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짜리 선수가 인성을 잃어버리는 이유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와 브레드마이어가 진단한 스포츠의 타락

by 레슬러 플라톤

스포츠는 인성을 발달시킨다?

학교 체육 시간, 스포츠 경기와 관련된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는 아마도 이것일 겁니다. "규칙을 잘 지켜라", "친구를 배려해라", "경기에선 정정당당하게 임해라". 우리는 흔히 스포츠가 신체뿐만 아니라 인성을 함양하는 최고의 도구라고 믿습니다. 땀 흘리며 부대끼는 과정에서 협동심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소식들을 들으면 이 믿음은 산산조각 납니다. 음주 운전, 승부 조작, 도박, 학교 폭력... 사회면을 장식하는 주인공 중 상당수는 우리가 그토록 '인성 함양의 보고'라고 믿었던 스포츠에 몸담고 있는 운동선수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오랜 시간 운동을 했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경쟁을 겪어낸 소위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입니다.

몇 해 전 수업 시간, 메이저리그 출신 야구선수의 음주운전 사건이 있은 후 한 학생이 제게 다가와, "선생님, 그 선수는 음주운전을 해서 사람을 죽일 뻔했는데,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왜 야구로 보답하겠다고 해요? 야구를 다시하면 자기가 돈도 다시 벌 수 있고, 자기한테 좋은건데 왜 그게 우리한테 보답하는게 되는거죠?" 라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그냥 "그러게"라고만 대답하며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체육이 인성을 길러준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일까요? 저는 그 답을 운동 부족이 아닌, '철학의 부재'에서 찾았습니다. 오늘은 두 명의 철학자의 생각을 빌려, 왜 위대한 운동선수가 도덕적 괴물이 되기 쉬운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탕을 위해 체스를 두는 아이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현대 덕 윤리학의 거두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는 그의 저서 <덕의 상실>에서 아주 흥미로운 비유를 듭니다. 바로 '체스 두는 아이' 이야기입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체스에 전혀 흥미가 없는 아이에게 체스를 가르치기 위해, 어른은 이런 제안을 합니다. "네가 이길 때마다 500원짜리 사탕(혹은 돈)을 줄게." 이제 아이에게 체스는 사탕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매킨타이어는 이를 '외재적 선'이라고 부릅니다. 돈,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이죠. 반면, 체스를 두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오는 전략적 묘미나 성취감은 '내재적 선'입니다.

문제는 아이가 체스의 재미(내재적 선)를 깨닫기 전에, 사탕(외재적 선)에만 집착할 때 발생합니다. 사탕만이 목적이라면, 아이는 굳이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방 몰래 말을 옮기거나 속임수를 써서라도 승리하는 것이 사탕을 얻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타락한 스포츠 스타들은,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은 여전히 '사탕을 위해 체스를 두는 아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스포츠는 승리의 짜릿함이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연봉 대박과 FA 계약, 광고 수익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외재적 선'이 '내재적 선'을 압도하는 순간, 반칙은 나쁜 짓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영리한 전략으로 둔갑하는 것입니다.


경기장 문을 나서도 닫히지 않는 '괄호' (브레드마이어 & 실즈)

돈보다 더 무서운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스포츠라는 환경이 가진 특수성입니다. 스포츠 윤리학자 브레드마이어와 실즈(Bredemeier & Shields)는 이를 '가괄된 도덕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수학 문제를 풀 때 괄호 ( ) 안을 먼저 계산하듯, 스포츠는 일상의 도덕을 잠시 '괄호' 치고 유보해 두는 세계라는 뜻입니다.

일상에서 누군가를 밀치거나 속이면 범죄입니다. 하지만 축구 경기장에서의 거친 태클은 용인되고, 야구에서 주자가 수비수를 속이는 동작은 재치 있는 플레이가 됩니다. 경기장 안에서는 승리를 위해 공격성이 허용되는 특수한 도덕, 즉 '게임 논리’가 지배합니다.

문제는 경기가 끝난 후입니다. 학교에서도 그저 체육 시간에 즐기는 축구 시합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것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도에서 친구에게 시비를 걸거나, 승패를 인정하지 않고 욕설을 하는 아이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건강한 선수는 경기장 문을 나서는 순간 이 '괄호'를 닫습니다. 게임 논리를 끄고, 다시 배려와 존중이 있는 '생활 논리'로 스위치를 켭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오직 승리만을 강요받으며 자란 선수들은 이 스위치가 고장 나 버립니다.

경기장 안에서의 폭력성, 심판(권위)만 속이면 된다는 태도가 괄호 밖 일상으로 흘러넘칩니다. 그들에게 음주 운전이나 도박은 사회적 범죄가 아니라, "안 걸리면 그만인 게임의 일부"로 인식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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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기술은 몸을 만들지만, 철학은 사람을 만든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스포츠는 인성을 길러줄까요? 제 대답은 단호합니다. "저절로 길러지는 인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달리는 법만 가르쳐왔습니다. 하지만 방향(Philosophy) 없이 속도(Skill)만 높이는 교육은 위험합니다. 철학 없는 스포츠 교육은 튼튼한 엔진을 가진 자동차에 브레이크와 핸들을 달아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뉴스에서 마주하는, 폭주하다 사고를 내는 괴물 같은 선수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철학하는 체육'이 절실합니다.

여기서 철학이란 어려운 이론을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승리의 달콤한 사탕(돈, 명예)이 눈앞에 있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상대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얻은 승리가 과연 가치 있는가?" (도덕적 판단), "경기장의 거친 규칙(괄호)을 지금 일상으로 가져오지 않았는가?" (자아 성찰)과 같이 이러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100억짜리 스타 선수는 언제든 500원짜리 사탕을 위해 반칙을 저지르는 미성숙한 아이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체육 교사와 스포츠 코치의 진짜 역할은 아이들에게 공을 다루는 기술뿐만 아니라, 욕망이 들끓는 그 순간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철학적 안전장치'를 심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 운동화 끈을 묶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사탕을 쫓아 앞만 보고 질주하고 있나요, 아니면 달리는 행위 그 자체의 기쁨을 온전히 느끼며 나아가고 있나요? 진정한 스포츠맨은 근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근육을 움직이는 단단한 생각으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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