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풀 Jun 14. 2024

한 달간 한국 휴가에서의 작은 변화와 깨달음 6가지


'힐링'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 가능했던 한국 휴가.


어쩌다 보니 갑작스러운 수술 덕분에 병가를 내면서 더 오래 머물게 됐다. 덕분에 그 전의 짧은 방문보다 더 찬찬히 순간을 음미하며 오랜만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휘발되지 않도록 메모장에 붙잡아뒀는데 다시 정리해 보니 6가지로 귀결이 됐다.






1. 의식적으로 여유 가지는 연습


수술 이후, 조금 더 나를 풀어주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여유를 가지려 한다. 예를 들어, 일 시작 전에 조금이라도 밖에 나가서 산책하기. 광합성 마음껏 하기. 일 끝난 뒤에도 조금이라도 운동하기. 일하는 중간중간도 밥을 너무 조급하게 먹지 않기.


소비 면에서도 그렇다. 이전에는 외식하고 밖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아깝고 쪼여야 될 것 같고 많이 쓴다고 생각했다. 물론 매일 커피 한 잔 사다 마시는 게 사치 같고 외식에 많이 쓴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러나 그냥 그 순간에는 즐겁고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감정에 충실하려 한다. 적당히 나를 속이면서 살아야지 안 그럼 장기적으로 정신건강에 안 좋다.




2. 물리적으로 가까이 지내는 걸 무시 못한다는 것.


가족들 중 그동안 많은 대화를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성인이 된 후 몇 년간은, 엄마랑 못해도 주 3일 통화를 하곤 했다. 그래서 내가 엄마를 많이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엄마의 답답한 면이 보였고, 오히려 동생이랑 얘기하는 과정에서 내가 엄마랑 함께 지내지 못해서 놓치는 부분도 알게 됐다. 때로는 천 마디 구구절절한 설명과 근황 얘기보다는, 당장 옆에서 함께 살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이해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게 됐다.


다행히 나보다 더 속 깊은 동생과 아빠가 엄마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했다. 그리고 엄마한테도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내 멋대로 엄마를 또 판단해 버렸다고.




3. 모든지 적당히가 중요.


긴 휴가를 마치고 매니저와의 1:1 미팅에서 매니저가 나에게 '오랜만에 일하는 소감이 어떠냐, 괜찮냐'라고 물어봤다.


그 말에 '많이 쉬어서 이제 일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어느 정도 쉬고 나니, 일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쉬면서 찐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낸 직후에 마음 편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언제나 한국으로 들어가는 순간만을 고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국에서 사는 것이 좋은 것보다는 미국에서 내 일을 마친 후, 가족들이랑 편한 마음으로 좋은 순간을 보낼 그 시간이 기대되어서. 그리고 여느 감정이 그러한 것처럼, 행복도 계속 같은 일상이 반복되면 조금씩 그 감동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적당히 쉬었으니, 그만큼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어쩌면 그래서 아빠가 계속해서 일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부모님 중 퇴직하고 급격하게 나이 들어 보이는 것도, 일이 주는 활력이라는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주변에서 '돈 많은 백수'를 꿈꾼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돈 많고  할 일도 많은 사업가'를 꿈꾼다. 그리고 적당한 시간 부자였으면 좋겠다.  




4. 무엇을 먹는지가 나를 만든다. 플레이팅도 중요.


다시 한번 느끼는 건 무엇을 먹는지가 나를 만든다는 것. 한국에서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지 긴 휴가 기간 동안 과자를 찾은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수술 이후 속이 편안한 음식들을 적당히 먹으니 더 만족감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쁘게 플레이팅 하는 것이, 그저 막무가내로 음식을 차려먹는 것보다 더 나를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서 생활할 땐, 생활의 대부분이 일이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적어도 음식을 먹는 것에 있어서는 나를 존중하지 못했다. 당장 이 일을 어떻게 해서든 끝내고 싶은 급하고 조급한 마음이 나의 일상적인 생활을 무너뜨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밥을 차리는 것뿐만 아니라 아주 조금이라도 여유를 내어 이쁘게 플레이팅하고 밥을 먹는 게, 그날 하루를 '잘' 살게 만들어주는 조그마하지만 큰 동력이 된다.




5.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가족, 친구들, 은사님이랑 만나면서 든 생각들.


가족들과 지낼 때는 우리한테 이렇게 안온하고 화목한 순간이 오네?

친구들을 만날 때는 우리가 이런 대화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날이 오다니.

은사님을 뵈었을 때는 제자와 스승의 신분을 벗어나 그저 사회의 한 명의 구성원으로, 수평적 관계에서 편하게 얘기하는 날이 오는구나.



시간이 지나도 안 변하는 것들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여실히 느끼는 시간의 힘.


과연 3년 뒤, 5년 뒤에는 또 어떤 변화된 일들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게 될까?

그런 물음이 주는 설렘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에 대해 뜻밖의 위안을 준다.




6. 정신적 건강을 만들어주는 요소들


고양이 털이 묻어있지 않은 깨끗한 옷. 쇳물이 끼지 않는 깨끗한 욕실. 무엇을 만들어 먹을지 고민해도 되지 않는데에서 오는 여유. 매일 하루가 일과 집안일을 하다 끝나가지 않는 생활에서 오는 편안함. 그리고 가족들과 시시콜콜하게 얘기하고 웃는 일상.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먹는 것이 조절된다. 계속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도 없다. 딱히 단 것 음료를 찾지도 않게 되고 아메리카노가 훨씬 좋다. 백반집에서 먹는 건강한 반찬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수술과 함께 이런 정신 포만감 덕분인지, 몸무게도 자연스럽게 -3kg가 빠졌다.



그런 것들을 맛보고 나니,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도 최대한 청결함과 생활의 단순함을 유지하려 한다.





어디를 가던,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의 변주를 주면 그때를 틈타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이 퐁퐁 떠오른다.



그런 생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활자로 정리하면, 때때로 내가 나에게 어떤 것들을 존중하지 못하고 있는지, 또는 조금 더 발전되고 정신적, 심리적으로 안정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는 한국에서 평온하면서도 많이 웃는 시간들을 선사해 준 가족들과 지인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가끔 지칠 때도, 그런 추억의 힘으로 살아가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서 식비 절약을 위한 집밥 모음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