 채 만두 빚기에 집중하니 그릇에 수북이 쌓여 이윽고 3 접시에 여러 모양의 만두가 담기게 되었다.




오후 1시 반.



만두소 만들기를 시작한 지 2시간 반 만에 드디어 떡만둣국과 삶은 만두를 가지런히 놓은 한 상차림으로 올해 첫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소금을 별로 안 넣은지라 맛은 싱거웠지만 간장에 푹 찍어먹으니 안성맞춤이었다. 고된 노동(?) 뒤여서 그런지 만두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남은 만두는 일부는 냉장고에, 나머지는 집락(ziplock)에 넣어 근처 사는 지인분에게도 한 번 드셔보라고 드렸다. 지인 한 분에게 나눈 거지만 행복은 배가 되었다. 역시 명절은 나눠 먹는게 또 다른 묘미다.








해외에 살면서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한국의 명절을 더 잘 보내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같이 명절을 보낼 가족도 없고, 명절이라고 떡만둣국을 끓여줄 부모님도 곁에 안 계시니 스스로를 더 잘 챙기겠다는 결의에 다진 각오와 함께 그날을 어떻게 잘 보내면 좋을지 계획을 짜곤 한다.



향수병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유학생활 전에는 모든 것에 시큰둥, 무덤덤했던 나였기에 나에게 향수병이라는 감정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말로만 듣던 그 향수병이라는 것이, 유학생활 이후 명절 때만 되면 찾아왔다. SNS에 가족들끼리 명절에 모여 같이 떡국과 전을 먹는 사진을 보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부러웠다.



그러나 학생 때는 한국의 명절이 미드텀, 파이널과 같은 시험 기간이었기에 명절 음식을 만들며 보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2024년 새해 첫날 약 3시간에 걸쳐 만둣국을 만들어 먹은 것이 사치처럼,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도 드디어 이런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생기는구나,라는 잔잔하게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외국생활을 하면서 그전에는 너무 익숙해서 몰랐던 어렸을 때 가족들과 보낸 시간들이, 소소한 추억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깨닫는다.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에서나마,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스스로에게도 작은 선물 같은 시간을 마련하게 된다. 이런 시간들이 결코, 그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나중에 어려운 시기를 버틸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새해 첫날에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마련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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