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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Jul 10. 2024

미국 영화관에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졸다가 울다가

*간접적인 스포가 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던 목요일에 이어 회사의 자체 휴일이었다. 덕분에 평일의 여유로움을 빌려 지인과 함께 이미 개봉한 지 한참 된 인사이드아웃 2 관람 대열에 합류했다.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이전 시리즈인 인사이드아웃 1이 딱히 인상 깊진 않았다. 애니메이션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 내 눈에는 그저 뻔하디 뻔한 교훈적인 이야기 같았다(단, 지브리 시리즈는 예외다).



그래서 인사이드아웃 2 티켓을 구매하기 전 망설였다. 이걸 봐 말아?

결국 이미 보고 온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 감상평을 물어봤다.


다들 "한 번쯤 볼 만하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영화표를 결제했다.




별다른 기대감은 없었음에도, "인사이드 아웃 2" 영화 초반 부분에 기쁨이가 라일리를 위해 한 행동들에 깊이 공감이 되어 저절로 몰입됐다.


새로운 감정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전, 기쁨이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라일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들을 감정 관리 본부의 구석에 밀어 넣거나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먼 곳으로 보내버린다. 나는 그런 기쁨이의 모습을 보며 ‘그렇지, 저렇게 하는 게 맞지’ 라며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속이 시원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굳이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필요가 있나?라고.



그동안 그런 기억들이 전후 관계없이 불쑥 머릿속에 떠오르면 이불킥을 하거나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됐는데'라는 후회가 들었다. 때로는 제삼자를 원망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가 싫었다. 바뀌는 것도 없는데 괜히 이미 엎질러진 과거를 후회하느라 지금 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고 오늘 하루 나의 감정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외면했다.
 


물론 처음 기쁨이가 만들던 신념인 "나는 좋은 사람이야"를 추구하는 건 아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주변 소수의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불안이가 하는 행동들과 기쁨가 이전에 했던 행동들을 지켜보며, 내가 고개를 끄덕인 기쁨이의 행동이 결국 한 사람이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살짝 지루했음에도 불구하고)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상처받고 어려웠던 기억들을 기억의 창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을 만들어준다는 영화를 보며,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나온 다음의 문장이 떠올랐다.


"실제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매력적이고, 남들을 더 잘 도우며, 더 지적이고, 우연한 사건들을 가능한 정도보다 훨씬 더 기억해 냈다. 미래를 내다볼 때는 친구들이나 급우들보다 자신이 성공할 가능성을 훨씬 더 크게 잡았다. 반면 그토록 칭송받던 정확한 인식이라는 미덕을 지닌 사람들은 어떨까? 짐작했겠지만 그들은 병적인 수준의 우울증에 걸렸다. 그들은 살아가는 일을 힘들어했고, 좌절을 겪은 뒤에는 회복이 더 어려웠으며,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종종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주위에서도 일명 '얼굴이 두꺼운 사람'들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 있을까. 얼굴이 두껍지 않은 사람들은 보통 어떤 실수에 대해서도 쉽게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패턴이 반복되면 결국 우울증과 자기혐오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살아가는 건 모든 걸 흑백논리로 볼 수 없고 언제나 회색지대가 존재한다는 걸 인지함에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비단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데만 필요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기억들을 "나는 기억 안 나는데~"라며 모르는 척하지 않고, 그 불편함을 감수하며 받아들이는 것. 때로는 우울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킬지라도 '이것도 나의 일부야'라고 인정하는 동시에 '어떻게 하면 앞으로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까?'라고 건설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렇게 하는 것이 단순히 안 좋은 기억들을 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온전한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영화 중반에 인사이드아웃 2를 보며 많은 관람객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 기쁨이의 대사가 있다.

"Maybe This Is What Happens When You Grow Up. You Feel Less Joy."
"아마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건가 봐. 기쁨이 줄어드는 거."



나는 위 문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어른이 된다는 건, 새로움이 줄어드는 것이다(the sense of newness wears off).



모든 게 처음일 때는 그 자체로 기쁨을 수반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다 보면 처음에 느꼈던 기쁨의 양은 수직 하강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더 큰 쾌락을 찾기 위해 더 새로운, 때로는 범죄의 길에까지 들어서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다.


기쁨을 느끼려고(feel)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발견(find) 하는 것.

때로 따분이나 불안이가 감정 컨트롤 본부를 진두지휘 하더라도, 그럼에도 기쁨이에게 더 많은 통제권을 쥐어주려는 것.

그래서 삶의 작은 순간에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쁨을 발견함과 동시에 나는 불완전한 인간임을 인지하는 것.



그러면 결국 고리타분하지만 진리인 '감사'로 함축된다.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다시 기쁨을 느끼는 것.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미소 한 번 건네고 기쁨이처럼 시원하게 웃음 한 번 터뜨리는 것.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길 가운데 서 있다.






나도,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오늘 하루 삶 속에서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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