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풀 Jul 16. 2024

결이 맞는 사람과의 좋은 대화

우리의 커리어, 인간관계, 경험의 폭과 깊이에 대하여

한국에서 휴가를 보낼 때, 고등학교 친구랑 근 몇 년 만에 저녁을 먹었다.



1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의 저녁이었는데 내 결혼을 축하한다며 친구가 사준 저녁. 밥을 먹고 이후 카페에 2차로 간 시간 동안 친구와 좋은 대화를 나눴다. 나에게 있어 좋은 대화라 함은,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 없이 대화를 나누는 우리의 삶에 서로 집중하는 것이다. 또는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웃기 바쁜 시간.



무엇보다 6시 반 좀 넘어서부터 10시 반까지 거의 4시간 동안 대화가 물 흐르듯이 이어져서 좋았다.



간간히 전화통화로 안부를 주고받고 한국에 잠깐 들어올 때 얼굴 보고 얘기 나누긴 했어도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단둘이 저녁을 먹은 건 아마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쉴 새 없이 재밌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편의상 친구를 A라고 부르겠다*



대화의 시작은 그전 날 친구가 지인 분이 초대해 준 행사를  왜 다녀오게 되었고  어쩌다가 인연이 닿았는지에 대해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이야기로 넘어가서  A가 요즘 내 일은 어떠한지를 물어봤다.



나는 "언제나 고민이 있지"와 같은 비슷한 맥락의 첫마디를 시작으로, “이 길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이미 내가 이곳에 발을 담갔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상태인데 내 생각엔  한 분야에서 내가 그 일에 대한 나만의 철학과 주관을 얘기하려면  한 번 탑은 찍어야 될 것 같아서  일단 계속해 보는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에 대해 A가 자기도 나와 같이 생각하는데 요즘 주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퇴사를 하고 계속 버틸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물론 최대한 버티고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는데 내가 A에게 나중에 사업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덧붙여 내가 사업을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도 나눴다.



사실 그전까지는 남들이 얘기하는 기본적이고 추상적인 이유들로 나도 사업을 하고 싶은 동기로 생각했다. 그러나 A랑 얘기하는 과정에서 내가 말로 풀어내지 않았던 내적 동기들이 단어로 구체화되었다.





1)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 특성상, 자기한테 편안한 것에서 안 벗어나려고 하니 점점 도전하는 것이 어려워지는데, 그래서 나는 일부로라도 더 나를 불편한 곳에 놓음으로써 안주하지 않고 싶다



2) 사업을 하면 나와 비슷한 결로 같이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긍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3) 인생을 살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도전을 하고 경험을 하면서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물론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그런 면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4) 언제나 어렸을 때부터 "내가 직접 만든" 실물로 된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그리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순진했던 그때는 참 간절했다.




요즘 들어 다시금 그런 소망이 든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하고. 항상 머릿속엔 이것저것 구상하는 게 있지만 아직 실천하고 행동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일단 이렇게 말로라도, 글로라도 적어본다.


그래야 내가 제대로 뭘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내 뇌 회로도 강박적으로 가 아닌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세팅될 것 같아서. 이렇게 또 적다 보면 내가 바라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을 향해 계속해서 조금씩 전진하지 않을까.






이후, 우리는 자연스레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A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자신이 세우는 분명한 선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상대방이 만나자고 자주 연락해도, 가끔 자기가 느끼기에 아직 아닌 것 같다 싶으면 흔쾌히 수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A한테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물론 내가 A와 몇 년 만에 만나는 것도 한 몫했겠지만). 그래서 A한테 내가 느낀 바를 얘기했더니, A가 말하길 "보통 그러면 이미 자기 선 안에 들어온 관계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낀다"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물어봤다.

어느 부분에서 그 선을 나누게 되느냐.


"상대방이 나를 약간 불편해한다는 게 느껴지면 그렇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A와 달리, 나에게 인간관계에 대해 어떤 선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군가와는 금방 친해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누군가와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알아가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상대방의 성향에 맞춰가게 되는 것 같다. 상대방이 혹시나 단기간에 다가가길 부담스러워하는 분이라면, 나도 조심스럽게. 그 반대의 경우라면 편하게 장난치면서.


그러나 A처럼, 나 또한 누군가 나에 대한 어떤 프레임을 씌워 바라보는 것 같다면, 그런 사람들에 대해선 굳이 나도 먼저 다가가거나 하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이어 내가 최근에 느끼는 친구에 대한 작은 고민에 대해서도 나눴다.


“나는 옆에서 계속 성장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게 참 좋은 것 같아. 그걸 함께 지켜보는 것도 좋고. 근데 얘기할 때마다 과거 회상을 하고 "그때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되어버렸다"라고 얘기하는 친구의 경우, 예전엔 그냥 들어주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런 시간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무엇이 진짜 친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될 때가 있다.


상대방이 이미 문제를 인식하는데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풀고 싶은 것인지, 아님 정말 몰라서 습관적으로 얘기하는 것인지. 그런 판단이 잘 안 설 때가 있다. 그런 지혜를 주시기를.


A는 '~ 해보면 어때?'라고 제안해 보라고 했다. 나도 공감했다.





커리어, 인간관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서로 각자 현재의 삶이 어떤지에 대한 근황을 물어봤다.


친구는 나에게 일 하는 생활에 대해서도 물어봤었다.



그래서 아래처럼 답했다.


"재택근무로, 개발자로 일하는 거 좋지. 일어나자마자 바로 근무하면 되고. 근데 그래서 더 생활과 일에서의 구분이 없는 것 같아. 내가 아직 그걸 잘 조절 못해서 그런 거겠지만 그날 일을 못 끝낸 게 있으면 계속 랩탑을 붙잡고 있게 되는 것도 있고, 시차를 두고 일을 하다 보니 일이 끝난 시간이면 이미 너무 늦어서 주변에 갈 데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 해봤자 아파트 내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 가서 운동하는 게 전부야. 밖에 나가기 위험하기도 하고."



나를 실제로 모르는 온라인에서는 답답한 마음에 이것저것 남겼지만, 실제 오프라인에서는 가족 외에 이런 어려움을 주변 지인한테 얘기 안 했다. 말을 하더라도, 주로 나중에 한참 뒤에 내가 이런 생활에 적응되거나 아무렇지 않을 때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어 근데 이젠 괜찮아' 정도였다. 누군가한테는 바라오던 삶의 모습일 수도 있기에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그저 투정 부리는 것으로만 들려질 것 같아서였다. 스스로 돌아봐도 온실 속 화초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A는 대학교 때 같이 유학생활을 했던 경험 덕분인지 내 말에 바로 공감했다.


자기 같으면 너무 답답할 것 같다고. 재택으로 일하는 게 쉬운 게 아니라며.



A가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생활을 했거나 장기간 미국에 다녀온 분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나 나의 생활 방식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 바로 어떤 삶인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듯하다.


척하면 척,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공감을 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신기했다. 이것도 경험의 차이이구나.

역시 경험하는 만큼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하는구나.



다시 한번 경험의 중요성을 대화 중간중간 느낀다.




언제나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즐겁고 각자의 커리어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생각과 가치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꼭 앞의 주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식으로 대화가 흘러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다. 어떤 친구와는 별 거 아닌 내용에도 깔깔거리며 웃기 바쁜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또 다른 어떤 친구와는 진지하게 서로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목표와 가치들을 나누는 시간이 신기하다. 이렇게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던 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영화관에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졸다가 울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